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디재이

보고싶은마음엔빈틈이없어서

디재이 : 디자이너 재능 잔치 이야기 - 신간 디자인 후기 10

by 부크럼


지저분한 마음을 안고
무던히 살아가느라 애쓴 청춘들에게.



지난 5월, 에세이스트 정영욱 작가님의 신작 도서,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가 출간됐다.


정영욱 작가님의 도서는 예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유명한 도서들의 뒤를 이으며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는 순항 중이다.



나는 이번에도 작가님 도서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는데, 맨 처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를 맡았던 순간보다는 덜 긴장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입사 3개월 차였다) 하지만 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편안하게 작업할 수는 없었다. 약간의 긴장감은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하니까.


이번 도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가님께서 각오하고 쓰신 글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각오만큼 더 예쁜 책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거다.


사실 신간 소식은 연초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연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도 작가님께 ‘이번 표지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들을 때는 얼마나 막막하던지!



하지만 내가 해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부크럼 재직 이 년이면 시안도 금방 통과된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시안을 만들고 또다시 새로운 시안을 만드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선명하건만. 요즘엔 보통 1차 시안에서 결정되곤 한다. 조금은 요령이 생긴 거겠지? 하고 예쁜 표지를 바라보며 조금은 우쭐하게 지내고 있다.



이번에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표지가 선정되었다.


사진 한 장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마치 영화 속의 달콤한 한 장면을 떼어놓은 것만 같은 사진 덕분에 더욱 완벽한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푸른 밤하늘과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피사체의 조화가 흔들림과 노이즈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난다.


표지 배경에 사용된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콤마’ 계정을 운영하시는 포토그래퍼 박진경 작가님(@for.comma)의 사진이 사용되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예쁜 사진을 사용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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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면지와 별색(특수 잉크)를 고르는 작업



이번 도서의 가장 큰 특징은 별색(CMYK 외의 특수 잉크)에 펄이 들어간 특수 잉크를 썼다는 점이다.


팬톤 컬러의 메탈 계열 잉크를 썼는데, 잉크에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덕분에 정말이지 흐르는 은을 굳혀 인쇄한 것처럼 보인다. 사진에는 미처 담기지 못하는 영롱한 아름다움이 장점이다.


사실 이건 혼자서 생각까지만 해보고,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고민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흔쾌히 아이디어를 내어주신 편집장님의 센스와 특별히 은 별색으로 사진을 인쇄하여 샘플을 보내주신 인쇄소 대표님의 공이 크다. 책 한 권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아이디어와 고민, 노고가 깃들어 만들어진다.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를 펼쳐보면 곧바로 특이한 별색 잉크로 인쇄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실물을 보면 한눈에 특별함을 알아채실 거라 믿는다.




‘보고 싶다’는 말, 종종 ‘보고싶다’고 적었어
보고싶은마음엔빈틈이없어서널보고싶은마음엔띄어쓰기가없어서


참고로 오늘 글 제목에 인용된 '보고싶은마음엔빈틈이없어서'는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의 여섯 챕터 중 가장 마지막 챕터의 이름이자, 본문에 수록된 글귀 중의 하나다.


작가님의 글귀 중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쿵, 울리고 두드리는 글이 많은 편이다. 이번 책에도 좋은 글이 무진장 많이 실렸다. 하지만 그 쟁쟁한 글들 사이에서도 홀로 당당하게 챕터의 제목까지 꿰찬 특이한 글을 가져왔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보고싶은마음'과는 달리 표지에 들어간 제목 타이포그래피에는 일부러 공백을 길게 넣었다.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가 아니라

'잔잔하게 ― 그러나 단단하게' 처럼 읽히도록.


여백의 미(美). 어쩌면 이 숨 돌릴 만큼의 빈틈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표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제목을 따라 읽는다면 '잔잔하게, ... 그러나 단단하게.' 정도로 읽힐 것이다. 글꼴의 크기도 다른 도서 표지에 사용했던 글꼴 크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속삭이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제목을 가장 처음 보았던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곱씹어 본다.

다시금 표지를 본다.

내가 찾은 가장 '잔잔하되 단단한 모습'을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것 같은 모습이다.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면서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고 삼키게 된다.







디자이너 한 줄 후기


은은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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