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점 리스본 Sep 23. 2021

우정편지] 마롱이 물속깊이님께 보내는 세번째 편지

- 2021. 9. 23



물속깊이님. 송편 드셨나요? 저는 우리 동네 제일 맛있는 떡집 송편을 일곱 개만 먹었어요. 추석 연휴 동안 몸무게가 늘지 않았으면 해서요. 컨디션은 좋아졌는지 여쭙니다. 저 역시, 9월 되면서 골골댔거든요. 코로나로 자꾸 미루는 건강검진을 서둘러 받았는데, 초음파 끝나고 확인할 것이 있으니 진찰을 받으라는 의사 말에 일주일 뒤로 초진을 예약했습니다. 


9월 16일, 가톨릭대학교 서울 성모병원 암센터에 가는데 두근두근했어요. 진료실 들어가기 전 혈압이 170이었으니까요. 간호사는 그럴 수 있다면서 웃었고, 의사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의사처럼 친절했어요. ‘모양이 나쁘지 않고, 암일 확률은 3~5%, 초음파를 다시 한 후에 결과에 따라서 조직 검사를 한다’는 말에 친구를 부를 걸 했답니다. 남편과 아들이 바빠서 혼자 갔거든요. 그때 ‘강정심’이 생각났어요.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등장인물로, 제주에서 나고 자라 할머니가 됐고, 딸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을 이틀에 걸쳐 읽으면서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올곧게 살다 가신 ‘강정심’이 내 안으로 쑥 들어왔어요. 이야기 끝나고 제게 남은 사람은 유명한 소설가도 아니고 얼핏 주인공처럼 보이는 경하와 인선도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그가 생각난 것은 의외였는데 소설로 깊게 들어가니 그게 또, 의지가 됐어요. 


조직 검사는 하지 않았어요. 일단은 안심하고 정기 검진을 받자는 말에 그제야, 숨쉬기가 편해졌어요. 집에 오는 전철에서 몸은 부모, 마음은 자식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두 달 후 11월이면 환갑이 됩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몸을 보살펴야 할 터인데 탈이 나야 들여다보는 일이 부모를 대하는 것과 같고, 마음은 조금만 이상해도 살피는 일이 자식 일이라면 절절매는 것과 같아서요. 인지상정이겠지만, 이제는 몸도 마음처럼 애지중지하렵니다. 


어때요. 연휴 기간에는 한량으로 지내셨나요? 저는 한량이 어렵습니다. 물속깊이님처럼 마음이 바빠서는 아닙니다. 한량에는 돈을 흥청망청 쓰는 뜻도 있는데, 그건 불가능해서요. 하지만, 돈을 빼면 다른 일은 자신 있습니다. 한눈팔기도 잘하고, 낮잠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먹는 일에는 앞장설 수 있고, 미래보다 현재를 중히 여기고, 여행지에서도 계획은 세우지 않고, 정치나 정당에 뚜렷한 색이 없고, 놀고먹는 게 제일 좋으니까요. 너무 부지런하거나 바쁜 사람을 보면 부러움 대신 안타까움이 들 때도 있으니까요. 우리 같이 한량이 되어 볼까요. 


저는 연휴에 물김치 담근 것이 맛나서, 아들이 사 온 망고 케이크가 상큼해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가 재미있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물김치는 네이버 레시피대로 했는데 제 방법보다 괜찮아서 메모해두었어요. 그리고 산책에서는 고마리, 분홍바늘꽃, 여뀌, 수레국화, 맨드라미를 만나고 밤에는 달구경을 했습니다. 날마다 뚱뚱해지는 달은 뚱뚱해도 아름다웠어요.  


물속깊이님은 보름달에 소원 비셨나요. 이번 9월에는 유난히 맑은 날이 많아 추석 보름달에도 기대가 컸는데 비 소식에 아차 했습니다. 비 올까 봐 달이 뜨자마자 얼른, 매일 8.000보 이상 걷는다고 약속했어요. 정월대보름에 결과를 알려준다고도 했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소원만 빌면 달님이 얄밉다고 안 들어줄 것 같아서요. 추석 나흘 전부터 달님을 쳐다보며 눈도장을 찍었으니 속마음도 알 것 같아서요. 


연남동 티크닉 옆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많았어요. 우리 동네 공원에도 빨강, 노랑, 자주 열매가 달린 식물이 많습니다. 올해 제 열매는 무엇일까요. 편지 쓰며, 산책하며 살펴봐야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제 이야기만 가득하네요. 즐겁게 읽어줄 것을 알기에 편하게 썼습니다. 오늘은 추분. 절기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물속깊이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냅니다. 2021년 9월 23일. 마롱 드림 ◐


매거진의 이전글 우정편지] 마롱님께 물속깊이가 보내는 두번째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