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공부를 하며 살아왔을까 02

나의 스승들

by 책리남

https://brunch.co.kr/@bookrenam/22 1편


대학 시절에, 괴짜 같으면서도 겸손의 미덕을 겸비한,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교수님이 계셨다. 흔히 출석이라는 것을 부르신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오늘은 출석을 불러볼까요?' 하면서 출석을 체크하고는 했다.


우수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온 날(보통 날씨가 너무나도 좋은 날)에는 강의실에 들어와 학생들은 한번 둘러보시고 그리고 창가로 가서 밖 경치를 한번 둘러보신다. 그리고 다시 학생들을 향해서 '오늘은 제 강의보다 밖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군요. 휴강하겠습니다'하며 홀연히 휴강 선언을 하고 밖으로 나가신다. 한 학기에 2번 정도는 꼭 그러시는 분이었다. 그 잠깐의 여유시간에 동기들과 학교 곳곳을 쏘다니며 웃고 떠들거나 대학로에 가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고학년이 되고, 그 교수님은 은퇴하실 시기가 되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교수와 제자가 함께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하고 공부도 하는 세미나 형식의 강의가 있었다. 강의 인원은 20명 아래로, 절대평가가 이루어지는 수업이기에 인기과목이었다. 게다가 그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이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에, 나는 수강 신청시기에 무수한 클릭질로 해당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다.


마지막 강의,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다. 자유로우신 그분도 마지막이라는 것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신 것인지, 본인의 이야기들을 하셨다. 이래저래 학교가 말도 많고 문제도 많지만 풍경만큼은 어느 곳보다 좋아서 좋았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같이 부족하고 능력 없는 사람이 강단에 서는 거예요. 진짜 스승은 밖에 있어요. 바람, 우연히 만난 사람, 기둥, 넘어서지 못하는 벽, 놓쳐버린 버스, 떨어지는 낙엽. 이런 게 진짜 스승이지요. 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좋은 경험 하세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분에 걸맞은 말씀을 남기셨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게 된 것이지만, 그분이 학기 중간에 휴강을 하셨던 것은 정말 진심이었던 것이다. '본인의 강의보다 밖에서 배울 것이 더 많은 날'은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는 시간의 경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라는 뜻이었다.


나는 사실 마지막 수업을 들은 날, 집에 가는 길에 라디오를 듣고 다음 날에 광화문 쪽의 일본대사관 앞을 찾았다(관련된 글: https://brunch.co.kr/@bookrenam/1) 그 교수님의 마지막 말은 수동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곳곳에는 배워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직시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외면하고 모른척하거나, 아예 모르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이 말이다.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밝혀나가고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진짜 공부가 아닌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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