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점주인이 되었습니다 170425

- 서점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by 서점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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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앞으로의 책방]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점이 정말로 향해 가야 할 것은 서점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며, 책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말에 공감했으며 서점은 공간이 아닌 사람이라는 말에도 공감했습니다. 책이 주는 즐거움이란 일단 한 번 알게 되면 헤어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은 사고, 또 사게 됩니다. 연남동 주변에는 서점이 여럿 있습니다. 서점주인들끼리 모임도 있고 단체 카톡방도 있는데 종종 매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많이 왔는데, 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서점주인이 아직 전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지 '오는 사람이 많았다' 정도에 일단은 만족합니다.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산책 삼아 오든, 인증샷을 남기러 오든 일단 책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좋게 봅니다. 책의 옆에까지 왔으니 그것을 손에 들게 하고, 눈으로 읽게 하는 것이 서점 주인의 몫이겠죠. 저희 서점 리스본의 경우는 3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간판도 없으니 찾아오기도 힘들고 일단 건물에 들어섰다고 해도 엘리베이터도 없이 3층까지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빈 손으로 가는 것은 억울하다'는 기분 때문인지 구매율이 높은 편입니다. 물론 그냥 가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이 책에 손을 한 번 갖다대는 것만으로도 일단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정말로 들어와서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인증샷만 찍고 책은 거들떠도 안 보는 분도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렵게 3층까지 왔는데 볼 것이나 경험할 것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저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책방]에 언급된 것처럼 서점주인이 정말로 향해 가야할 것은 '여기 정말 좋고, 재미난 것이 있으니 같이 즐겨보지 않을래요?'라고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분들에게 말 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진 분들이야 자기만의 구매 희망목록을 갖고 있을테니까 거기에 부합하는 것이 중요하겠고요.
뉴욕의 Strand 서점이라든지, 상암의 북바이북은 긍정적인 의미의 '장난감'처럼 다루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책으로 할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물론 아이들도 함께 합니다만)를 마음껏 하고 있는 것 같아 '어?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가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거든요. 물론 정말로 책을 좋아하고, 고요한 가운데 책을 읽길 바라는 분들에게는 그 활기찬 분위기가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 서점만의 개성으로서 존중합니다. 좋아보여요.
리스본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연히 고민을 합니다만, 기본 원칙으로 삼는 것은 리스본 스타일대로 정면승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리스본의 주인으로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초를 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적절한 향기가 나면 더 좋겠습니다. 와인 한 잔도 좋지요. 여름에는 샹그리아, 겨울에는 뱅쇼도 좋고요. 음악도 물론입니다만, 책을 읽을 때는 가사가 있는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책과 어울리는 것을 찾아 듣는 편이 더 좋아요. 라디오 작가로 사는 동안 글 뒤에 어울리는 음악을 붙여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기도 했고요. 일단 그런 것들로 승부를 보기로 하고 4월의 블라인드북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블라인드북은 2호점을 내면서 1호점과 차별화 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반응이 좋기도 했고 2호점을 철수해야 할 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1호점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읽을 책을 고르는 순간을 즐거워하는 저로서는 작가도 모르고 제목도 모르는 책을 산다는 것이 상당히 위험해보이지만, 너무 많은 책들 가운데서 좋은 책을 누군가 골라서 추천해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4월에 어울리는 책을 고르고 [벚꽃 나무 아래서, 사랑을]이라는 제목으로 블라인드북을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길래 어울리는 향으로 초도 만들어보았습니다. 역시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며칠동안은 매일 초를 만들었습니다. 리스본 뒤에 있는 공원에 벚꽃이 피었길래, 벚꽃길을 걸으며 드시라고 샹그리아도 만들어보았는데 샹그리아를 처음 선보이던 날은 하루종일 샹그리아를 따르고 있었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습니다. 마침 4월이고, 공원에 꽃이 피어 일종의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일단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오시면 시집 한 권, 문고본 한 권이라도 사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블라인드북을 샀는데 평소 저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책이었지만 읽어보니 좋았어요. 고마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시니 그 또한 감사하고요. 이제 4월도 끝이고 4월의 블라인드북은 몇 권 남지 않았습니다. 5월의 책으로는 어떤 것을 고를까 고민이 많아서 어제도 책을 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 이 시작이 고맙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서점 리스본을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는 나부터, 나를, 좋은 것으로 채워야겠다 생각하며 정서점으로서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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