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에서 깨고 나면 몸이 힘들어서 매번 술을 덜 마시겠노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이지 오래 글을 쓰다보면 으례 막걸리나 맥주를 찾게 됩니다. 아마도 갈증 때문일 겁니다. 결코 해소되지 못하는 막막한 갈증. 그것이 그리움인지, 갈망인지 정체를 모르나 당신에게도 그런 갈증이 있을 겁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유배생활을 하면서 만난 것도 그런 갈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휘날리는 백발은 삼천장이나 되고 / 飄零白髮三千丈
홍진에 시달린 이 몸 육십 년이 되었구나 / 折磨紅塵六十年
나는 세상일 잊으려 자꾸 술만 마시는데 / 我愛沈冥頻中聖
추사의 고독과 슬픔이 잘 드러나고 있는 구절입니다.
오래 산 기쁨보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수심 때문에 덧없이 늙어 어느덧 백발이 3천장이 되었다는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에 나오는 “흰 머리털이 삼천길(白髮三千丈), 수심으로 이토록 자랐네(緣愁似箇長)”라는 구절과 유사합니다.
이백이나 추사나 삶의 갈증을 채우지 못한 채 고독과 슬픔 속에서 술을 마셨던 사람들입니다. 당신도 그런 비슷한 처지에서 술을 마셔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술에서 깨고 나면 세상일은 더 헝클어져 있는 법.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정호승은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 모릅니다.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술로 갈증을, 마음을 잠시 달래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 또 술 한 잔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굳이 이유를 댄다면 봄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추사도, 이백도 봄날을 이유로 분명 한잔 했을 것입니다. 마침 책도 많이 읽었고 작업실 마당에 널려 있던 돌들을 줍느라 땀깨나 흘렸으니 술 마실 이유가 충분히 되리라 봅니다.
더욱이 집사람이 문어를 사왔기에 저녁에 소주 한잔을 하고 싶습니다. 조선 중기때 이응희는 "좋은 안주로 이것이 꼭 필요하다(佳肴必汝期)"며 문어를 높게 평가했는데 그 말이 과연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어가 아무리 좋다한들 집사람의 정성에 비하겠습니까. 집사람이 고맙고, 소주 한잔이 고마운 저녁이 될 것같습니다.
세상일을 잠시 잊기 위해 문어 안주에 맑은 소주 한잔, 오늘 저녁에 같이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