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재이 : 디자이너 재능 낭비 이야기
선생님, 디자인이 하고 싶어요.
이게 무슨 열혈 소년 만화 같은 데서나 할 법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글쓴이가 실제로 뱉어본 적이 있는 말이다. 그것도 고3,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진로 상담 중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당시 담임 선생님의 대답은...
“하고 싶으면 하면 돼! 자, 그래서 어느 대학에 원서를 넣으면 좋을까?”
아무래도 담임 선생님께서 쿨하고 밝은 성격이셔서 정말 다행이었던 것 같다. 한창 성인이 되는 것과 진로 결정에 혼란스러웠던 당시, 다른 엉뚱한 학과에 원서를 넣으려던 나를 뜯어말려 주신 담임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지난번에 그렇게 잘난 척을 하며 인터뷰해놓고, 이런 웃지 못할 흑역사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진로를 결정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건 아니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포토샵을 가지고 놀면서 자랐고, 운 좋게도 재능이 있긴 했다. 그런데도 장래 희망을 돌아보면 아주 어린 시절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고, 칭찬 듣는 게 좋았다. 그런데 조금 자라보니... 아뿔싸. 화가는 돈을 못 번단다. 그래서 꿈을 접었다. 참 쉽게도 접히는 어린 시절의 꿈이다.
그다음에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동물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생각했건만, 실제로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아픈 동물을 봐야 했다. 그건 또 자신 없는데... 그 이후로 화가와 수의사를 이어 천문학자, 포토그래퍼, 원예사, 속기사, 심지어는 세례받은 종교로 귀의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적이 있다.
다시 돌아보니 하나같이 심상찮은 직업들에 눈독을 들였다. 주변에서 어른들이 권유하던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같은 직업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싫다고 했던 기억을 보면 어차피 그 고집으로 디자이너가 될 운명이었던 것도 같다.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면서 가장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직장인이 다 그렇듯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직업 만족도는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 100점 만점에 95점 정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십 년 뒤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선택을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어쩌면 이미 걷기 시작한 길이니, 후회할 바에야 앞으로 나가겠다는 성격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