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우리는 다 하나야
10월 29일 토요일 밤, 나는 이태원동에 있는 집으로부터 130km 떨어진 강원도 원주의 어느 호텔에 있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던 중, ‘너 지금 괜찮냐.’는, 친구들의 새삼스러운 안부 메시지가 카카오톡에 쌓여 있는 걸 보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동네에서 참사가 일어나는 중이라는 걸.
새벽까지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등산 가방을 메면서도 지금 내가 산에 갈 수 있는 컨디션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으나 일단 택시부터 잡았다. 시원한 공기가 필요했다. 택시는 30분을 달려 구룡사 매표소에 나를 내려 주었다. 한창 가을이라 등산객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침 7시에 초입을 오르기 시작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혼자 높은 산을 올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묵묵히 움직이는 것뿐이라는 감각을. 나는 오로지 앞에 놓인 길을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에 산과 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방이 고요했다.
머릿속에는 뉴스에서 본 충격적인 장면이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내게 너무 익숙한 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그 옆에서 어떤 사람들은 춤을 추며 파티를 벌이고 있는 그 장면이. 밀지 말라고 해도 자꾸 밀리며, 그 어떤 무기도 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게 했던 장면이. 아주 무탈하게 오늘도 내일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갔어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누워 있던 장면이.
그 와중에도 산은 참 아름다웠다. 내려다본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이쯤 올라왔으면 정상이 나오기 마련인데도 비로봉까지는 더 가야만 했다. 만만하지 않은 산이었다. 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조금만 헛디디면 끝없이 추락할 수 있는 구간을 계속해서 조심조심 지나쳤다.
정상에 도착하니 어느 길에서 올라온 것인지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이 높은 곳에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구나.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정상에 도착했다는 성취감에 젖어서 커다랗게 떠다니는 구름, 아래로 보이는 능선, 그리고 미륵불탑을 구경했다.
거대한 미륵불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준 씨가 1962년부터 쌓기 시작한 것이다. 꿈에서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으로 3개의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몇 년간 꾸준히 비로봉을 오르며 돌탑을 만들었을 용창준 씨. 그가 작고한 후에 낙뢰로 탑이 무너지자 비로봉을 사랑한 산악회 회원들이 그의 뜻을 이어받아 돌탑복원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직접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올라올 때는 사다리 길로 와서 계단이 많았는데 내려갈 때는 계곡 길을 타서 큼직한 바윗덩어리들을 밟고 내려왔다. 이끼도 많고 간밤에 내린 이슬로 표면이 미끄러운 데다 흔들거림이 심해서 조금 위태롭긴 했다. 그래도 무서울 정도는 아니었다. 올라오시는 분들은 혼자 내려오는 내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간간이 내게 파이팅, 힘내요, 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네셨다. 정상까지 얼마나 더 올라야 하냐고 묻는 분들에게는 ‘조금만 더 힘내시면 돼요!’라고 응원을 돌려드렸다.
집중해서 산을 타고 내려가던 중, 어느 아주머니께서 저 아래서부터 아가씨, 아가씨 외치셨다. 설마 나를 부르는가 싶었는데, 우리가 가까워졌을 때 아주머니는 내게 본인이 들고 있던 등산 스틱 두 개 중 하나를 건네셨며 "이게 있고 없고 차이가 커. 그냥 들고 가요."라고 수더분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돌려드릴 수도 없는 걸 차마 받을 수 없어서, 조심조심 내려갈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한사코 스틱을 내밀다가 내 만류에 못 이겨 올라가시던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진짜 받아도 되는데. 산에서 우리는 다 하나야!”
그 말이 내게는 자꾸만, 세상에서 우리는 다 하나야! 라고 메아리치듯 들렸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사는 중이다. 매일 뉴스에서는 참혹한 소식이 들리고, 그런 기사에는 꼭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댓글이 보인다. 현실에서 마주치고 스치는 사람들이 검은 마음을 품고 있을까 봐 두려워도... 어쨌든 우리는 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고 필연적인 시련이 있어서, 나는 이 세상을 함께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좋아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결코 서로에게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등산 스틱 한 쌍을 구매했다. 언젠가 나도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하나를 선뜻 건네주고 싶었다. 괜찮냐고 연락해 준 친구들에게 나는 괜찮다고, 산에 올랐다고,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다.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일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가방에 넣어 갔던 소설집을 펼쳤다. 그 소설의 마지막 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무도 죽지 마.”
- 편혜영,「포도밭 묘지」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