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점 리스본 May 07. 2019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이었다

5년 전 같은 병원. 4월 23일이었다. 병원 입구 문이 열리자 빗방울이 쏟아졌다. 여동생의 차가 내 앞에 섰다. 한 걸음 내딛자 우산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보름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섰다. 태어나서 첫 발을 걸을 때도 내 부모님은 비슷한 표정이었을까. 차는 달렸고 창문으로 벚꽃이 떨어졌다. 여의도였다. 15년을 일했고, 청춘을 보냈던.


사고 원인은 스트레스와 과로였다. 새벽 퇴근길 극심한 두통에 응급실로 달렸다. CT 촬영 후 다시 MRI였고 의사가 누워 있는 나에게 말했다. "가족에게 전화하셔야겠습니다. 뇌출혈입니다. 지금부터는 꼼짝도 하시면 안 됩니다. 응고되고 있는 피딱지가 다시 떨어지면 사망 확률이 높아집니다."


사망. 뇌손상. 뇌기능 장애. 몸의 마비.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의사는 설명했다.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중환자실 유리방에 갇혔다. 마침내 면회시간이 되어 방문한 내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반복해 불렸고 계속 무릎이 꺾였다. 후유장애없이 회복될 확률은 1-3%라고 했다. 

 

아직은 살아서 해야할 일이 남았던 것인지 나는 멀쩡히 내 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떨어지는 벚꽃을 보았다. 인생의 봄날은 끝난 것일까. 다시 시작인 것일까. 


CT 기계 안에서 처음 느꼈던 것은 뜻밖에도 평화였다. 사신이 코 끝에 있다. 죽으면 더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비에 젖어 유리창에 붙은 벚꽃을 보며 살아났음을 실감했다. 뜻밖에도 즐겁지 않았다. 창밖으로 KBS 건물이 스쳐갔다. 20대 말과 30대를 창문도 없는 스튜디오와 라디오 작가실에서 보냈다. 벚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회색의 벽만 보았다. 저기로 돌아가야 할까? 창밖의 빗물 같은 것이 내 안에 흘렀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 끝에서 무엇을 만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