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빼빼로를 주고받은 날

Slow down. Enjoy every step.

by 부크럼


빼빼로 데이의 유래를 알고 있는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롯데제과에 따르면 빼빼로데이는 1996년 부산의 어느 여중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빼빼로처럼 길고 날씬해지자.’라는 뜻으로 친구들끼리 재미 삼아 11월 11일에 빼빼로를 주고받던 건데, 본사에서 이를 빼빼로 마케팅 포인트로 사용하며 전국적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현재 와서 빼빼로 데이는 ‘빼빼로처럼 우리 사이 길고 오래 가자.’라는 의미로 변형되었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연인끼리의 기념일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빼빼로 데이는 누구에게나 좋은 의미로 가볍게 선물할 수 있는 날이라 기업의 상술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거 같다.


나 역시 빼빼로 데이를 좋아한다. 요 몇 년간은 코로나로, 바쁜 날들로,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빼빼로를 보내주곤 했다. 한 통을 보냈는데 두 통을 돌려받기도 했고, 오늘도 즐겁게 보내라는 한 줄을 적어 보냈는데 너무 감동이라는 장문의 메시지를 받아서 지난 빼빼로 데이에는 여러모로 마음이 따뜻했었다.


KakaoTalk_20221111_124407859_09.jpg 귀여운 친구들...♥


빡빡한 사회에서 어른으로 잘살 수 있는 길이 뭘까, 고민이 닥치면 어김없이 친구들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기 전의 시절을 공유했던 친구들. 우리가 참 해맑던 시절부터 각자 몫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지금까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오늘 아침도 나는 매년 그래왔듯 빼빼로 한 통을 보냈다. ‘우리 오래 가자!’라는 말을 덧붙일까 말까 고민하면서.


갑자기 내뱉기엔 낯간지러운 말이라 꾹 삼켰지만 사실은 친구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며 ‘우리 길게길게 함께하자.’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자꾸만 바쁘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뭔가를 미뤄두려고 할 때마다 상기한다. 인생에서 뭔가를 이루어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서로를 좋아하고 아껴 주며 살아가는 거라는 걸.


단 걸 좋아하지 않는 애인에게는 재작년도 작년도, 직접 등갈비찜을 요리해 주었다. 길쭉한 등갈비에 길쭉한 가래떡을 썰어 넣고, 길쭉한 나물을 무쳐서 밑반찬으로 놓고 길쭉한 계란말이까지 만들어서 온통 길쭉한 음식으로 차린 한 상을 선물해 주었는데 올해는 왜인지 참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핑계로 미뤄졌다.


바쁘다는 말 대신 점심에 시간을 쪼개서 우리 회사 앞으로, 메시지가 적힌 빼빼로 네 통을 들고 와 준 애인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해졌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비가 온다고 하니 기다란 가래떡을 노릇하게 구워서 꿀에 찍어 먹으며 미뤄둔 영화를 함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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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란 밥상을 선물하고 받은 달달한 간식들 ෆ


출근길에는 날 위한 빼빼로 한 통을 샀었다. 기다란 막대 과자를 씹어 먹으며 얼마 전에 봤던 실험 영상 한 편을 떠올렸다. ‘젊은 시절의 나에게 최고의 충고를 남긴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라고 어느 노인에게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했다.


Slow down. Enjoy every step.


길게 봐야겠다. 애초에 내게 주어진 일생은 맛동산이나 바나나킥처럼 짧지 않았다. 이렇게나 많이 살아온 거 같지만 아직도 남은 날들이 빼빼로처럼 길고 길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 여유없이 바쁘고 조급할 마음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다. 내 생활을 심도 있게 꾸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즐겁게 살아야지! 빼빼로를 선물하며 간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들에게 이번 달 안으로 만나자는 답장을 보내야겠다.



+ 출근하니 사무실에 빼빼로가 한가득 있었다. 나 역시 사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는 주저하지 말아야 함을 다시금 느꼈다. JM 마케터님 짱짱 ପ(๑•ᴗ•๑)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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