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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Jan 07. 2024

답을 찾았나요?

“<적당히 솔직해진다는 것>이라는 책을 내셨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 제목에 대한 답을 찾았나요?”

“아직 찾는 중이에요. 하하.”


지난 10월, 북페어 관객 분과 나눈 대화였다. 당시의 내 대답이 스스로도 영 맘에 안 들었는지 계속 그 질문에 뭐라고 답했어야 내가 만족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적당히 솔직하다는 게 사람들 속에 부대껴 살기에는 편리한 일이지만, 속 빈 강정 같은 대화 때문에 갈증이 생겼더랬다. 이를 솔직한 글쓰기로 풀어내겠다는 게 내 책의 메시지였거늘. 막상 만들고 나서 보니 완전히 솔직해지는 데에는 실패한 글들이다.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다. 악몽 같은 기억들이 내 글로 쓰이고 나선 여기저기에 실체를 드러내며 나를 더 괴롭게 할 게 분명해서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비롯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담임교사인 나를 욕하고 때리는 것으로 풀던 학생을 2년 동안 내 몫으로만 두었던 선배교사들에 대한 원망. 또는 만취한 아버지가 언제 내앞에 나타나 망신을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 만남과 헤어짐의 기로에서 오랜 연인의 권태를 모르는 척했던 나의 우유부단함. 그리고 여기에 차마 적을 수 없었던 그 이야기까지. 진짜 솔직해지려면 이것들로 썼어야 했다. 그러나.


내 글이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지나간 이를 찌르게 둘 수는 없었다. 솔직해지는 일보다 즐거워지는 게 먼저였고, 내 옆을 떠난 사람들보다는 내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해 쓰는 게 우선이었다. 나만 쓸 수 있기에 희소해서 잘 팔리는 글이 무엇인지는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보단 스스로도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써 모으고 싶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나를 글쓰기로 평온하고 안락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겨서였다. 에세이 <평온과 안락>을 쓴 뮤쿄 님의 표정처럼 될 수만 있다면, 일주일마다 한 번씩 따뜻한 글을 짓는 게 무슨 대수일까. 어느 날부터는 욕심도 부리기 시작했다. 울면서 웃는 탈춤 같은 글을 써서 글방 친구들을 웃기게도 하고 싶어진 것이다. 탈춤이 아닌, 누굴 다치게 하려는 칼춤 같은 글만 써지는 날이면 차라리 글방을 쉬거나 책을 읽었다. 다만 누굴 다치게 하지 않으려다 그 칼이 스스로를 겨누도록 하진 않아야 했기에, 2주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꽤나 도움이 됐다. 참 신기한 게 날 아프게 한 타인의 날 선 말과 행동은 따로 메모해두지 않아도 어찌 다 기억이 나더라.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상담선생님께 다 일렀다. 일종의 구독제 대나무숲이다. 예전엔 엄마와 동생에게 내 부정적인 감정을 다 풀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고 상담선생님을 찾는다. 꼭 스위스 은행에 비밀 재산을 맡기는 기분이다. 이렇게 돈을 내고 불평불만을 털어놓다 보니,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정을 버리던 나쁜 습관도 고쳐졌다.


솔직해야만 좋은 글일까. 답은 없다. 제각각의 답이 따로 있을 뿐. 다만 4년째 글을 꾸준히 쓰고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면서 느끼게 된 것은 있다. 과오를 감추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던가, 돋보이려고 솔직해지고 있는 거라면, 그 글은 부끄럽게 여겨지는 페이지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책으로 만들고 나서 전국에 유통하고 난 후라면 그 페이지만 도려낼 순 없는 법이다. 상상을 해보시라. 내게도 그런 페이지가 있을까 싶어, 어제는 작년 10월에 출간한 <적당히 솔직해진다는 것>을 처음부터 쭉 읽어봤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끄러운 부분이 없었다. 책 속 어느 글은 적당히 솔직했고, 어느 글은 적당하지 않게 솔직해서 다행이었다. “그때그때 달라요.” 때 지난 이 유행어가 그 북페어에서 들은 질문에 대한, 현재로서 최고로 할 수 있는 답변이다. 물론 언제 또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그건 더 나아진 내일의 내가 다시 대답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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