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잠바에 대한 고찰
쌩쌩부는 바람에도 목을 움츠릴 필요 없는 따뜻한 기온, 바야흐로 봄이다. 빈손으로 귀한 손님을 맞이할 순 없으니 준비가 필요하다. 봄이 되기 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건 꽃놀이 계획도, 설레는 플레이리스트도 아닌 바로 봄 잠바다. 화사한 봄 잠바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딴 세상 사람처럼 칙칙한 겨울 옷을 입어야 한다.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화사하고 가벼운 봄 옷이니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어떤 봄 잠바를 구매해야 가장 뽕을 뽑을 수 있을지, 언제 구매해야 잘 샀다고 소문이 날지 이야기해보자.
봄 옷의 대명사 트렌치코트, 새내기 느낌 뿜뿜하는 귀여운 가디건, 요즘 유행하는 블루종까지 종류는 상관없다. 봄 옷의 생명은 스피드다. 이번 봄에도 나의 트렌치는 4월의 따스한 볕을 보지 못했다. 봄 잠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입을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사놓고 못 입으면 내년에 입으면 되지 않는가?라는 말은 답이 될 수 없다. 내년 봄도 짧을 예정인데, 사놓고 안 입은 옷을 입을 시간 따윈 없다. 사놓고 안 입은 옷은 새 옷이 아니다.
그럼 미리 준비하면 되지 않는가? 이것도 한계가 있다. 추운 날씨엔 봄 옷을 살 기분도 들지 않고, 옷장 정리도 안 했고, 내년 봄 유행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살 수 없는 노릇이다. 날이 슬금슬금 풀리기 시작하는 그때가 적기이지만, 준비성이 철저한 인간들이 비슷한 타이밍에 몰려 예약 배송 2주 뒤 같은 터무니없는 공지를 마주하게 된다. 봄은 2주 뒤에 우리 곁에 없는데!
이쯤에서 봄 잠바에 대한 존재론적인 고찰을 해보자.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일교차다. 막연한 상상으로는 봄이 15도에서 18도를 유지하는 선선하고 따사로운 날씨 같지만, 사실상 봄은 아침은 4도 낮은 29도를 자랑하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계절이다. 남들보다 손이 빨라 봄 잠바 구매에 성공하더라도 옷장에서 썩히게 되는 이유다. 봄 잠바를 입고 외출하면 아침에는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낮에는 더워서 그냥 벗어던지게 된다. 매년 일교차 공격을 당하면서도 따사로운 봄이 사계절 중에 가장 좋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이런 철옹성 같은 편견도 없다. 인간 김밥의 계절(롱 패딩 입었다는 뜻)인 겨울의 무시무시한 어시스턴트 덕분이겠지만..
이렇듯 봄 잠바는 판매 규모와 수요에 비해 입을 일은 거의 없는 그야말로 낭비다. 철저한 준비성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면 봄 잠바는 대체 언제 마련해야 하는 것이냔 말이다. 답은... 이미 늦었다! 지금 구매하는 봄 잠바는 겨울 옷과 함께 옷장 깊숙이 정리될 운명이다. 짧아서 더욱 아름다운 봄은 보내주고 여름옷을 준비하자. 봄 잠바를 잘 입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공유해 준다면, 꼬옥 기억해 두었다가 2023년에 활용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