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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Nov 19. 2021

우정편지] 마롱님께 물속 깊이

- 2021.11.15 일곱번째 편지


아직 제주이신가요, 마롱님. 제주에서도 어김없이 매일 올려주신 글을 읽으며 제주의 바람을, 돌들을, 노랑 자귀나무를 떠올렸던 며칠이었습니다. 먼 곳에서도 기척을 내주는 바지런한 글들. 덕분에 11월 제주를 함께 걸은 기분입니다. 고맙습니다. 11월이 생일이라고 하셨는데 제주에서 생일을 보내신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요(정확한 날짜에 축하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편지를 보내자마자 받은 답장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더 반가웠어요. 그렇지만 아시지요. 반가운 마음과 바로 답장을 쓰는 마음은 별개라는 걸요. 소개해주신 <A가 X에게>(존 버거)를 “진짜, 읽으셨나요?”라고 물으셔서 뜨끔했어요. 읽기는커녕, 김연수 작가님이 추천했던 책이라는 것도 이번에야 알게 된 걸요(팬의 자질이 부족한 것 같아 ‘사모해마지않는’은 뺏습니다). 바로 책을 사긴 했는데 빠르게 도착한 책에게 미안할 정도로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다 읽고 편지를 써야지 했는데, 그랬다간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아 편지를 먼저 쓰기로 합니다.


매일글쓰기 클럽을 일 년이나 이어오고 있지만, 마롱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매일 쓰지는 못하고 있어요. 마음대로 ‘매일’에 괄호를 치고 퐁당퐁당 쓰고 있지요. 이틀에 글 하나, 적어도 일주일에 세 편이 나름의 목표였는데 지난 며칠은 그조차 어려웠네요. 왜일까를 생각하다 생각하기를 그만 뒀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백지 앞에 한 글자도 내지 못하는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싶어서요. 그저, 이런 마음도 있구나 지켜보기로 했습니다(글 안 쓴 핑계인 거 티 많이 나나요?).


쓰지 못하는 대신 작가들의 말을 기웃거렸습니다. 지난주 글쓰기 줌모임이 끝나고 같이 읽자며 게시판에 인용하기도 했던 <아뇨, 문학은 그런 것입니다> 얘기입니다. 계간 문학동네 100호 특별부록인 이 책에는 작가 100명의 글이 담겨 있어요. 목차만 읽어도 흐뭇한 책 생각이 났던 건 <일기>의 여운이 길어서였습니다. 황정은 작가님을 시작으로 김연수, 윤성희, 이혜경, 김애란, 문태준… 좋아하는 사람 부르듯 책장을 넘겨 문장 사이를 서성였습니다. 그러다 이런 문장을 만났어요. 291쪽과 292쪽 사이에서요.


“나는 외향적인 인간도 모험심이 강한 작가도 아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보다 잘 전달하고픈 욕구와 기술적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게 됐다. 항상 감각을 열어두고 자극을 받아들이며 편견을 교정하려 애쓰게 됐다. 물론 실패할 때도 많지만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바깥 세계를 내 살갗으로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끼고 해석하고픈 욕구를 갖게 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연습 자체가, 또 시도가, 내 삶을 보다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줌을 알게 됐다. 처음엔 그저 그런 게 필요해서 시작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게 ‘글쓰기’와 ‘글 읽기’는 직업이거나 취미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며 훗날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존재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김애란 작가님의 문장입니다. <그랬다고 적었다>라는 제목으로 실려있어요. 며칠을 적지 않았던 저는, 이 글을 읽고 마롱님 생각을 했다고 적습니다. 각자의 온도로 글을 쓰고, 읽고, 다정한 기척을 잊지 않는 문우님들도 떠올랐다고 적습니다. 쓰는 일과 읽는 일이 제게도 ‘삶의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요.


쓰지 않거나 쓰지 못하는 사이로도 계절은 정직하게 흐르더군요. 사실 조급한 마음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주 조급하지는 않았어요. 읽다 보면 시키지 않아도 쓰겠지 싶은 마음이 제게 있었나 봅니다. 이 편지처럼요. 11월이 반이나 지났지만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 좀 더 여유를 부려볼까요, 라고 적는데 핸드폰 액정이 반짝. 글쓰기 카페의 댓글 알림입니다. 마롱님, 서울이시군요. 어떤 바다를 품고 오셨을까요. 바다가 뭐라고 하던가요. 궁금한 게 많은 덕분에 오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적으니 별수 없이, 좋네요.


2021년 11월 15일, 물속깊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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