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9/10, 10/10

위안부 문제, 적은 내부에도 있다

by 책리남

2010년 12월의 어느 수요일. 사람들이 점심밥을 먹고 있거나 먹기 위해 분주한 12시. 영하의 온도와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어김없이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1992년 이래로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이루어진 수요시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여러 순서가 진행되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시간(자유발언)이 있었다. 대학교 동기들과 자리를 참석한 나도 시위를 주관하는 대표님의 권유로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고, 우리를 보고 미소짓는 할머니들에게 다시 나오겠노라고 약속했다.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내 순서 다음으로 한 정치인이 나왔다.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당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몇 분간을 정부에 대한 험담을 했을까. 마이크를 잡은 시간의 1/10정도를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말에 사용했다.

그녀는 나의 미간을 찡그리게 했다. 말은 청산유수요, 그때 당시의 정부를 반대하는 자에게는 시원하고 통쾌한 말이었겠지만 왜 할머니들 앞에서 그런 말들을 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 동기는 '유일하게 불쾌했던 순간'을 그 정치인이 마이크를 잡았던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녀가 할머니를 위해 했던 좋은 말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이 정치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기 위해 수요시위에 온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9/10을 수요시위에 대한 감상과 할머니들을 위한 따뜻한 말, 위로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수요시위에 참여한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데 사용했다. 그것도 교묘하게 일본을 향한 분노를 당시 정부에 대한 분노와 겹치게 하면서.

정치인이라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수요시위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장해서 자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더 힘썼다면, 그것은 그저 할머니들을 이용한 것뿐이다.

2011년 8월30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군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2015년 8월30일. 4년이 흘렀지만 위헌 결정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었다는 뉴스보도가 나왔다. 한일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했던 현 정부도 그 뒤로는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은 상태이다. 현 정부는 극우 정치성향의 현 일본정부를 압박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이끄는 정도까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010년 12월, 그때 당시 수요시위에 오신 길원옥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992년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여기에 나왔지만 저기에서는(일본대사관을 가리키시며)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이 추운 날 여러분께 미안합니다. 일본정부도 우리에게 관심을 안주고, 우리나라 정부도 관심을 안주지만, 학생들이라도 똑바로 배워서 똑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우리에게 희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추운 날 여러분께 정말 미안합니다."

손자뻘 되는 우리들과 그보다 더 어린 학생들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하시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만 피력하거나, 할머니들을 이용하는 정부. 이들의 선심쓰는 듯한 관심이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사실 온전한 관심이 필요하다. 1/10이 아니라 9/10도 아니라 10/10, 100%. 순수하게 그들을 위로하고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며 힘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나면이 아닌, 시간을 내서 수요일 12시에 한 자리에 모여 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에도 벌써 여덟 분의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더 이상 이 일이 후회만 남길 역사로 남기 전에 우리의 100%를 움직여보자. 어제도 수요시위는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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