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안다
주말 로망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일어나서 간단한 스트레칭 요가로 몸을 풀고, 과일을 몇 조각 먹은 후에 책을 한 권 들고 동네 카페로 나가는 것이다. 이른 아침답게 부스스한 모습으로, 동네 주민답게 옷차림은 단출하게. 스타벅스나 투썸 플레이스 같이 규격화된 카페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만 있는 카페로.
지난 일요일은 모처럼 여유가 있어서 미뤄둔 로망을 실천했다. 사과 반쪽을 챙겨 먹고 헐렁한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웬만한 카페들은 열한 시나 열두 시에 문을 여는 경리단길에서 오전 아홉 시부터 커피 냄새를 풍기는 고마운 곳, 버클리 커피 소셜로.
버클리 커피 소셜은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동네 카페다. 골목 안쪽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으며 테이블이 많지 않은 대신 푹신한 소파 의자가 있다. 낮이면 통창으로 햇살이 잘 들어오고, 왠지 모르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난다. 언제나 은은한 커피 향에 고소하고 달콤한 쿠키 굽는 냄새까지 어우러져서 아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여름이면 예쁘게 피어난 능소화가 창가로 늘어지는데, 멀리서 봐도 이 카페는 누군가의 취향이 듬뿍 담긴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특징은 사장님께서 동네 주민들, 그리고 그분들이 데려오는 강아지와 굉장히 친하시다는 것이다. 이 카페에 앉아있으면 강아지를 데려온 손님이 사장님과 편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강아지는 반려인이 아니라 사장님의 무릎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내 할 일을 하다가 가끔 그 장면을 곁눈질하곤 했다.
지난 일요일도 나는 언제나처럼 소파에 앉아서 담요를 덮고 책을 읽었다. 쿠키를 하나 먹고 싶었지만 진열대는 아직 비어 있었다. 하얀 머그잔에 담겨 나온 뜨거운 커피는 산미가 있어서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몸에 남은 잠기운을 조금씩 덜어 주었다. 햇살이 참 좋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에 꽂힌 꽃이 싱싱해서 모든 게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마침 나는 『작은 동네』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동네’가 아름답게 그려지진 않지만, 어쨌든 동네 카페에 앉아서 동네가 제목인 소설을 읽다가, 다른 이들의 동네를 떠올려 보았다. 각자에게 ‘동네’란 어떤 곳일까? 그러다가 오래전에 읽었던, 이탈리아어로 쓰인 에세이 한 구절이 생각났다.
밤에는 텅텅 비지만 이 시간에는 아이들, 부모들, 강아지들, 나 같은 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 자신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는 우리의 충동에 난 새삼 놀란다. 믿어 마지않는 소박한 빵 맛에 또 새삼 놀란다. 햇살에 몸을 녹이며 빵을 먹는 동안 성스러운 음식을 먹는 것 같다. 이 동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안다.
-줌파 라히리, 『내가 있는 곳』 中-
문이 열리고 커다란 개와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사장님은 개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카운터에서 나왔고, 개는 허겁지겁 사장님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사장님이 개에게 간식도 내어 주고 볼을 비비는 동안 중년 여성은 김장 준비를 하다가 편의점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옅은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로 카푸치노를 마셨다. 테이블에는 크린장갑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이어지는 담소를 배경 삼아 나는 계속 책을 읽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개가 내 발치에 와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황금빛 털에 눈이 순하고 귀가 축 늘어진, 아주 사랑스러운 개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중년 여성과 사장님이 우리 쪽을 보고 허허, 웃으셨다. 카운터 뒤로 이어진 주방에서는 쿠키가 맛있게 구워지는 냄새가 났다. 일요일 오전이 한가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제철 맞은 연시에 대파, 콩나물까지 파는 동네 편의점에서 두부 한 모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김치찌개를 끓이며 지금 우리 동네 어떤 집에서는 겨울맞이 김장을 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동네가 점점 북적였다. 나는 ‘이 동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안다.’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점심상을 차렸다. 책상 위에는 막 구워진 부드러운 초콜릿 쿠키가 알맞게 식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