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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럼 Dec 17. 2021

[작가 인터뷰]
평범함의 특별함을 아는 작가, 김 준

그럼에도 책을 만듭니다 01


마음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 부치는 편지

희미해져 가는 일상이 빛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건네는 김준의 위로.


"특별한 하루를 만들기보다는 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 내자는 마음."


섬세하면서도 광활한 문장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해 위로를 건네는 작가 김준, 그의 다섯 번째 에세이〈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이 출간되었다. 그는 독자의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무력해진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전하려 한다.



지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덤덤한 위로를 건넬 첫 번째 작가,
김준 작가와 나눈 대화를 통해 희미해진 일상에 빛을 되찾아 보자.


    Q. 16년도부터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 오셨고, 어느덧 다섯 번째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저희 부크럼과는 첫 작업이기도 했고요.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글을 작업하셨나요?


다섯 번째, 라고 말하니까 어딘가 비장하게 들리는 구석이 있네요. 양으로 봤을 때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저는 이 일을 산을 오르는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아요. 산을 등정하는 사람에게는 마일스톤(이정표)도 있고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지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게 글 쓰는 일은 광활한 사막을 줄곧 헤매는 과정이에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방황했고 때로는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들어 가기도 했고요. 그러면 사람들이 꼭 물어요. 계속 글 쓸 거냐고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없어요.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든요.

이번 책도 마찬가지였어요. 방향성을 정한 후부터는 구르고 다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해내자는 마음 하나만으로 썼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다섯 번째, 가 아니라 저에게는 모든 작업이 매번 처음이에요. 어차피 사막길은 매일 바뀌거든요.



   Q.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가고 있다면>의 수많은 문장 중 메인 카피로 선택된 문장, ‘그것 또한 반삶이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반죽음이라는 말은 자주 쓰는데 반삶이라는 말은 하지 않잖아요. 국어사전에도 반삶이라는 말은 없어요. 그 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반삶’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삶을 좀 더 긍정해 보고 싶었어요.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는 말보다는 반이나 남았다는 긍정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거라 믿고 있으니까요. 



    Q. 이번 책의 목차를 쭉 보다가 파트3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망망대해'. 하지만 그 망망대해 속에서도 꼭 이해해 보고 싶은 것이 결국은 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지금껏 무엇을 가장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을 가장 이해하고 싶으셨나요?


저는 그 두 가지가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이해하고 싶으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그중에서도 바로 제 자신이…. 저는 저를 수십 년 동안 데리고 살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아요. 왜 그렇게 걱정만 하며 살았었는지, 왜 그때 자존심만 세우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는지, 화내야 할 때는 어째서 마냥 웃기만 했는지. 그 다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타인이겠죠. 하물며 함께 사는 가족도 이해하기가 힘든데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사람에 대해서는 오죽할까요. 하지만 저는 제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정확히 그 지점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설명할 수 있거든요. 내가 나를, 내가 타인을 사랑하려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이해’라는 노력을 부단히 해 나가야만 해요



    Q. 작가님 책 속에서 모두의 마음에 꼭 필요한 문장을 하나 발견했어요. ‘어쩔 수 없다. 그저 내가 가진 우산이 좀 작았을 뿐이니까’. 


모두에게 잘할 수 없다는 걸 부쩍 느꼈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친절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더라고요. 원래는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동의하는 척이라도 했죠.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그런 기질이 싹 사라졌어요. 의도적으로 없앤 거죠. 제가 가진 삼단 우산 하나 가지고 모두가 비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길 한 것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예요. 내가 우산을 씌워 주지 못한 사람들은 절 욕하고 미워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자책하기보다는 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을 했어요. 게다가 잘하나 못하나 어차피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꼭 있기 마련이더라고요. 



    Q. 이번엔 책 속에 유난히 생생한 문장 하나입니다. '오늘은 쓸모 이상으로 텐션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자랑거리를 만들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가 하루의 감정과 행동을 치밀하게 계획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나 느껴져요. 조금 차분하고 싶은 하루, 이 문장 그대로의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거든요. 

소진된 마음을 이렇게 적확하게 포착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데요작가의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말씀하신 노하우가 지름길이라면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요구되는 능력이 ‘관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끊임없이 관찰하다 보면 못 보던 것을 ‘포착’할 수 있어요. 표현은 그다음이에요. 자신의 감정을 주의 깊게 느껴 보거나 타인의 기분에 대해서 섬세하게 감각해 보는 것도 관찰이라 할 수 있죠. 다만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요. 그런 다음에서야 문장을 쓸 수 있을 텐데 본인이 느낀 그대로 표현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잖아요. 생각을 말로 쓴다는 게…. 그러한 과정을 연금술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구리나 납, 주석 따위의 비금속을 금으로 연성하려는 시도처럼 매번 거의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 불가능한 시도를 면면히 해 나가는 게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이기도 하고, 그런 노력 끝에 정말 우연히 윤이 나는 무언갈 만들어 내기도 해요. 노하우 비스무리한 걸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매우 즐긴다는 것?  



    Q. 이번 책 속에 작가님의 최애글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주세요.


"어떤 넘어짐은 또 어떤 이어짐이어서 우린 영락없이 걸을 수 있지."


하나만 꼽는다면 이 문장이에요. 넘어지고 다쳐도 결국은 그 넘어짐이 어디론가 이어질 거라고 늘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영락없이 걷는 것으로 우리 삶은 조금 더 명량해지지 않을까요? 



    Q. 책 명이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이잖아요. 작가님 책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가고 있는 많은 독자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언어를 통해서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오직 언어를 통해서만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떄로는 음악의 선율이, 어떤 날은 낯선 사람과의 포옹이나 누군가 베어 문 오이 끝의 이빨자국도 위안이 될 수 있어요. 활자를 통한 테라피가 삶을 긍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으니까 일상의 다양한 순간들에서 삶을 자주 달래 주었으면 좋겠어요. Si vales bene. 당신이 잘 계신다면, 이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이에 덧붙여 Valeo. 저는 잘 있습니다, 라는 뜻이에요. 한번 이어붙여 보겠습니다. 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저도 잘 있습니다. 어떤 삶이건 곧은 길을 따라 빛으로 빛으로 향하길 바라요.





“방향성을 정한 후부터는 구르고 다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해내자는 마음 하나만으로 썼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작가 김준의 가장 큰 힘은 ‘긍정성’이 아닐까. 어떤 넘어짐은 어떤 이어짐이 될 것이라는 긍정성. 반 죽음이 아닌 반 삶에 주목해 보는 긍정성. 구르고 다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곧은길을 따라가면 빛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성.


몇 차례의 넘어짐과 이어짐을 통해 완성된 김준의 도서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부크럼 독자 여러분도 반 넘어짐이 아닌 반 일어섬에 집중하며, 다시 내일을 맞이할 긍정을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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