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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Oct 06. 2021

우정편지] 마롱님에게 물속깊이 : 세번째 편지

-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괜찮다 괜찮다, 소리 내어 말했어요.


시월이에요, 마롱님. 시월이라고 쓰니 글자 사이로 바람이 부네요. 십월이 아닌 시월이라 그런가 봐요. 아침에 달력을 넘기며 생각했어요. 시간 참 쏜살같다고요. 우리말은 어쩜 이럴까요. 활을 쏴본 적 없는 사람도 쏜살이 얼마나 빠른지는 너무 잘 알잖아요. 며칠 전 지금부터 하루에 만 원씩 모으면 백만 원이 된다는 글을 봤어요. 그렇다면 열 쪽씩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읽었냐고요? 그저 웃습니다. 


편지를 읽다 건강검진이라는 단어에 허리를 바로 세웠어요. 이어지는 문장을 허겁지겁 읽고 일단 안심했습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짐작할 수 있어요. 많이 놀라셨지요. 고생 많으셨어요 마롱님. 무엇보다 정말, 다행입니다. 마음을 놓고 천천히 편지를 다시 읽다가 조금 놀랐어요. “몸은 부모, 마음은 자식 같다”는 문장 때문에요. “탈이 나야 들여다보는 일이 부모를 대하는 것과 같다”는 문장에서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연휴에 부모님 댁에 갔었는데 추석날 밤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거든요. 휴일이 남아있어 검사 결과를 바로 알 수 없었어요. 앳된 의사는 일단 기다려 보자고 했어요. 엄마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엄마 손이 너무 작아 놀랐어요. 울지는 않았습니다.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었어요.


그날 밤, 동생이 집까지 태워줬어요. 아파트를 빠져나와 좌회전을 할 때 보름달을 봤어요. 심상치 않은 구름 사이에서 홀로 밝았습니다. 아, 추석이지. 멀어지는 달님께 다급하게 소원을 빌었어요. 내심 집에 도착하면 제대로 빌 생각이었죠.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중에 동생에게 말했어요. 사이좋게 지내자고요. 그래. 동생의 쿨한 대답을 듣고 괜히 코끝이 시큰했네요.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연애는 하지 않고, 할 의지도 별로 없는데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쩌나. 생각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쓸쓸하진 않았어요. 밤 풍경이 예뻤거든요. 어둠에 보이진 않아도 차창 너머로 분명 강이 흐르고 있으니까요. 동생을 배웅하자마자 비가 쏟아졌습니다. 달님도 볼 수 없었어요. 모퉁이를 돌며 다급히 빌었던 소원을 달님은 들으셨을까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자주 걸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괜찮다 괜찮다, 소리 내어 말했어요. 마롱님 편지도 떠올랐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 정심씨를 당장 만나야겠다 싶었죠. <바람이 분다, 가라>와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동안 앓았던 터라 이번 소설은 미루고 있었거든요. 이틀 만에 다 읽고 글쓰기 클럽에 글을 썼어요. 괜찮다고 말하는 것보다 의지가 되었습니다. 늦지 않게 정심씨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심씨는, 그리고 글쓰기는, 정말 힘이 세네요. 


점심 산책길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드디어 마롱을 만났거든요. 반가움 담뿍인 저와 달리 마롱은 무심히 여기저기 누워있었어요. 몇 년을 곁에 두고 걷던 나무가 마로니에였다니!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마롱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몰랐을 테지요. 어머, 밤이네. 동료들의 말에 밤 아니에요, 마롱이에요, 대답하는 어깨가 으쓱. 먹을 수 있냐기에 못 먹는다고 웃으면서 속으로 덧붙였어요. 먹지는 못해도 편지는 쓸 수 있답니다. 마롱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라 기뻐요. 게다가 매일 8,000보를 걷고 매일 글을 쓰는 마롱이라니요. 어깨가 한 번 더 으쓱.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시월에는 몸에도 마음에도 빈 자리를 주려합니다. 십월 아니고 시월이니까요. 건강해요, 우리.


시월 둘째날, 물속깊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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