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빛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문득 추억처럼 서있었으니
꽃잎 되어 날아간 줄만 알았는데
지척에서 여전히 꽃나무처럼 서있었으니
얼굴은 작았지만 분명
키는 훌쩍 컸었던 것 같은데
한강을 지나던 차창에 기대어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웃는 것을 보며
나는 미치도록 아득했었지만
이제 40년이나 훨씬 흐르고 흘러
모든 것이 헛되리라 믿으면서도
세상 일이 다시는 못 볼 지도 몰라
오늘은 기필코 확인해야 하겠기에
길을 묻고 물어 찾아 왔을 때
저만치서 네가 다소곳 웃고 있었으니
아직도 아, 그 눈매의 빛
너를 처음 알았던 광화문의 모서리에서
지금도 꽃 피우는 나무들처럼
그렇게 추억처럼 빛나며 서있었으니
신기함이란 이런 것인지
또 반가움이란 이런 것인지
여전한 빛
사랑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