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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Jan 04. 2024

독립출판듀오 안팎(AhnXPark) 크로스!

정원이를 처음 알게 된 건, 교육콘텐츠를 제작하는 교사 모임인 참쌤스쿨에서였다. 당시 참쌤스쿨 2기는 전국의 교사를 대상으로 모집이 이뤄졌다. 특히 2기 멤버는 주로 디지털 드로잉에 능한 교사들로 선발되었다. 나는 그림에는 재주가 없었지만, 참쌤스쿨 2기가 되었다. 어쩌다 착륙한 낙하산이었기 때문이다. 그 해 봄에 나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는 자작곡 '공중'을 지어 페이스북에 노래를 올렸고, 이를 본 페이스북 친구 김차명 선생님(참쌤스쿨에서 '참쌤'을 맡고 있음.)께서 내 노래를 뮤비로 만들어주셨더랬다. 교육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선생님께서 내 노래를 알아주신 덕분에 신문 지면에 인터뷰를 실어도 보고, 내 노래를 선배 선생님들이 관객인 무대에서 불러보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이것이 곧 내 소중한 경력이 되어 "전설의 2기"에 들어가는 운을 누렸다. 그리고, 두둥. 정원이를 만났다.


우리 2기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했다. 합격자 발표 후 한 자리에 모인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각각의 선생님들은 멤버 지원 때 제출했던 포트폴리오를 하나씩 스크린에 펼쳐 보이며 간단한 발표를 했다. 나는 그림에는 영 재주가 없었기에, 내가 감히 질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정말이지 커다랗게 보였다. 그들의 빛나는 실력에 내 눈은 눈알쇼를 하는 이경규 씨처럼 바삐 굴러갔다. 정원이는 그들 중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그림을 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리는 사람이 아직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라고라고라. 놀라운 마음에 입이 턱 벌어졌다. 못하는 그림을 잘하려 애쓰다 결국은 실패해서 분한 눈물을 흘리던 미술 한정 쫄보 안화용이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싶었다. 쪼그라드는 마음을 숨기려 어느 때 모임부터는 책을 방패처럼 들고 갔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즐거운 동기들 틈에서 나는 스스로 책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이럴 거면 그만둘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다. 다음 달에 말해야지, 미루고는 존재감 없이 그냥 앉아있다가 집에 왔던 날도 기억난다.


다행히 당시의 나는 열등감을 이유로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때 그 이유로 그만두었더라면 지금처럼 독립출판을 하고 꿋꿋이 학교에 출근하는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참쌤스쿨을 그만둔 건, 그로부터 한참 뒤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먼저 말을 걸어주고 즐겁게 리액션을 해주는 상냥한 동기들 덕분에 못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중엔 물론 정원이도 있었다. 지금 정원이의 mbti는 귀엽고 수줍은 인프피(INFP)지만, 그때는 앙증맞고 신나는 편인 엔프피(ENFP)였다. 내 mbti는 혼자 킬킬거리는 편인 겉바속촉 인티제(INTJ)인데 정원이와 나의 웃음 합이 꽤나 맞았다. 내가 회심의 유머를 이야기주머니에서 머리털 정도만 꺼냈을 뿐인데도 정원이는 곧장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며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말이 웃기기보단, 평소에 바위처럼 무뚝뚝하게 있는 내가 자신을 웃기려고 한다는 자체만으로 웃겨서 그랬던 것 같다.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정원이의 웃음소리에 용기를 얻어 실없는 소리를 동기들에게 뿌리고 다녔다. 그림을 못 그려도 모임에 나가는 게 즐거웠다. 웃기고 웃다 보니 내 열등감도 조금씩 희미해졌다. '사람이 다 잘할 수 없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난 웃기니까.'라는 이상한 자신감도 너무 차오르는 게 문제이기도 했지만. 크크크.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할 때마다 한 멤버가 자신의 재능을 주제로 원데이클래스 워크숍을 진행했다. 사진, 영상, 캘리그래피, 인디자인(책 작업을 할 때 쓰는 프로그램), 일러스트, 만화 그리기 등,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정원이의 작품이 왠지 궁금했다. 멀리서 그의 작품을 흘끔 보고 몰래 감탄했다. 그리고 나 혼자서만 아는 별명을 정원이에게 붙여주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참쌤스쿨의 밥아저씨. 컴퓨터를 잘 다루는 나도 어려워서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각종 프로그램을, 정원이는 자유자재로 다루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심지어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멋지게 해냈다. 자신의 일을 야무지게 잘하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춘 정원은 나의 이상형이었다. 비록 이번 생에 우린 모두 여자로 만났으니 내 연애관에선 이어질 수 없었다. 다음에 어떤 프로젝트를 하게 될진 몰라도, 정원이에게 무어든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그날 처음 선명하게 생겼다. 명분으로 삼을 일은 꽤 오래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가끔씩 만나면서 안부를 묻고 답하며 그저 가느다란 연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러다 뱀-(BAAM), 명분이 대박으로 터져 굴러왔다. 작년 초여름, 내가 혼자서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거다. 이왕이면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고 의사소통이 잘되는 사람과 책의 만듦새를 제대로 뽑고 싶었다. 거기에 책도 많이 읽고 인쇄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북페어를 자주 가는 사람이면 했다. 물론 음험한 유머코드까지 통해서 서로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고, 건강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라면 그야말로 환상적일 것이었다. 누가 있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떠올랐다! 정원!! 현재는 앱을 다루는 ux디자이너로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그였다. 아직 퇴고도 하지 않은 내 원고를 정원이에게 무작정 보냈다. 이 원고, 그리고 이걸 쓴 내가 팀원으로 마음에 든다면, 우리 같이 팀을 하자고. 간절한 속내를 감추고는, 얼마든지 내 제안을 거절해도 된다는 말도 호기롭게 덧붙였다. 언제나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 편인 내가 미래가 불투명한 '고백'을 하다니. 놀라운 사건이었다. 감사하게도 정원이는 나의 불꽃같은 제안에 함께 하겠다는 말로 답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책의 '안'은 "안(Ahn)“화용이, 책의 '밖'은 "박(Park)"정원이 책임진다는 뜻을 지닌 "독립출판듀오 안팎(AhnXPark)"이 되었다. 결성 후의 소소한 일화는 다음에 풀어보겠다.


(+) 우리의 여정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 안팎(AhnXPark)의 소식창

(@in_and_out_notburger)

※주의사항: 햄버거 아님. 유사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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