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떠나라!
오늘은 한국의 캐해석 (캐릭터 해석이라는 뜻) 전성시대를 열어준 MBTI의 성공 비결과 이제 그만 자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MBTI 열풍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그전부터 이야기가 되었으나, 이마에 MBTI 문신이 필요한 지경에 이른 건 대강 2년 전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MBTI가 뭐길래 이렇게 오랜 시간 한국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성격 검사계의 판도를 뒤바꾼 대단한 유형 분석이기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유행에는 여러 가지 심리가 얽혀있다.
'퍼스널 컬러 진단'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사람의 피부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어울리는 색을 진단해주는 검사이다. MBTI가 성행하기 직전에 한국 여성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 검사는, 어울리는 색을 찾을 때까지 얼굴 밑에 오색찬란한 천을 가져다 대보는 꽤나 1차원적인 방식의 검사이다. 지금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학문으로 완전히 자리 잡고, 어엿한 직업의 영역이 되었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MBTI와 같은 맥락의 유행이기 때문이다. 무슨 색 옷이 나랑 잘 어울리는지는 수십 년을 살면서 이미 깨달았을 텐데, 전문가의 입에서 당신은 "봄 웜톤이군요, 개나리 노란색이 잘 어울립니다"라는 확신을 받은 후 같은 봄 웜톤끼리 모여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재미가 이 검사를 성행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MBTI 역시 내가 내향적인 건 이미 알고 있는데, I(내향형)라는 검사 결과를 가지고 "I인 사람들 이거 공감?"이라는 식의 결속을 맺으며 재미를 얻은 것이다. 소속감과 동질감을 기반으로 한 공감대 형성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신과 증거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MBTI를 성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MBTI가 유행하면서 전문성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가 컸다. 항간에 퍼져있는 무료 검사는 유료 검사와 질적으로 다르며, 입체적인 인간을 고작 16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게 불가능하다는 근거다.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MBTI로 신분증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조금 틀리면 또 어떤가. 진짜든 가짜든 재밌으면 인기를 끄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MBTI 유행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오지랖'때문이다. 첫 만남에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이 어색하지 않은 지경이 되면서, 바야흐로 대 오지랖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가치였던 오지랖이 대유행을 이룩한 걸 보면, 나이에 관계없이 오지랖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MBTI 유행은 오지랖보다는 캐해석에 가까운 양상을 보였다. 참여 규모가 커지면서, 이력서에 쓰라는 둥, 아르바이트에 E(외향형)인 사람만 모집한다는 둥의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초면에 MBTI를 물어보는 건 스몰 토크로 좋지만, 알파벳 네 개로 사람을 재단해 이러쿵저러쿵 연설하는 건 좋지 않다. 전통적인 오지랖은 신경 써주는 마음이라도 있다 치지만, MBTI는 말 그대로 아는 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 실정이다.
16가지 유형이 많고 적고, 정확도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질문 하나로 가성비 친분을 쌓으려는 태도가 문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보를 쌓아가야 한다. 초면에 MBTI를 묻고 그 사람에 대해 뭘 좀 알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빨리 친분을 쌓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빨리 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친분을 쌓을 시간이 없다면 아는 척을 하지 말던가, 아는 척을 하고 싶으면 관계에 시간을 투자하던가. 시간도 절약하고 아는 척도 할 수 있는 가성비 친한 척으로 MBTI를 인질 잡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