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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사회 Feb 15. 2021

[인터뷰] 함께 읽기 소리를 찾아서 - 이경근 편①

뚝심 있게 활동을 꾸려나가고 싶은 담당 간사의 ‘함께 읽기’ 의미 찾기 프로젝트! 그 첫 번째 시간.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경근. 주변에서 경근 님만큼 솔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르면 모른다, 알면 안다, 재미없으면 재미없다. 평소 날 것에 가까운 경근 님의 말을 들을 때면 처음에는 신기하다가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람을 홀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번 인터뷰 역시 시원하게 수락하고 가감 없이 대화했다. 


스물네 가지 질문과 더 많은 답으로 꾸려진 이 글이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첫 번째. ‘현장의 소리’ 기획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좋았어요. 우리는 직업 간사잖아요. 그래서 애매할 때가 있어요. 내가 단순히 월급쟁이인가, 활동가인가. 내가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인가. 경계라고 해야 하나 분기점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남이 시키는 일, 윗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게 되죠. 그러다가 뭔가 스스로 해보고 싶은 것, 그런 것을 시작할 때가 그냥 직업인에서 활동가로 바뀌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간사님이 저한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신이 났어요. 제가 간사스럽다고 그랬잖아요. 모르겠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간사는 그냥 월급쟁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간사님 방식은 제가 했던 방식과 달랐어요. 저는 옛날 사람인 것 같아요. 옛날 방식의 사업 구상을 하는데, 간사님은 되게 개인적이고 솔직하게 느껴졌고 와, 이게 젊은 사람들이 일을 벌여나가는 방식이구나 싶고 신선했어요.








두 번째. ‘함께 읽기의 소리를 듣기 위해 숨은 고수를 찾고 있는데요혹시 본인이 숨은 고수인 것 같나요?


 


숨어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사주팔자가 숨어있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고수라, 그건 상대적인 개념인 것 같아요. 누가 보기에는 아닐 것이고 누가 보기에는 고수일 거고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전문가 축에 들지 않을까 싶어요.








세 번째. 그런 의미에서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약 15년 동안 독서운동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영·유아 북스타트를 시작해서 성인들 일반 독서동아리까지 독서운동만 주로 하고 있고요. 15년 정도 했으니까 이 정도면 전문가지 않을까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는 북스타트 총괄실장을 맡고 있고 재단 이사이고 탕비실장입니다.








네 번째. 17년도에 저와 함께 독서동아리 지원을 했었는데요그때는 함께 읽기가 그렇게 대두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제가 매해 진행을 하다보니 요즘은 독서동아리보다는 함께 읽기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이러한 상황에서 함께 읽기란 무엇일까요.




동아리 사업을 담당하면서 함께 읽기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고 강의도 하고 있는데요. 강의할 때 ‘함께 읽기’만 강조하지는 않아요. 책 읽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하는데요,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가 있다, 이렇게 강의하게 되더라고요. 혼자 읽고 싶은 사람은 혼자 읽어라. 함께 읽고 싶은 사람들은 함께 읽어라. 그리고 함께 읽기도 결국에는 혼자 읽고 난 다음에 모이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아니면 읽지 않고 모여서 책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가서 혼자 읽게 되는 경우, 이런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의 비중을 어느 쪽으로 더 두지 않습니다. 함께 읽기가 혼자 읽기보다 더 중요해, 이러지는 않아요. 그냥 성격인 것 같아요. 각자의 성격이요.








다섯 번째.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 중 무엇이 더 맞다고 생각하세요?




그때그때 달라요. 만약에 제가 이런 시민단체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혼자 읽기만 했을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사람들 만나면서 함께 읽기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거죠. 함께 읽기, 즉 독서토론을 할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되냐면요, 아무 할 말이 없다가도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생각이 떠오르고 할 말이 생겨요. 그래서 말을 하면 또 상대방의 뇌가 작동해서 내 말에 반응하죠. 혼자 읽을 때도 비슷한 일이 뇌에서 일어나는 거 같아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 뇌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죠. 그런데 독서는 생각나는 것을 바로바로 말할 수가 없어요. 여백에 적어놓지만 저자가 바로 반응해주지 않죠. 그런데 독서토론은 서로 실시간 반응하니까 생각이 점프하는 느낌이에요. 생각이 더해지는 것을 넘어 곱해지는 경험이죠. 또 함께 읽으면 책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우리를 더 안전하게 해주는 기분이에요. 혼자 읽고 오독하거나 독단에 빠지는 경험을 함께 읽기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여섯 번째. 언제부터 함께 읽기를 시작하셨어요그리고 첫 함께 읽기는 무엇이었나요.




이 단체에 들어와서 간사님들하고 끊임없이 독서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다 실패했어요. (웃음) 요즘 하는 ‘책사가지’만 성공적이에요. 그 전에 시도했던 것들은 다 실패했어요. 가족들하고도 동아리를 해봤는데 그것도 실패했어요. 내가 왜 그런 걸 끊임없이 시도했을까? 왜 그랬을까? 그때는 책이 뭔지 우리가 알아야 이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면서. 말하자면 학습 동아리를 했던 거죠. 그래서 서 간사님하고 홍 간사님하고 그림책 동아리를 만든 적이 있어요. 셋이서 그림책 열심히 읽었는데, 몇 번 안하고 망했어요. 왜 망했지? 그림책 공부를 해야 돼, 이런 생각이었겠죠. 우리가 북스타트를 하면서 그림책을 모르면 안 된다 이랬던 것이고요. 그 전에도 그 다음에도 많이 시도했는데 이어지지 않았어요. ‘나를 위한 책읽기’가 아니라 일을 위한 공부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이 실패해 본 덕분에 ‘책사가지’는 나를 위한 책읽기, 우리를 위한 책읽기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일곱 번째. 언제 함께 읽기를 처음 했고 경력은 얼마나 되시나요.




간사님들하고 한 것은 한 10년 동안 여러 번 시도했고요. 그거 말고 광진구에서는 학부모들과 1년 정도 했고요, 노원구에서 북스타트 자원활동가들과 1년 정도 했고요, 면목동에서는 주민들과 1년 정도 했고, 서대문구에서도 학부모들과 1년 정도 했고, 포천에서는 주민들과 1년 정도 했어요. 되게 여러 군데를 다녔어요. 영동에서도 학부모들과 했고요, 청주와 제천에서는 교사들과 책모임을 했어요. 책모임은 동아리와 달리 약 20~30명 정도 모이고 좀 더 느슨해요. 가족들과는 언니, 조카들, 아들과 했었어요.








여덟 번째. 동아리를 구성하는 상황에서 사람 구하기가 좀 어렵거든요어떻게 구성할 수 있었어요회사에서는 회사 사람들하고 하면 되지만 노원구나 포천에서는 왜 학부모들이랑 하셨는지그리고 이 학부모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셨나요.




사람 구하기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내가 동아리를 하고 싶을 때, 하나는 독서운동, 독서동아리 운동을 하고 싶을 때. 이 두 가지가 다른데요. 내가 독서동아리 하고 싶어. 나 혼자 안 읽고 싶고 사람들하고 같이 읽고 싶어. 이럴 때는 되게 쉽더라고요. 주변 사람들한테 내 고민을 말하고 혼자 읽기 답답해서 같이 읽는 사람이 필요해. 이러면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주변 사람인 거죠. 직장 동료 이런 사람들인 거죠. 이거는 쉬워요. 많을 필요도 없고요. 마음 맞는 사람들 몇 명한테만 말하면 되니까요. 그 사람들은 나하고 관계가 있는 거죠. 신뢰 관계도 있고, 내가 왜 제안하는 지도 알고 있고요. 그리고 제가 제안할 때 수락할만한 사람한테만 제안하게 되죠. 내가 저 사람한테 하자고 하면 좋다고 할 걸, 이런 사람들한테만 제안하게 되니까요. 내가 동아리를 할 때는 별로 문제가 없어요.




독서운동을 할 때가 어렵죠. 독서운동을 할 때는 내가 그 모임에 가서 뭔가 얻어오려고 하는 것 아니라 어떤 모임을 만들어내고 싶다 하는 생각으로 하게 되는데, 그게 사심인 거죠. 계몽이 있는 거예요. 어려워요. 목표 의식도 있는 거고요. 독서 운동을 할 때는 이게 좀 더 확산되면 좋겠고 많았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두 가지 사심인 건데요. 하나는 사람을 대상화하게 되고요. 뭔가 선동하려는 마음인 거죠. 또 하나는 양적인 거예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는 거죠. 저는 강의를 하러 많이 가요. 그럴 때는 제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주최 측에서 모아요. 저는 그 사람들한테 가서 강의를 하는 거죠. 그 사람들은 강의를 듣겠다고 자발적으로 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대상화되지 않는 거죠. 저는 그 분들한테 혼자 책 읽기가 힘들면 함께 읽으라고 해요. 그리고 제 강의는 ‘비경쟁 독서토론’ 워크숍이거든요. 독서토론을 직접 해보는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경험시켜 드리는 거죠. 그 분들이 정말 재미있네, 유익하네, 그런 사람들한테 계속 하고 싶은 분들 남으시라. 하고 남은 분들하고 의논해서 언제 모일까요, 무엇을 읽을까요, 그 다음부터 같이 의논해가면서 하면 되니까요. 그런 식으로 책모임 운동을 했어요. 강의와 워크숍이 제일 효과적인 것 같아요.








아홉 번째. 특수 상황인 것 같아요일반 분들은 그런 상황이 잘 없으니까요그래서 주변 사람들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꼬셔요아무리 제안을 수락할만한 사람이라도 물밑 작업을 잘해야 되잖아요.




‘책사가지’를 예로 들게요. 책사가지가 무엇이냐면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간사님들이 모여 있는 동아리인데요. 책사회 가지가지라는 뜻이에요. 이게 성공한 이유는 진짜 간사님들 덕분이에요. 이게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냐면요, 담배꾼들 때문이에요. 우리 책사회의 담배꾼들이 있는데 임 간사님하고 서 간사님하고 저하고 셋이 담배꾼이에요. 담배 피우면서 오만가지 이야기를 해요. 아무 목적 없이 수다를 떠는 거죠.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 이야기도 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 조직, 우리 공동체, 우리 단체. 세상에 완벽한 단체가 어디 있겠어요. 이게 문제이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다가 개선하고 싶어져요. 우리 조직이 좀 더 좋았으면 좋겠다. 아마 대부분의 조직에서 생기는 문제는 내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생길 겁니다. 내 의견이 반영되려면 수평적이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구조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근데 우리나라는 이게 잘 안 돼요. 내 의견이 두 번 이상 거부되면 그다음부터 말하기 싫어지죠.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 구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국 우리는 독서운동 하는 단체니까 독서동아리를 만들어서 일 이야기 말고 조직 이야기 말고 아예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해서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하는 거 아닐까. 임 간사님이 신뢰라는 단어를 많이 강조했어요. 신뢰가 쌓이면 나머지는 쉽게 의논해갈 수 있다. 그런데 신뢰가 없으면 어떤 일을 의논해도 이야기가 잘 안 된다. 그러니까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것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독서운동을 하는 단체니까 독서동아리가 맞지 않냐. 이런 식의 이야기가 된 거죠. 우리는 그때 책모임이라고 했어요.




책모임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그 전에 간사님들하고 했을 때 왜 실패했냐면 그냥 무작정 물어본 거예요. 할래? 말래? 으응…… 하시죠. 이렇게 답한단 말이죠. 그래? 그럼 몇 월 몇 일 몇 시 어디로 와. 이 책 읽을래? 말래? 으음…… 읽죠. 그러면 이거 읽어. 이런 식의 의사소통 구조는 나는 물어봤으니까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실패한 거예요.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책사가지 동아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1년 정도 했을 거예요. 1년 동안 만들자 해놓고 만들지 않고 셋이서 그래 만들자 합의를 했지만 하지 않는 거죠. 다음 담배 타임에 또 만나서 만들면 좋지 해놓고 또 안 만들어요. 그리고 또 다음 담배 모임에서 만나요. 떠들다가 담배 안 피우는 간사님들은? 우리는 몇 달째 이야기했지만 아닌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 않느냐. 이러면서 슬슬 이야기해볼까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담배 안 피우는 사람들하고도 밥 먹으면서 한마디, 차 마시면서 한마디. 그 한마디를 던지고 마는 거예요.




그렇게 했어요. 좋다고 해도 시작하지 않는 거죠. 그냥 내버려두는 거죠. 진짜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니까요. 무르익을 때가 언제인가. 그거는 모른다. 저절로 무르익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어느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것이 무르익은 때이지. 누가 날짜를 정해서 하는 건 무르익은 때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진짜 기억이 안나요. 어느 날 왜 모이게 되었는지요. 그때 모인 사람이 임 간사님, 서 간사님, 저, 박 간사님, 김 간사님. 이 다섯 명이 모였어요. 모든 간사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지는 말자.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이 다섯 명이었어요. 그때 빠진 사람이 2~3명이었어요. 우리가 그때 전체가 7~8명이었던 것 같은데요. 2~3명은 안 들어왔어요. 그런 것에 대해서 서로 전혀 부담 주지 않는 걸로 했어요. 그때 모여서 첫날 뭐할까, 뭐할까, 어떻게 할까, 했어요.








(다음편에 계속)








글 ㅣ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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