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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Oct 06. 2021

우정편지] 마롱이 물속깊이에게 네번째 편지

-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 이야기는 쉽게 잊히질 않았어요. 


컴퓨터 화면 메일 숫자를 보고 물속깊이님 편지가 왔네, 했어요. 스팸이거나 다른 메일일 수도 있지만, 느낌이 딱 왔어요. 저야말로 쏜살같이 메일을 열고 읽었답니다. 어머님 소식에 놀랐지만, 괜찮으신 것 같아 다행이고 감사하네 했어요. 고생하셨어요, 물속깊이님. 병원에서 어머님 손을 꽉 잡아드렸다니, 어머님은 의사보다 따님이 더 든든했을 것 같고, 저도 따듯하니 좋네요. 


종합병원 암센터에 다녀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고 수술이나 입원도 아니고 검사에 유난 떠는 것 같아 혼자라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무뚝뚝한 보호자라도 병원은 내 편이 필요한 공간이었어요. 진료 신청도 수납도 키오스크로 했는데, 기계 옆 도우미는 작동이 서툰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뺏다시피 해서 대신해주었어요. 서두르는 이유는 알지만, 한두 번 아니 서너 번만 천천히 하면 할 수 있는 것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게 안타까웠어요. 우리는 왜 그렇게 바쁘고, 노년을 소외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무심할까요. 10년 후에 키오스크는 무엇으로 변할지, 제가 70대가 되어서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좀 쓸쓸했어요. 


그저께는 미국 사는 아들과 보이스톡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시작한 이야기는 이래요. 며칠 전 감기 걸렸을 때 자기가 감기 걸린 줄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었고, 학교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도 알아채는 사람이 하나 없었고, 아빠도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엄마는 내게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다. 공원에서 한참 웃었어요. 집에 오면서 제가 한석봉 엄마가 된 것 같아 또, 웃었어요. 한석봉 엄마 이름이 궁금해 찾았지만, 허탕 쳤어요. 대신, 그가 가난한 양반이었다는 글에서 멈췄어요. 16세기, 조선 시대 양반이, 여인이 떡장수를 했다니요, 훌륭하지 않나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 이야기는 쉽게 잊히질 않았어요. 엄마라는 무게와 책임감, 아들과 지지고 볶고 싸운 시간도 생각났지만, 저도 엄마가 그리웠어요. 서른 넘은 아들이 감기 걸렸다고, 다 나았다고, 시금치나물 레시피 묻는다고, 날씨 좋다고 전화해서는 수다 떠는 게 부러울 때가 있어요. 저는, 제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해보지 못한 일이에요. 이 나이에 엄마 타령은 좀 주책 같지만, 총량 법칙은 여기에도 적용되나 봅니다. 아들은 수다 끝에 엄마 글감에 도움 되라고 한 말이라는데, 저는 어른은 되지 못하고 어른 역할을 하느라 애쓰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을 했답니다. 


물속깊이님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만났고, 정심씨가 의지가 되었다니 참 좋습니다. 이번 가을 책 읽기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충분해서 밖으로 쏘다닐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주에서 4.3 관련 집터나 기념비를 만나면 강정심씨와 눈 내리는 풍경이 생각날 듯싶어요. 정심과 <소년이 온다> 동호는 마음 아프거나 눈물이 절로 나오지만, 사람다움이 절실할 때 잊을 수 없는 큰 사람이 됐습니다. 글은 정말 힘이 세네요. 최근에는 넷플릭스 주가 총액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느라고 책은 읽지 못했어요. 물속깊이님도 보셨나요? 남편은 어릴 때 오징어 게임을 했다는데 저는 기억이 없어요. 공기놀이, 다방구, 고무줄, 숨바꼭질, 자치기, 땅따먹기, 실뜨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는 했답니다. 놀이 이름을 쭉 쓰다 보니 놀이는 다 어디로 갔나 싶어요. 저는, 공기는 잘했는데 고무줄은 깍두기였어요. 물속깊이님은 이중에 뭘 하고 놀았나요. 드라마는 뭐, 얼마나 재미있나 궁금해서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하려는 말이 정확하고,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는 힘이 있어요.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요. 재미있는 책 읽고 나면 친구에게 권하고 책 이야기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듯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이 있다면 수다 떨고 싶을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마롱을 만났군요. 내년 봄, 마로니에 꽃은 얼마나 반가울까요. 봄에는 꽃이 있고, 가을에는 열매가 있고, 우리에게는 편지가 있네요. 저와 편지 친구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물속깊이님. 오늘도 편안하세요. 


2021년 10월 4일. 마롱 드림 ◑◑



덧 :-) 추석날 달님에게 모퉁이를 돌며 다급하게 소원을 비셨다고 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보름달님은 풍성하기가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테니 분명 보고 들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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