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읽으며 이별을 통과하는 일에 관하여.
저희 서점에서는 사랑 때문에 고민이 있어 찾아오신 분들께 사연에 맞는 책을 권해 드리고 있습니다.
말간 얼굴의 고운 손님이 찾아와 말을 건넸습니다.
손님 : "2주 전에 이별을 했어요. 책을 권해주세요. 제가 차였어요."
정서점씨 : "차였거나 차거나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이별했다고 하면 되요."
손님 : "여러 달이나 그 쪽에서 제가 좋다고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사귀기 시작한 지 석달 되었는데요, 2주 전에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이제 그만 만나자고 했어요. 제가 싫은 거냐고 했더니 아니래요. 싫은 건 아니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30분만에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어요. 절 잡지도 않더라고요. 그냥 일어나서 나갔어요. 너무 빨리 변해버렸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2주 내내 내가 무얼 잘못했나 생각했어요. "
정서점씨 : "가끔 마음이 변할 때가 있잖아요. 뭔가 하고 싶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내가 하고 싶던 그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거나."
손님 : "네. 그럴 때 있어요. "
정서점씨 : "연애를 하면서도 그럴 때가 있어요. 혼자 누구를 오래 좋아하면 상상을 하게 되잖아요. 대부분은 좋은 상상이었을 거예요. 상상 속의 연애를 이길 수 있는 현실의 연애는 별로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갈망할 때는 좋은 일만을 상상하죠. 사귀게 되면 정말 행복할 거야, 세상 전부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될 거야. 하지만 막상 사귀기 시작하면 현실이 보이죠. 안 맞는 부분도 보이고 싸우기도 하고."
손님 : "맞아요. 이해해요."
정서점씨 :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손님 잘못이 아니에요. 현실의 연애가 원래 그런 거예요. 상상과 다른 거. 그 분은 진짜인 손님을 좋아한 게 아니라 상상 속의 손님을 좋아했던 것인지도 몰라요. 둘 사이에 격차를 느끼고 마음이 변했을 수 있죠. 막상 만나보니까 내가 상상했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건 실망과는 또 다른 거예요. 반대로 너무 대단한 사람이고 내겐 벅찬 사람이라서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잖아요. 생각했던 것보다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라 그 갭이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건 손님 잘못도 아니고 그 사람 잘못도 아니에요. 그냥 다른 거고, 그냥 생각이나 마음이 바뀐 것 뿐.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손님 : "그렇네요. 제가 부족하거나 잘못해서는 아닌 거겠죠? 혼자 좋다고 확 빠져 들어서 사귀자고 계속 그러더니 너무 빨리 변했어요. 그 점이 이해가 안 가서 저희 두 사람 모두를 아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혼자 좋아하면서 안달복달했는데 막상 사귀기 시작하니까 제가 너무 빨리 마음을 열고 좋아해서 시들해진 것 같대요. 정말 그럴까요?"
정서점씨 : "예전에 저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혼자 좋다고 달리다가 혼자 가버리더라고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전해 들었어요. 자기는 너무 빨리 뜨거워졌는데 저는 좀 느린 편이거든요. 원래 제 스타일이 그런데 그 사람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대요. 제가 덤덤한 게 다른 사람이 있다거나 마음이 없는데 자기 조건을 보고 만나는 거라고 혼자 상상하고 분노와 질투에 불타올랐는데 그 감정이 너무 뜨겁게 자신을 집어 삼켜서 견딜 수가 없었대요. 그제야 이해가 가더라고요. 손님의 그 분도 그럴 수 있어요. 지금은 그 분 자신도 이별의 이유가 뭔지 정확히 모를 수 있고요, 또 지금 당장 그 분이 뭐라고 하든 그것이 진짜 이별의 이유가 아닐 수도 있어요. 헤어질 때는 무슨 말은 못해요. 하지만 10년쯤 지나서 다시 만나본 적이 있었거든요. 자기가 헤어지자고 해놓고 이유를 기억도 못하더라고요. 그냥 그 순간 헤어지고 싶었던 거죠. 가끔 이별은 그렇게 당사자들도 모르는 이유로 와요. 그러니까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계속 앞을 보고 걸어가요. 좋은 친구를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어렵겠지만 자신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해보면 어때요? 그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또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을 지도 모르고, 이별이 아프지 않게 될 때도 있을 거예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거 알지만요."
책을 권해 달라고 하셔서 권해 드렸어요.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고 어떻게 이별을 통과할 수 있는가." 글을 쓰는 행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글을 읽는 행위가 있겠죠. 읽는 것은 이별을 통과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별도 사랑이고 사랑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고, 책은 그 이해를 더 깊게 해주는 강력한 장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