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낭비 : 책은 종이와 글자 그리고 디자인으로 이루어진다
저는 출판사 다녀요.
디자이너인데, 책 만드는 일이요.
친구들이나 주변 이웃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은 우리 출판사의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새 발의 피였다. 정말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출판사에서, 그것도 최소 몇천 권씩 세상에 나올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자랑하다 보면 약간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만 모든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그렇듯 실제로 내가 부크럼에서 하는 업무는 ‘책 만들기’ 한 가지가 아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도 무척 길고 마감은 오늘도 끝이 없지만, 책이 만들어진 뒤에도 많은 작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책 만드는 일’에 대해서 조금 길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 도서 - 표지, 내지, 띠지 >
표지: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지를 만드는 일. 종종 신간 후기에 적듯이 여러 시안을 거쳐 최종적으로 표지가 정해지곤 한다. 의미가 담긴 것도 있고, 담기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결국 수많은 도서 사이에서 독자에게 선택받을 단 한 권이 되기 위해서 서점에서 주목도가 있을 판형을 정하고, 눈에 들어올 디자인을 고르고, 색상부터 폰트 그리고 후가공까지 모두 공들여 만드는 작업이다. 보통 앞면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디자인이 들어가는 부분은 앞면과 뒷면, 책등과 날개가 있다.
내지: 책은 표지와 내지로 이루어진다. 내지는 본문이라고도 부른다. 내지에도 디자인 요소가 많이 필요한데,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일러스트가 들어가거나 디자인으로 요소가 많이 필요한 책이 있고 글과 사진으로만 전개되는 책이 있다. 보통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에디터와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다. 그러니까 매번 마감마다 2~300페이지를 모두 손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띠지: 거슬려서 보통은 버려지는 종이인 띠지 하나에도 정성이 들어간다. 띠지가 있을 때의 디자인, 없을 때의 모양을 생각해야 하니까. 띠지에 들어가는 문구는 가장 효율적인 광고 카피가 들어갈 것이고, 책마다 씌워진 평균 60mm의 작은 광고지가 어떻게 눈에 띌지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 출간 전 - 상세 페이지, 목업 >
책을 한 권 만들었다고 해서 디자인은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할 도서의 상세 페이지용 이미지와 마케팅에 사용될 목업(Mock-up, 목업은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인이나 실물의 크기 등을 알기 쉽도록 만든 그래픽 파일을 뜻한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구매할 때처럼 도서도 상세 페이지가 중요한데... 나는 도서 미리보기와 후기, 상세까지 모두 따진 후에 구매하는 편이다. 구매하는 책이라곤 일러스트 도서, 디자인 실용서 등이지만. 요즘엔 동영상을 첨부하는 도서들도 있고, 카드 뉴스를 첨부하는 상세 페이지도 있다.
< 출간 후 - POP 마케팅 >
종종 친구들이 서점에서 “네가 디자인한 책을 봤다”며 사진을 보내주곤 한다. 친구들까지 덩달아 뿌듯해하는 걸 보면 종종 웃기고 귀엽다. 디자인과 친구들에게는 종종 “그 근처에 POP 있어? 그것도 내가 한 건데.”라고 말한다. POP는 Point-of-Purchase의 약자인 구매 시점 광고를 뜻하는 말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광고를 뜻한다. 한마디로 전국 서점 매대에 깔리는 도서 광고도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다는 뜻이다.
출판사에 다닌 후로는 서점에서 매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난 아직도 내가 디자이너로 참여한 책이 전국 서점에 깔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심지어 작년에 워크숍으로 갔던 제주도 서점에도 있었다!)
이 외에도 행사 배너라든가, 브랜드 로고라든가... 다른 업무도 많이 했었지만 ‘책’과 관련된 업무는 이쯤인 것 같다. 출판사에 입사하고 싶은 신입 디자이너라면 편집 디자인 포트폴리오에 위와 같은 사항들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럴듯하게 글을 썼지만 나는 고작 입사 600일 차 디자이너다. 부크럼이 첫 직장, 첫 출판사인 새내기 디자이너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모든 디자이너가 같은 업무를 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출판사 디자이너가 같은 업무를 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나의 2년은 이러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예쁜 표지를 가진 책에만 관심을 보이곤 했다. 예쁘지 않은 표지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디자이너가 된 건가. 적어도 내가 만든 책이 예뻐서 한 번이라도 더 손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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