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디재이

아름답게 시들기 위하여

디재이 : 디자이너 재능 잔치 이야기 - 신간 디자인 후기 06

by 부크럼


우리는 서로를 잊어가며 또 서로에게 잊히며…



<시들어 버리는 것까지 꽃이라고>는 지난 2월 1일에 출간된 황지현 작가님의 신작이자, 부크럼 출판사의 2023년 첫 책이다. 따스한 미색 종이 위에 실린 단정하고 감각적인 활자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평온한 마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표지는 책의 첫인상이다. 도서 디자인 중에서 가장 먼저 작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표지는 디자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의미를 담게 된다. 표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제목과 원고의 분위기다.


이번 책의 제목을 보자. 우리 인생을 꽃의 생애에 빗댄 표현이 인상적이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는 뭐가 있을까? 꽃, 시든 꽃, 시들어 버린 꽃.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제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시들어 가는 꽃 사진을 넣을 수 있고, 간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색상과 글자 배치로 제목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제목을 보고서도 활짝 핀 꽃의 그림들과 푸르른 잎사귀, 파스텔 색감을 떠올렸다. 우선 꽃이 활짝 피어 있어야 시들기도 할 것 아닌가.


매대에 놓였을 때의 가시성을 생각하면 밝고 환한 분위기의 이점도 있다. 결국 최종 색감은 다른 방향이 되었지만, 더 좋은 디자인이 되었다.


화사한 꽃이 아니라면 조금 더 간접적으로 꽃이 아닌 잎사귀를 조명하고 싶었다. 초록색을 버리지 않고 띠지에서나마 푸르른 모습과 시든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


질감과 잎 그림자를 사용한 두 가지 색감의 최종 표지 시안은 부크럼 내부 투표와 독자 투표를 거쳐 다음과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흐릿한 잎 그림자와 황홀한 파스텔 색상을 사용한 시안은 선명한 잎 그림자와 오후 그림자를 닮은 잔잔한 색감의 표지가 되었다. 작가님 특유의 담담하고도 매력적인 필체와 어울리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제목 그대로 책의 색감은 시들었지만, 시든 모습도 아름다운 따스한 책이 되었다.


작가님이 올려주신 투표에 달린 답글 중 몇 개를 가져왔다. 회색과 갈색 중에서 갈색이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획득했다. 작가님께 애정을 가진 독자분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그럴듯한 의미,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해주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마도 이 모습은 마음속에 뚜렷하게 남을 것이다.



A 시안이요 :)

시드는 것에 흑백과 연관을 짓는 게 당연할 수 있으면서도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흑백을 연상시킴으로써 안에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어떻게 무수히 펼쳐질지 또 더 돋보이게 될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시안이 궁금증을 유발하며 눈에 들어와요!

채도를 낮추어서 시든 꽃처럼 보이지만, 채도를 다시 높인다면 어떤 다채로운 색으로 비출지 궁금해진달까요!! 꽃이 시들었다고 있었던 색마저 잊히지 않으니까요!채도만 높아진다면, 계절이 다시 돌아온다면 언젠가 다시 색을 되찾을 수 있으니 시든 꽃도 다른 꽃들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색을 가졌을지, 가졌었을지 궁금증이 생기는 시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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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가 예뻐요.

B 시안이 제목 가독성이 훨씬 좋고, 색감도 시든다는 표현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것 같아요. 시드는 것의 대상이 '꽃'이라고 하셨는데, 보통 꽃이 시들 때는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색과 힘을 잃으며 갈변되는 모습이 단번에 떠올랐어요. 그 점에서 제목을 잘 나타내는 색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


B!!

B가 노을 지는 창가에서 비치는 느낌이라 색감이 더 따스하게 다가와요...! 일정을 다 하고 집에 들어온 늦은 새벽에 침대에 누워서 딱 펼치고 싶은 책 표지네요.


B 시안이요 :)
우선 제목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제목이 보이고 난 후 잎과 꽃 그림자의 형상이 이차적으로 들어와서 제목과 표지가 잘 녹아드는 느낌이 들어요. 색감 때문에 종이가 바랜 듯한 느낌도 들어서 손에 꼭 쥐고 싶고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느낌도 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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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한 줄 후기


어쩌면 누군가가 애정을 가지고 읽어 준다는 사실 자체가 책 디자인에 있어서 진정한 완성이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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