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푸는 소리는 소란, 코푸는 순간은 사랑
'그으르르릉...크으르르르릉...'
비염이 심한 첫째 아이가 코감기로 코가 꽉 막혔다.
소리만 들어도 아이 코 속의 상태가 어떤지 눈으로 보는 듯하다.
말로는 '코가 막혔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 아래, 뺨 위, 딱딱한 광대뼈 안쪽 깊은 곳에 끈적한 콧물이 차 있는 것이다.
그곳은 코와 연결된 작은 방, 부비동이다.
소리만 듣고도 콧물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는 나 자신이 때때로 놀랍다. 이것은 지난 10여 년간 아이의 잦은 병치레 끝에 얻은 생활 의학 지식이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이 세상 엄마들이라면 대부분 반쯤은 의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꽉 막힌 콧물 소리가 시작되면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코를 풀어낸다. 코세척만 하면 간단할 일을 아이는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깊숙이 고여있는 콧물을 빼내기 위한 마사지를 한다. 그냥 코를 풀면 절대 콧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눈 아래 광대뼈를 따라 광대뼈 아래 부분을 위로 올려주며 누르고, 귀와 가까운 광대뼈 끝은 안쪽으로 밀어주며 누른다.
마치 광대뼈 안쪽에 모여 있는 콧물들을 코쪽으로 보내주는 느낌으로 하면 된다. 이 마사지법은 꽤 유명한 한의사가 유튜브에 나와 부비동염에 좋은 지압 마사지로 알려준 것이다.
의외로 효과가 좋아서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자, 이제 아이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선다.
한 손은 뒷통수를 단단히 잡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광대뼈 주위를 꾹꾹 누른다.
정성스럽게 꾹꾹 누르는 내 모습은 마치 애교가 있는 고양이의 꾹꾹이가 떠오를 지경이다.
조금만 세게 눌러도 아이는 바로 '악!'소리를 지른다. 촉각과 통증에 예민한 11살 고객님이시므로 미세한 강도조절이 핵심이다. 이제 코풀기 본장이 시작된다.
'그으르르릉... 크으르르릉...크르르릉...
흐으으윽.. 흐으윽.. 흐욱..'
기다리는 콧물은 안 나오고 바람만 나온다.
아이와 내가 합을 맞춰야 할 차례이다.
내 엄지손가락으로 아이의 오른쪽 콧볼을 눌러서 콧구멍을 막고, 검지손가락으로는 왼쪽 콧볼을 눌렀다 뗐다를 반복한다. 콧볼을 눌렀다 떼면서 압력을 조절해 깊은 곳에 있는 콧물을 끌어낸다. 콧볼을 눌렀다 떼는 그 리듬에 맞춰 아이는 코를 풀어낸다.
"푹-푹-푸욱! 푹-푹-푸욱! 푹-푹-푸우욱!"
마치 코로 비트박스를 하듯 요란한 소음과 리듬이 생겨난다.
한마디로 소란스럽고도 경쾌한 코풀기이다.
이 경쾌하고 소란스러운 순간 동안 나와 딸아이는 바람과 콧물이 만들어 내는 비트박스에 웃음을 터트린다.
소란스러움 속에서 터져버린 우리의 웃음이 환한 빛이 되어 집안을 채운다.
웃음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눈맞춤은 또 어떤가.
코를 풀어주기 위해 얼굴의 거리가 바짝 가까워져도 전혀 민망하지 않은 사이.
엄마와 딸인 우리, 부모와 자식이라는 그들 모두의 눈맞춤에도 빛이 비쳐 오색 비눗방울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소란스러운 코 푸는 소리가 우리 눈 맞춤에 배경 음악이 되어사랑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