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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사회 Dec 08. 2019

청소년을 도서관에 오게 하려면

미국 시카고랜드 공공도서관과 서울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공간 운영 준비하기]에서는 트윈세대를 위한 제3의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공간 운영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트윈세대가 자유롭게 공간을 오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환대해줄 공간 운영자는 어떤 모습일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보세요.


책과 멀어질수록 도서관과도 멀어진다


독서와 도서관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마다 발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살펴보면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독서량과 독서율 모두 높습니다. 그리고 매 조사마다 독서율과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책 읽는 사람이 적어지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도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독서율은 역대 최저치인 59.9%를 기록했습니다.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이전 조사보다 6% 하락한 22.2%를 기록했습니다. 2002년 17.3%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함께 디지털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주원인으로 꼽습니다. 특히 유튜브의 성장세는 놀랍습니다. 한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월간 유튜브 앱 이용자는 3,308만 명, 유튜브 앱 이용시간은 월평균 1,391분(23시간 11분)입니다. 그중 10대의 월평균 유튜브 앱 이용시간은 41시간 40분이라고 합니다. 한때 도서관계에서는 “책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지식in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식in에 유튜브까지 더해진 상황입니다.


전통적으로 아날로그의 영역이었던 책과 도서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책과 도서관, 디지털 매체가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디지털 미디어에 빠진 청소년을 도서관에 오게 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힌트를 얻고자 트윈세대 운영자 살롱에 조금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과 이승훈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센터장을 초청했습니다. 조금주 관장은 세계 곳곳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승훈 센터장이 일하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도서관과 청소년문화의집 융합 시설입니다. 청소년들의 자발적 활동과 마을 연계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청소년 분야와 도서관 분야의 관심을 동시에 받는 곳입니다.

조금주 관장(좌)과 이승훈 센터장(우)   (출처 : 조금주, 이승훈 페이스북)


미국 도서관의 청소년 공간, 메이커 스페이스, 그리고 미디어


조금주 관장은 2019년 5월 미국 시카고랜드(시카고와 주변 위성도시)의 공공도서관 8개관을 탐방했습니다. 8개관 모두 최근 신설하거나 리모델링했고 청소년을 위한 따로 공간을 두고 있습니다. 인디언트레일도서관의 중학생 공간 '미들 그라운드(Middle Ground)', 알링톤하이츠기념도서관의 청소년 공간 '더 허브(the Hub)', 가일보드도서관의 청소년 공간 '스튜디오 270(Studio 270)', 파운틴데일도서관의 청소년 공간 '보텍스(Vortex)' 등이 있습니다. 엘름허스트도서관은 중학생 공간 '미들스쿨 행아웃(Middle School Hangout)'과 고등학생 공간 '틴 스페이스(Teen Space)'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이 청소년 공간들은 모두 비디오 게임기, 보드게임과 같이 즐길 거리와 함께 메이커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3D프린터를 비롯해 레이저 커터와 비닐 커터, 재봉틀, 각종 연장 등 '메이커 스페이스' 하면 떠오르는 웬만한 장비들에 더해 디지털 미디어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일보드도서관의 스튜디오 270 안에는 영상장비와 음향장비, 악기 등의 장비를 갖춘 디지털 미디어 랩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직접 음악과 영상을 제작·편집할 수 있습니다. 파운틴데일도서관의 스튜디오 300은 650㎡의 넓은 공간에 녹음 스튜디오 6곳, 영상 스튜디오 2곳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3년에 문을 연 스튜디오 300은 시설 구축에만 300만 달러(36억 원), 내부 장비 구매에 60만 달러(7.2억 원)가 들었다고 합니다.

가일보드도서관의 스튜디오 270 소개 영상
파운틴데일도서관의 스튜디오 300 소개 영상

메이커 스페이스에는 사서를 비롯하여 각종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장비 사용법을 알려주고, 1:1 코칭을 통해 청소년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도서관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곳에서 생산하는 곳으로 나아간다는 측면에서 도서관의 메이커 기능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메이커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안 오는 사람을 오게 하고 도서관이 개인의 일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특히 창작 욕구가 큰 청소년들을 도서관에 오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주 관장은 메이커 스페이스가 유지되려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만들어 놓기만 한다고 청소년이 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북적대는 곳 '공터'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공공도서관과 청소년문화의집 ‘융합’ 공간입니다. 이승훈 센터장은 ‘복합’이 아닌 ‘융합’임을 매우 강조합니다. 단순히 두 시설이 한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어우러져 하나로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이곳의 이름을 줄여서 ‘공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누구나 올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터의 사전적 의미와도 통합니다. 그만큼 청소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터'에 청소년을 오게 하는 걸까요?

'공터'는 청소년들이 나답게 살아도 괜찮은 세상을 꿈꿉니다. (출처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페이스북)


청소년을 ‘공터’로 오게 하는 힘 1 - 청소년 모임


“청소년들은 익숙한 공간에 옵니다. 친구가 가는 공간에 와요. 누군가 환대해 줘야 오거든요. 그런데 용기가 부족한 친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건 청소년 조직이에요.”


‘공터’에는 청소년 모임이 1년에 100여 개가 생기고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청소년 모임이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할 수 있겠죠. 이 모임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합니다. 청소년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또래문화가 중요한 청소년들에게 ‘공터’의 청소년 모임은 청소년을 공간에 오게 하고 청소년이 공간의 주인이 되게 한다는 점에서 ‘공터’ 운영의 핵심 요소입니다.

공터에서는 청소년들이 매점을 열기도 합니다. 기획과 홍보, 진행 모두 청소년이 합니다. (출처 : 공터 페이스북)


청소년을 ‘공터’로 오게 하는 힘 2 - ‘공터’를 사랑하는 어른들


도서관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 공간의 가장 큰 애로점은 ‘청소년이 안 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만들어놔도 방과 후 교실과 학원으로 일정이 빡빡하니 갈 시간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청소년들에게 "도서관에 오세요"라고 말해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공터’는 어른에게도 다가갑니다. 책모임, 자원활동, 강좌 등 어른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통해 ‘공터’를 잘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어른을 늘려가는 겁니다. 그런 어른이 늘어날수록 청소년이 ‘공터’에 올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른이 단지 청소년을 돕기 위해 청소년 공간에 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승훈 센터장은 어른이 자신을 위해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자신을 위한 책 읽기, 자신을 위한 바느질을 하러 와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공터에는 47개의 성인 모임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어른들은 자신의 활동을 해나가면서 청소년들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외부 압력으로부터 ‘공터’를 지키는 방파제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공터’로 오게 하는 힘 3 - 역량 있는 일꾼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자율적 개인들의 만남과 관계다. 잘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지만, 우리는 우연한 만남에 열려있고, 관계를 만들어 간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열린 공동체 속에서 우발적이고, 비정형적이지만 살아있는 움직임들이 만들어진다.”


‘일을 잘한다’ 혹은 ‘역량 있다’고 하면 보고서를 잘 쓴다거나 발표를 잘하는 능력,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이승훈 센터장이 말하는 ‘역량’은 의미가 다릅니다. 오가는 사람들과 눈을 보고 인사하고 환대하면서 소통하는 능력, ‘관계의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역량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문화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 조직이 환대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문화를 갖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과 주체성


시카고의 도서관과 '공터'는 매우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이끌어 낸다는 점입니다. 청소년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공간과 콘텐츠로 청소년을 초대합니다. 단순히 공간만 만들어 놓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어른은 도서관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을 환대로 맞이하고 청소년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줍니다. 배우고 성장하는 건 전적으로 청소년의 몫입니다.


어느 시대이든 청소년은 해방과 탈출을 꿈꿉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청소년은 가장 적극적으로 '나다움'을 찾으려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와 환경을 제공할 때 도서관은 청소년들에게 더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ㅣ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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