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상북면. 이번 인터뷰이를 추천받지 않았다면 과연 면 단위의 이 지역을 스스로 방문할 일이 있었을까?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떠나지 않고 평생 머물면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으로 실천하다 보니 어느덧 자연스럽게 환경운동가가 된 사람, 그리고 지금은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될 작은도서관의 관장이 되어 살기 좋은 양산시를 만들기 위해 쉼 없이 행동하는 이를 만나러 떠났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사유하는 사람이 언젠가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는데, 사유와 행동을 분리하지 않고 씩씩하게 스스로가 믿는 길을 걷고, 이 길에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초대하는 허문화 우리동네작은도서관 관장을 만나면 이 오래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고향 양산에서 환경운동가로 시작하여 작은도서관을 이어받다.
허문화 ‘우리동네작은도서관’ 관장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은 경상남도 양산시라는 작은 도시이다. 그 안에서도 도서관이 위치한 상북면 인구는 약 12,000명, 평균 연령 60.5세의 마을, 길을 나서면 주변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은지 인사하느라 힘들다고 아이들이 너스레를 떠는 곳이다. 하북면에서 태어난 허 관장은 자식들에게 고향을 지켜주고자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상북면에서 쭉 거주하고 활동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 해 결혼 후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10년 넘게 방과 후 논술교사로 일했다. 알음알음 모두가 이웃 사촌인 이 마을에서 그동안 수업을 거쳐 간 아이들, 동네 어르신들, 학부모 등, 동네 사람들에게 이 작은도서관은 밤늦은 시간 오롯이 불을 켜고 그 자리를 지키는 등대가 되었다.
처음부터 작은도서관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2004년, 아직 유아교육법도 시행되기 전이던 때, 둘째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이 학부모 몰래 유치원을 팔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학부모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힘을 합쳐 이를 막아선 것이 공동체 활동에 뛰어들게 된 첫 계기였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올바른 사람들 여럿이 움직이면 정당한 일이 된다는 것을 정말 몸소 느꼈어요. 살아보니까 불편한 점이 있거나 불이익을 당할 때 혼자 저항하면 혼자 별난 여자가 돼요. 그런데 여러 명이 같이 저항하게 되면 이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같이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석계산업단지 반대운동, 음식물폐기장 반대운동, 탈핵 운동 등 지역에서 벌어지는 환경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공부하고, 몸소 행동하는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라는 환경운동가로 자연스럽게 변화하였다. 우리동네작은도서관의 시작은 이때 환경운동연합의 사무국장으로 함께 활동했던 박재우, 현 양산시의원이었다. 2016년,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가게 된 박재우 전 관장이 작은도서관의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선뜻 이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아 준 사람이 바로 허문화 관장이다.
“이 동네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없습니다.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나,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어린이도서관이 있을 뿐이죠.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만들기는 어려운 법이에요. 이런 작은 동네일수록 도서관이 있어야지만 도서관을 통해서 아이들도 책을 빌리고 엄마들이 모이고 하면서 이사를 좀 덜 나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이사를 나가잖아요.
도서관 운영을 넘겨받으면서 전세금이야 나중에 돌려받는 돈이고,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는 스스로에게 쓰는 돈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남들이 차를 몰고 다니면서 쓰는 기름값과 유지비 정도의 돈을 저는 그저 도서관을 열고 닫고, 책을 읽으며 나누는 데 쓴다고 생각했어요. 즉, 남들은 차를 몰지만 저는 차 대신 도서관을 몰기로 했지요. 이 작은도서관에는 근처 복지관에서 문해 교육을 받은 할머니들이 자주 찾아오세요. 수업이 끝나면 동화책 같은 것을 빌려 가신답니다. 『신데렐라』, 『빨간 모자』, 『백설공주』 같은 들어 봤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동화책들을 이제야 읽으시면서 즐거워하세요. 가끔 책을 돌려주실 때 감상을 여쭤보는데 ‘참 재밌더라, 빨간 모자, 갸가 좀 짠하더라.’ 이런 감상평을 들려주세요. 이것만으로도 일종의 독후활동이죠. 아이들과 주부들도 자주 찾아와요. 그리고 저녁에는 근처 공장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일을 마치고 들르기도 합니다.”
동네에 꼭 있어야 하는 곳, ‘도서관’
작은 동네이다 보니 청소년들이 자원봉사 점수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곳도 부족하다. 허 관장은 이에 도서관을 봉사점수를 줄 수 있는 기관으로 등록하여 아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단, 이때도 꼭 ‘책을 읽어야’하는 게 이 도서관만의 특징.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책 한 권을 읽어야지 봉사를 할 수 있다. 논술 교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사비를 털어 복권의 추천도서를 중고도서로 사서 아이들에게 돌려 읽히곤 했다. 교육비에 꼭 필요한 도서비를 추가해도 책만 가져가고 책값은 못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하는데, 꽃 도둑도 도둑이 아니라 하고. 맨날 나만 손해야. 맨날 꽃 훔쳐 가고, 책 갖고 가서 안주고. 아휴 정말.”
입으로는 노래라도 하는 것처럼 경쾌하게 투덜대지만, 눈은 활짝 반달로 웃고 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들도 대부분 허 관장의 개인 장서를 가지고 와 채웠다.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머무는 이 도서관은 동네의 공유지이자 자신의 큰 서재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는 도서관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 있는 식물이든 책이든 뭐든 다. 이렇게 교감을 한다는 느낌이, 도서관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막 들거든요. 어떤 때는 좀 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거나 하면 한밤중에도 여기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도서관은 허 관장에게도 따스한 아지트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사랑방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중간 중간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허 관장이 내려주는 따뜻한 원두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갔다. 그로 인해 이야기는 중간 중간 끊겼지만, 평소 이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도서관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 있었다.
“카페를 가면 내 돈 내고 차를 마셔야 되잖아요. 사람들에게 여기 오면 목련차도 있고, 커피도 있고, 이렇게 마실 수 있다고 꼬시는 거죠. 여기 오면 일단은 뭔가를 사 먹어야 하는 부담이 적고, 그다음에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환대의 공간도 되거든요. 이곳에 익숙해지면 계속해서 찾아오게 돼요. 본인들은 모르지만 그런 것을 제가 의도한 거죠. 브라질 쿠리치바시가 가난한 동네였다가 ‘지혜의 등대’라는 마을 작은도서관들의 힘으로 변화해 갔던 것처럼 저 역시 단지 도서관을 단지 운영하는 게 아닌, 마을 공동체가 조금 살아나가는 것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유난히 책 욕심 많았던 아이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 책을 좋아했다. 출판사 판매원들이 오토바이에 전집을 실어 동네 곳곳에 판촉을 다니던 시기,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에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세로쓰기 로 된 ‘세계문학전집’을 부모님 허락도 받지 않고 겁 없이 덜컥 산 기억도 있다.
“그 당시 9만원인가 그랬어요.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50만원도 넘는 금액일겁니다. 아저씨가 ‘학생, 너 책 좋아하지?’하고 권하니까, 제가 ‘울 엄마가 사줄 거예요.’라고 덜컥 계약을 했어요. 그 시절에 어린아이가 한 계약이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말했더니, 이후에 엄마한테 엄청 얻어 터졌죠. ‘가시나가, 간도 크그로!’ 라면서요(웃음). 친구 중에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 사는 아이가 있었데, 그 집에 가면 온갖 전집류들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부러웠던 것 같아요. ‘엄마, 내가 이런 책 읽으면 공부를 잘할 수도 있어.’라면서 열심히 설득한 기억이 나요. 『전쟁과 평화』,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이런 책을 그 전집으로 읽으면서 자랐어요. 지금도 친정에 가면 그 책이 있답니다.”
그에게 책 읽는 즐거움, 읽고 나누는 즐거움을 처음 알려준 것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초등 5학년 때 거제도에서 오신 담임 선생님이 거제도와 하북초등학교의 학생의 펜팔을 주선하였다. 허 관장은 그때 알게 된 펜팔 친구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선생님은 이 외에도 문집 만들기 등 아이들이 책과 글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두 번째 스승은 역시 ‘도서관’이다.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 아침 청소를 맡게 된 것이 계기이다. 황선미 작가의 『처음 가진 열쇠』의 주인공처럼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의 학교 도서관을 홀로 누리는 즐거움. 청소하며 흘깃흘깃 본 책등과 표지에 이끌려 처음 뽑아 든 책은 『간디』 위인전이었다고. 두 번째로 감동받은 책은 『나폴레옹』, 이후 거침없이 활동하는 환경운동가인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예상이라도 한 걸까?
세 번째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울산에서 전학 온 친구였다. 지금은 시인이 된 이 친구와 짝이 되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책 친구의 발견이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생이 되어 대학도서관에 처음 가보았다. 양산에 시립도서관도 생기기 전이라, 이렇듯 층층이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처음 와보자니 숨이 막힐 것 같이 좋았다. 그렇게 평생 책을 가까이하고, 지금도 운영하는 작은도서관 외 지역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강연을 하는 등 도서관과의 인연을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삶과 이어지는 함께 읽기의 시작
대학 시절 소설 창작회에 들어갔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공부하는 동아리였다. 이 외에도 독문학을 전공하는 동기들과 독일 작가 문학을 읽는 동아리를 했다. 남자 동기들의 군 입대로 해체되기 전까지 헤르만 헤세,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이제 린저 등의 독일 작가의 책을 쭉 읽었다. 책을 읽고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정도였다. 함께 읽기의 참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이다.
2018년, 한 교회 공동체에서 독서동아리를 시작해 보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허 관장이지만 뻗은 손을 맞잡았다. 6살 아이부터 70세 노인까지 40여 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임이었다. 이를 위한 책 선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 그가 선택한 책은 『연탄길』 작가인 이철환 작가의 그림이 아름다운 책 『위로』. 아이들은 그림을 보고, 어른들을 글을 읽었다. 책을 나눠 갖고 한 달 뒤에 모여서 각자 포스트잇에 가장 감동있는 문구를 쓰고, 이를 한 쪽 벽에 빼곡히 붙이도록 했다. 메모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나누니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책을 읽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소중한 경험이다.
지역 주민들의 함께 갖은 이 경험은 또 다른 모임으로 연결됐다. 양산시 국회의원으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었던 서형수 의원의 의원실에서 주도했던 토론회였다. 서 의원실 측은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환경 관련 토론회를 열고 싶어했고, 허관장은 이를 독서 모임으로 풀어냈다. 2019년 12월 서형수 의원실 주최, 양산학부모행동·해오름인문학교실·우리동네작은도서관·평화를잇는사람들·채식평화연대 주관으로 <환경·인문학 강연·토론회 '묻고, 묻고, 묻다'>를 열었다. 가축 살처분의 민낯을 드러낸 문선희 작가의 『묻다』를 함께 읽고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했다. 한 시간 강연 후 한 시간의 토론을 진행했는데, 이에 참여한 40여 명의 사람들이 돌아갈 때는 모두 두 볼이 빨갛게 상기가 될 정도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후에도 수의사, 지역신문대표, 채식활동가를 강연자로 내세우고 토론을 진행했다. 책으로 환경과 인문학을 나누는 자리가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책으로 공동체가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구나.’라는 걸 뜨겁게 느낀 자리였다.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과 나누는 함께 읽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추었지만 우리동네작은도서관에서는 크고 작은, 그야말로 남녀노소의 독서동아리가 끊이지 않고 열렸다. 지역의 독서문화의 터전을 닦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엄마들을 중심으로 모여 낮 시간에 진행한 <그림책 동아리>를 시작으로, 각자 자신이 읽은 책을 들고 와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형식의 <책 읽는 밤에>, 방학을 이용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달달한 도서관>, 초등학생들 또는 성인들과 함께 한 여러 글쓰기 프로그램 등. 마땅한 책이 없으면 도서관에서 빌려주고, 방학에는 바쁜 엄마들을 대신해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시를 읽거나 짓고 동화책을 읽는 자리를 꾸준히 기획하고 벌렸다. <바른말싸미>라는 이름으로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아직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과 교과서를 필사하고 교정하는 수업, <어쩌다 독서>, <아무거나 시>, <숙제의 기술> 등을 진행하며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했다. 물론 이 모든 프로그램은 참가비가 없다. 꾸준히 읽고 쓰고 나누는 삶 속에서 좀 더 공부하고자 경북대 대학원에서 문학치료학을 수료하였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문학을 통해서도 충분히 치유 받고, 책 속 단 한 문장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배운 지식은 다시 고스란히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쓰였다. 근처에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열었을 때, 공적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첫 2년 동안 무료로 독서치료와 문학치료를 활용한 <두근두근 도서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좋은 프로그램 덕분에 지역아동센터는 올해 하반기부터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2019년, 2020년, 다문화 가정 아이들, 저소득층 아이들과 독서치료와 문학치료를 바탕으로 10주차 프로그램을 했어요. 딱 석 달이 지나니까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이 보였어요. 타인에 대한 이해, 공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보람을 참 많이 느꼈어요. 제가 지역아동센터로 가서 수업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센터에서 도서관까지 걸어와서 수업을 듣게 했어요. 짧은 거리지만 이 공간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또 새로운 거잖아요. 간단하게 어른들처럼 감정 나누기, 소감 나누기 등을 거치면서 아이들도 행복해했고, 수업 진행 과정을 도서관 밴드에 공유하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 자신들도 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어요.
채인선 작가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을 가지고 사랑, 배려, 평등, 자유와 같은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동시를 가지고 해보기도 했어요. 아이들마다 각 개념에 대한 생각이 다 달라요. 각자 이야기하며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고, 존중받고, 함께 피드백하는 과정이 참 좋더라고요. 이 모습을 본 지역의 한 케이크디자이너가 자신도 뭔가 참여하고 싶다고 하시며, 크리스마스 전에 모든 재료를 다 준비해 오셔서 아이들과 생크림 케이크 만들기를 해주셨어요. 아이들 10명이 갓 만든 생크림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본다면서 즐거워하며 나눠 먹고 집으로 가져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어른들의 모임도 물론 이어나갔다. <책 읽는 밤에>는 부담률을 낮추기 위해 한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아닌 각자가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모임으로 꾸렸다. 평소에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본 경험이 적은 이들은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다른 이의 피드백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쉽게 받고, 때로는 모임을 포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책을 추천하고, 추천받은 책을 서로서로 빌려 가며 모임을 이어갔다. 대신 빌려 간 책은 반드시 읽고 오는 것이 원칙이다. 느낌 공책을 만들어서 단 한 줄이라도 자신이 받은 느낌이나 인상 깊었던 문장을 적어 보도록 했다.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바빠 책을 놓았기에 처음에는 ‘내가 책을 어찌 읽어요.’라며 빼던 사람들이 어느덧 책 읽는 재미에 한 발짝씩 다가갔다. 이제는 고전도 함께 시도해 보려는 의지가 생겼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대뜸 ‘나 글쓰기 못해요.’라며 한 줄 적기도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작문 시간인가, 글쓰기 시간인가?’라며 핀잔주듯 놀려도 펜을 놓지 않고 글쓰기에 푹 빠져있다. 서로가 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하는 풍성한 시간을 갖는다.
물론 모임의 어려움도 있었다. 작은 동네다 보니, 서로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여서 가끔 불편한 관계의 사람이 모임에 들어오면 슬그머니 모임에서 빠지기도 한다.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를 오래 늘어놓는 사람은 살짝 이야기를 끊어 주어야 하는데 이 부분도 쉽지는 않다. 따라서 모임을 시작할 때 각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딱 2분씩만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시작하는 것으로 조율해 보고 있다.
작은도서관과 독서동아리
최근 작은도서관에서 독서동아리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눈에 띈다. 자체적인 움직임일 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때로는 행정적 상위기관에서 갑작스럽게 공지처럼 내려오는 일일 때도 있어서 많은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은 난감해한다. 독서동아리를 운영해야 하는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분들이 어려워하시는 이유는 독서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작은도서관을 운영한다고 다들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스스로가 책을 가까이하고 읽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책을 추천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막상 독서동아리를 하려고 해도 어떤 책을 어떻게 선별해서 할지 막막하거든요. 저는 논술 교사일을 10년 동안 하다 보니 제 나름의 추천도서 리스트가 있어요. 이건 단지 어느 기관에서 추천한 목록을 갖고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사실 그런 리스트가 재미없는 경우도 많거든요. 직접 읽어보고,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책을 권해야 추천받은 사람도 만족하고 책에 흥미를 갖게 되어요.
또 책을 쓰는 사람이 꼭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양산문인협회의 편집국장으로 있는데, 가끔 협회에 독서동아리를 운영해줄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요. 제가 우려하는 점은 독서동아리를 운영하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해야 하거든요. 이 점은 분명 차이가 있어요. 도서관의 운영자가 정말 책을 좋아한다면, 동아리 운영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독서동아리,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허문화 관장이 걸어간 길은 험하더라도 결국 사랑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을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더 살기 좋은 동네가 되어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즐겁게 모이는 곳이 되게끔 하고 싶은 마음. 없애는 건 쉽지만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렵기에 도서관을 이어받았다는 말처럼, 더 편하고 발전된 도시로 떠나는 일은 쉽지만, 자신의 고향에 발붙이고 살면서 그곳을 변화시키기 위해 실천하는 삶은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함께 나누는 이유를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개개인의 발전, 그리고 더 나은 사회의 변화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고 이야기한다. 독자인 우리가 개인적인 발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에 참여하는 가장 첫 단계는 읽고 나누고 토론하는 독서동아리일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우리동네작은도서관처럼 지역을 위해 애쓰는 곳이 나의 지역에 있다면 참여하고 도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우선 힘을 실어주면 어떨까?
허 관장이 소개하는 책 3권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허문화 우리동네작은도서관 관장이 독서동아리들에 추천하고 싶은 책 3권
- 『위로』(이철환, 자음과모음) : 우선 그림이 무척 섬세해요. 동물과 식물을 너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어요. '높이를 갖고 싶으면 깊이를 가져라' 같은 멋진 말도 많지만, 그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요. 높이와 깊이, 기다림, 사막, 나무, 자연 등. 책 속에 엄마 팬더의 이야기가 있는데 함께 읽는 엄마들이 같이 많이 울었어요. 이 책은 때로는 위안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는 정말 좋아하는 책이고 주변에 항상 하나씩 사서 갖고 있으라고 추천하는 책이에요. 이철환 작가와 관련한 5분짜리 영상도 있어서 책 이야기를 하면서 이 영상도 함께 나눠요.
판다 이야기 영상: https://youtu.be/8Y5_e3dQfzY
-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지음, 프레데릭 백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아이들) : 나온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인데 지금 보아도 내용도 그림도 훌륭한 책입니다. 황무지가 초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잘 나타낸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나무를 심어야겠다, 꽃밭을 가꾸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저도 지금 도서관 바깥에 작은 꽃밭을 만들고, 강 건너 산책로에 뿌리려고 접시꽃 씨앗도 모아뒀어요. 여러 판본이 있는데 프레드릭 백의 그림을 그대로 넣은 ‘두레아이들’ 출판사의 판본을 가장 좋아합니다. 36분짜리 애니메이션도 함께 보세요.
애니메이션 영상 보기 : https://youtu.be/gx5He0CsnAE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 중국 현대사를 10가지 키워드로 풀어가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도 10가지 키워드 중에 독서와 글쓰기도 언급됩니다. 이는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또한 자본이 들어올 때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20~30대 분들께 특히 이 책을 추천합니다. 키워드 하나하나씩 모임에서 나눠 읽으면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쏟아질 책입니다. 또한 작가의 문장이 좋고 번역이 매끄러워서 줄을 많이 치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인터뷰 일시: 2021. 9. 9.(목)
인터뷰 진행: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윤진희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