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정리를 하고 나서

내가 묻어 나와 반가웠던 밤

by 책리남

내가 갖고 있는 책들을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500권이 넘게는 있는 것 같다. 독립하기 전에 집에 있던 책들까지 다 챙겼더라면 아마 1,000권이 넘었을 것이다(이사를 거듭하면서 다 없어졌다 ㅜㅜ). 브런치에 글을 쓰시는 분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는 책 욕심이 많은 편이다. 대학생 시절 쫄쫄 굶으면서도 책은 어떻게든 구입을 했었다. 빌려보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다.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내게 영향을 주는 문장에 밑 줄 긋고, 그런 부분 중에서도 페이지 전체나 문단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페이지 마커를 덕지덕지 붙여야 한다.


최근에 읽은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의 모습.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페이지 마커를 붙여놓는다. 안에 들여다보면 밑줄 친 흔적이 덕지덕지 있다.


여하튼, 어젯밤 갑자기 좀 너저분하게 놓여있던 책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처음 이사할 때는 책 종류별로, 그리고 책 키 높이에 맞추어 정리를 했었는데,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일단 정리가 필요할 듯싶었다. 침실 한 구석에 4개의 작은 책장을 같이 뭉쳐놓아서 놓았는데 그 사이 구입한 책들은 늘어났고, 기존의 책들도 읽었다 뺐다를 하다 보니 참 보기 흉한 모습이 되었다고나 할까. 뭔가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들게 생겼다고나 할까(여태 안 해놓고선).


잘 보면 4개의 작은 책장이 모여있다. 그 외에 잡다한 물건들도 그냥 꽂아놓은 모습..


사실 내게는 큰 책장이 있다. 하지만 그 큰 책장은 반쪽자리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 책상 뒤에 책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퓨터 책상의 높이만큼 위로는 책을 꽂아놓았지만 그 밑으로는 그냥 발을 놓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큰 책장을 4개가 모인 책장 자리에 놓고, 밑에 공간까지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면 저 4개의 책장 중 낡은 것들은 좀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쪽자리 책장. 위에 3칸만 사용하고 밑에 두 칸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 모습은 아래를 보면 나올 것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 2시간 이내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던 책장정리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너무 만만하게 본 탓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책을 옮기다가 계속 들춰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책도 읽었었지'부터 시작해서 '이 책 재밌는데'하며 다시 한번 들춰보고, 대학 시절 봤던 서적들을 보며 괜히 감상에 젖기도 하고... 여하튼 아래와 같이 정리를 마치긴 했다. 중간 중간의 장면도 찍어놓을걸 후회는 되는데 감상에 젖어있어 그 생각을 차마 하지를 못했다.


아래 두 칸은 원래 사용하지 못했다. 발을 놓는 용도로(?) 사용했다. 정리를 했는데도 너저분하게 보이는 건 아마 기분일 게다.

정리를 다하고 청소도 조금 마치고 나니 자정이 다되어갔다. 저녁 8시부터 시작했으니 4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를 했는데도..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실은....


이런 붙박이장이 하나 있는데 이 안에도 책이 가득하다. 차마 보여주기 처참한 모습이라 겉모습만 살짝 올려본다. 이 안에는 대학시절과 대학원 시절 공부했던 페이퍼들과 논문들도 포함되어있다. 차마 내가 공부했던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부엌의 천장 쪽 붙박이장에도 책들이 있다. 보통 그릇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장소인데... 언젠간 큰 서재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


여하튼, 책들을 정리해보고 책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책에 곧 내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오래전 써놓았던 일기를 오늘 다시 들여다본 것처럼, 그 책에 얽혀있는 나의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심지어 읽지 않은 책에게서 조차, '이거 그때 그런 마음으로 샀던 건데'라고 떠올리기도 했다. 선물 받은 책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떠오르기도 했으며 전공서적을 집어 들 땐 강의실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책 하나하나에 나라는 존재가 묻어있었다.


결국 어제 밤늦게 잠이 들었다. 무거운 책장을 옮기느라 몸이 뻐근해서 그런가 잠도 쉬이 들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해보니 책에서 묻어 나오는 내 얘기들이 참 반가웠던 밤이어서, 괜히 설레고 두근거려서 잠이 못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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