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일상의 정갈함으로

작은 반복이 삶을 다시 단단하게 세우기 시작했어

by 선형

그날 이후 엄마의 하루는 조금 달라졌어.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어. 하지만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부엌으로 간단다. 입을 물로 헹군 뒤 정수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셔. 깨끗한 물이 목을 지나갈 때면 몸이 조용히 깨어나는 느낌이 들어. 매일 같은 아침 같지만 몸은 하루하루 다르게 반응해.

오늘은 손가락 마디가 살짝 아프고 뻐근했어. 부엌 문틀에 달아 둔 철봉에 매달렸던 게 원인인 것 같아. 아이들 키 크라고 달아 둔 건데 요즘은 내가 더 자주 쓰고 있어. 요가 매트를 펴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잠깐 매달려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몸이 조금 풀린단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단백질 쉐이크 한 컵을 마셔. 복잡한 루틴은 아니야. 하지만 그 순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정돈된다.

예전에는 눈을 떠도 한참을 멍하니 보낼 때가 많았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시간만 흘려보내곤 했지. 지금은 조금 달라. 나만의 리듬이 생겼거든.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의 식탁을 챙기며 하루를 시작해. 이 평범한 아침이 엄마의 하루를 세워 준단다.

점심이 가까워지면 배보다 먼저 머리가 반응해.

“오늘은 뭘 먹어야 기분이 좋아질까?”

예전에는 아무거나 먹었어. 배를 채우기가 먼저였지. 기름진 찌개, 자극적인 음식, 달달한 빵들. 배는 채워졌지만 몸은 늘 무겁고 피곤했지. 그게 일상이었고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먹는 이 음식이 나를 살리는 걸까, 아니면 병들게 하고 있는 걸까.’

딸이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맞았던 백신 때문에 부작용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생각났거든. 그 질문 하나로 점심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 점심은 오후를 살아낼 연료라고 생각하기로 했거든.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유혹이 많은 시간이야. 일을 마치고 소파에 앉는 순간 “오늘도 수고했다”는 핑계로 치킨이나 맥주가 떠오르곤 했지. 하지만 그 위로는 오래가지 않았어. 속은 더부룩했고 다음 날 아침은 더 피곤했거든. 보상의 의미를 바꾸기 위한 시간이 꽤 힘들었지만 조금씩 집밥을 챙겼어. 특별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나를 다독이기에는 충분했지.

이제 하루 세 끼는 단순히 먹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이 되었단다. 집밥으로 하루를 채우고 나면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이겠지. 예전에는 이게 너무 싫었어. 의미 없는 반복 같았거든. 그 시간에 책을 한 장 더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알아. 이 반복도 내 삶의 일부라는 걸. 예전에는 치우는 게 싫어 밖에서 먹는 걸 택했다면 이제는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했어.

식기세척기를 들였지. 사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지속 가능한 생활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 깨끗이 비워진 싱크대를 보면 마음도 함께 정돈된다. 청소도, 빨래도, 침대 정리도 마찬가지야.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마음이 조금씩 정갈해지기 시작했어.

요즘은 짧은 틈이 생기면 작은 공간 하나를 정리해. 양말 서랍 하나, 냉장고 속 반쯤 남은 채소들. 정리라기보다 쓸모 있는 것들 사이에서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는 일에 가까워. 시든 채소를 꺼내며 마음도 시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여. 컵을 제자리에 놓고 싱크대를 정리하고 나면 공간이 조용히 정돈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위로를 받는단다. 바쁠 때 알지 못했던 잔잔하고 정갈한 위로였어.

예전엔 귀찮고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지금은 그 시간들이 나를 정갈하게 만드는 루틴이 되었어. 아주 작은 일의 정갈함으로 오늘의 나를 다시 세운다.

정갈한 일상은 삶을 통제하라는 뜻이 아니야. 내 안에서 가장 편안할 수 있는 질서를 다시 찾는 일이야. 일상의 반복은 지루한 루틴이 아니라 나를 위한 조용한 사랑이었어.

아침에 마시는 물 한 잔. 밥을 짓고 정리된 싱크대를 바라보는 그 순간들.

그 작은 반복이 삶을 다시 단단하게 세우기 시작했어. 삶의 리듬을 되찾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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