한국에세이, 이도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추운 겨울에는 날씨 때문인지 유독 마음의 온도를 높일 수 있는 책들을 많이 찾게 된다. 내 책장의 몇 안 되는 온기 담당 이도우 작가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는 핫팩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책이다.
오래전 마치 구름 위를 밟고 걷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작가의 시선과 감수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글은 참으로 몽글몽글하니 간지러운 것이었다. <No Leaf Clover>란 노래를 접한 뒤 잎이 없는 클로버에게 꽃말을 지어주고, 마법의 약에 대한 판타지를 간직했던 이도우 작가의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
여기서 뻗어 나간 작가의 서정적인 문장들을 쫓아가는 건, 나에겐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느낌이었다. 산문집에 실려 있는 나뭇잎 소설(짧은 단편)들을 읽을 때야 현실적인 감각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이 책은 처음 읽을 때와 꽤 다르게 와닿았다. 내가 밟았던 건 단순히 낭만 가득 뽀송한 솜구름이 아닌 눈구름이었다. 삶에서 찾아오는 쓸쓸함, 상실, 슬픔, 체념 등이 페이지 곳곳에 습기처럼 배어 있었다. 자칫하면 눈물 젖은 눈비라도 내릴 듯이.
언젠가 찾아올 와해와 이별을 예상하면서도 아지트를 찾는 이유는 어쩌면 모두가 외롭기 때문. 그곳에 찾아가도 변함없이 외로운 존재들이지만, 그렇게 닮은 서로가 테이블마다 앉아 있는 탓이 아닐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외로운 것과 나와 같은 이들이 눈앞에 자리한 풍경을 바라보며 외로운 것은 조금은 다르니까._273~274
그렇지만 작가가 누구인가. 특유의 따뜻한 문체로 마음을 녹이는 이도우 작가답게, 습기가 뭉쳐 눈비로 내리게 하지 않는다. 시린 겨울도 포근히 감싸는 함박눈 같은 문장들이 큰 위로 없이도 따스한 위안이 된다. 작가가 글을 통해 나누는 습기 어린 감정들에 함께 젖어들며, 나만 홀로 쓸쓸함을 감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 마음은 한결 나아진다.
슬픈 생각을 하며 흘린 눈물을 담아 차를 끓여 마시면 슬픔이 사라진다는 산문집 속 ‘눈물차’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일지 모르겠다. 이 책 자체가 이도우 작가가 건네는 ‘눈물차 레시피’ 인지도.
시간이 지나 나 역시 만병통치약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고, 대신 아놀드 로벨 <집에 있는 부엉이>의 ‘눈물차’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슬픈 생각을 하며 흘린 눈물을 주전자에 담아 차를 끓여 마시면 슬픔이 사라진다는 이야기. (...) 모든 마법 같은 약에 대한 소망은 언젠가 끝날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환상일 뿐. (...) 숲속에 차곡차곡 양식을 쌓아두고 겨울을 나는 부엉이들처럼 서로에게 따뜻한 레시피를 건네며 살고 싶다. 황금비율의 명약은 이번 생에선 배합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나눌 수 있는 작고 다정한 것들이 있다. 긴 겨울밤 추운 눈밭을 걸어와 난롯가에 마주 앉아 마시는 우리들의 눈물차처럼._81
책은 마치 이도우 작가의 보물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 아름답고, 쓸쓸했던 삶의 순간들과 그 속에서 건진 영감들이 가지각색의 빛깔로 담겨 있다.
이도우 작가 특유의 아련하고 동화 같은 감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만큼 작가의 시선과 감성이 책장마다 진하게 묻어나는데, 사실 나와는 확연히 다른 타인의 결이 좀 어색하기도 했다.
가끔 한쪽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데 피곤하면 소리가 커졌다가 좀 쉬면 사라진다. 윙윙 부는 바람 같기도 하고 모래알을 사각사각 쟁반에 굴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럴 땐 소라고둥이 생각난다. 귓가에 대고 있으면 남에겐 안 들리고 내게만 들리는 파도 소리를 보내는 소라 껍데기 같아서. 그리고 밀려오는 물결처럼 아주 오래전의 동화가 떠오른다._267
현실에 붙박여 사는 나로서는, 이명에서도 소라고둥을 떠올리는 정도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갖춰야 작가를 하는구나 싶었다. 나도 이명을 달고 살지만, 그건 단지 해결해야 할 귓병일 뿐이었다. 혼자서는 결코 이명에서 소라고둥은 물론 다른 무엇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감상의 대상 자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작가의 글귀를 접한 뒤, 이제는 가끔이나마 이명이 어떤 소리처럼 들리는지 귀 기울여보기도 한다. 고장난 라디오 소리 같은 나의 이명이 오늘은 어떤 주파수인지. 언젠가는 운 좋게도 파도 소리가 실려올는지.
나와는 다른 시선, 감정과 내밀하게 맞부딪침으로써 이해와 공감,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게 산문집의 매력인가 싶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라면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풍경, 하지 못했을 생각,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을 타인의 글로나마 접하며 견고한 나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한 균열이 반복돼 벌어진 틈새는 내가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통로가 되어 준다.
어떤 이들은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같다고도 말하지만, 저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한 겹의 인생을, 읽으면 여러 겹의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습니다. (...) 그건 세상에 나그네처럼 머물렀다 갈 사람들이 저마다 가질 수 있는 ‘나의 부피’일 겁니다._326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타인의 감각과 삶을 겹쳐보며 내가 향유할 수 있는 세계의 부피를 넓혀가는 것. 이것이 소설∙시∙에세이의 가치란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1. 이 책이 필요할 때
- 서정적 감성∙문체의 에세이를 읽고 싶을 때.
-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 고유의 시선과 감성이 궁금하다면.
2. 처방문
- 내 삶이 삭막하고 메마르게 느껴질 땐, 가볍게 에세이나 소설을 읽어보자. 에세이나 소설에는 작가나 등장인물들만의 고유한 시선과 감성이 짙게 묻어나기 마련이다. 때로는 나와 다른 생각과 감성의 결에 어색하고 불편할 때도 있지만, 이는 곧 타인을 이해하며 내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타인의 시선과 감성을 하나 둘 내 삶에 녹여내면, 단조로워 보이던 내 삶도 실은 다채로운 빛깔로 빛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장 난 시계 하나쯤 누구나 서랍 속에 넣어두고 살 테니까, 엉뚱한 시간대를 방황하는 사람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생각합니다. 돌아올 기회는 있으니 잠시 헤매다녀도 괜찮을 거라고.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으니까요. 그렇게 겹쳐지는 찰나가 출구라서 재빨리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나 3시 5분 같은 순간에 머무를지 현실로 돌아올지를. 그저 기다려주는 거지요, 그들이 다시 제시간에 올라타는 때를요._60
아마도 잎이 없는 클로버는 ‘미련 없는, 후회 없고 뉘우침 없는’이란 꽃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빛나는 행운과 행복은 너무나 한순간. 잎이 차례로 떨어질 때는 두렵고 불안하겠지만, 마침내 사라지고 나면 차라리 초조함은 끝나고 미련 없이 놓아버릴 것만 같다. 그건 마치 웃음을 터뜨리며 그 자리를 떠나는 이의 뒷모습 같은 것. 간절히 기다렸고 지키려 애썼던 갈망이 내 안에서 끝나버렸을 때, 그 마음을 ‘클로버 잎이 다 떨어졌다’고 표현하고 싶다._64
오늘의 부피가 한 사람에게 포개지는 날짜의 순환이라면, 그날 다들 어디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겪은 시간의 총합적 부피일 거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떤 부피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번 생이 조금은 덜 외롭다._76
애정이 있는 가까운 이들에겐 언제나 그 말 그대로, 어떤 함의나 간접적인 가시가 없는 담백한 언어를 건네고 싶다. 숨은 뜻을 요령 있게 내비치는 이들이 복잡한 내면을 가진 듯 멋있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고, 함의와 행간은 여전히 흥미로운 문학적 텍스트이지만, 그것이 일상을 잠식하게 두고 싶지는 않다. 살아갈수록 그 말 그대로, 그 마음 그대로인 이들이 곁에 남는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_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