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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Nov 07. 2021

우정편지] 물속깊이에게 마롱으로부터

- 일곱번째 편지 2021.11.07


아, 찌찌뽕입니다. 책 읽다가 물속깊이님 생각나서 편지 쓰고 딱 보내려다가 편지를 받았거든요. 왠지 통한 것 같아 즐겁습니다. 수정은 좀 번거롭지만요. 


오늘은 일요일 치고는 한가해서 뒹굴뒹굴 책 읽는데, 수영 생각이 났어요. 


친해지지 않을 것 같던 사람과 친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저는 수영과 안 친해질 줄 알았는데 수영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짝사랑에 가까울 만큼 수영이 좋아졌어요. 왜 짝사랑이냐, 좋아하는 만큼 잘하지 못하거든요. 그러자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수영복 가게를 기웃거리고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서도 수영 시합이 눈에 들어왔어요. 데이비드 호크니 수영 그림뿐 아니라 수영이나 바다 그림이 더욱 좋아졌고, 어떤 사람이 수영 다닌다고 하면 괜히 반가워서 그는 자유형을 좋아할까 접영을 좋아할까 궁금했답니다. 


책과 수영이 무슨 상관인가 궁금하실 테니까, 이쯤에서 책 이야기를 할게요. 책은 <A가 X에게>(존 버거) / ‘편지로 씌어진 소설’입니다. 서점님이 지난 11월 3일에 보내주신 ‘11월의 리스본’ 메일에서 만났어요. “우정편지를 읽고 있으면 따듯한 찻잔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라는 서점님 글에서는, 저야말로 따뜻한 HAPPINESS 차가 앞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요. 수영할 때처럼,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편지로 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A가 X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A가 자기 삶을 어떻게 꾸리는지 잘 보여주는데, 형용사 별로 없는 차분한 문장도 좋아요. 제가, 며칠 전에 리스본 글쓰기 클럽에 문장 수집으로 올린 “사랑은 시간의 어릿광대가 아니기에··· / 사랑은 짧은 세월에 변하지 않고 / 운명이 다할 때까지 견디는 것 // 만일 이것이 틀렸다면, 그렇게 밝혀졌다면 / 나는 글을 쓰지 않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을. 「셰익스피어. 소네트 116」”는 읽으셨지요. 본문 전에 있는 소네트 읽고 아, 참, 셰익스피어··· 감탄했어요. 축구 하면 손흥민, 동네책방 하면 서점 리스본처럼요. 문장수집 글에는, 김연수 작가님 추천으로 <A가 X에게>를 샀다는 댓글도 있어요. 저도 김연수 작가님 팬이라 우선은 반갑고 다음은 김연수 작가님이 추천한 책이라면 물속깊이님은 읽었겠네, 했어요. 진짜, 읽으셨나요?


책 읽다 말고 편지 쓴 이유는 “모든 사랑은 반복을 좋아해요. 그것은 시간을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당신과 내가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57쪽) 때문입니다. 물속깊이님이 우리 둘 다 좋아하는 황정은 작가님 에세이 <일기>에서 “사랑이 천성이라고, 내가 말한 적 있던가?”를 좋아하는 문장으로 골라주신 것이 생각나서요. 어쨌든, 사랑은 천성이라 시간을 거부하고 운명이 다할 때까지 견디는 것인가 봐요. 사랑을 견디는 수고로움은 가을이 한창이니까 잠시 잊고 사랑에는 이런 속성도 있네 하렵니다. 사랑도 사람도 여러 갈래일 테니까요.  



여기까지가 물속깊이님 편지 받기 전에 쓴 제 편지의 줄거리랍니다. 


먹통 핸드폰에서 사진 걱정만 하셔서, 물속깊이님은 따듯한 분이구나 했어요. 저라면, 뭘 걱정했을까, 하하하, 저도 사진이 제일 마음에 걸리네요. 다른 것은 AS가 불가능하면 폰을 사면 되고(제 폰은 저렴한 기종이고, 약정도 3개월 남았어요), 앱이야 깔면 되니까요.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 특별히 중요한 연락처도 없거든요. 글감을 얻는 일로 끝난 것을 가볍게 축하드립니다. 새 폰인 듯 새 폰 아닌 폰으로 은행나무 사진은 잘 찍으셨나요. 저는, 올해 은행나무에 꽂혀 은행나무 앞을 오래 서성거렸어요. 어쩜 저렇게 환하지, 하면서요. 빨강머리 앤은 초록 지붕 집 옆에 있는 산사나무 꽃을 좋아해서 그 꽃을 보지 못하고 사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친구 다이애나에게 말하는데, 늦가을에 은행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뚜껑을 잃어버려 텀블러를 새로 살 때 마리골드 노랑으로 샀어요. 겨울에도 은행나무 노랑과 같이 있고 싶어서요. 그러면 글도 잘 써지려나요. 


입동에 점을 쳤다는 이야기는 처음인데, 아마 농사 관련 점이라고 추측을 해봅니다. 명랑한 그림자라서 겨울로 잘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에, 저는 입동에 편지를 받았으니 그럴 거라고 우겨봅니다. 입동이라고, 텃밭에서도 11월 21일까지는 무와 배추를 수확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그전에라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서두르라는 당부와 함께요. 무와 배추는 얼면 먹을 수가 없거든요.  


바야흐로 겨울 소식이 전해지네요. 겨울이 와도 걷고 읽고 쓰는 일은 변함이 없는지라 뭐, 겨울이라고 쓸쓸할 일은 없을 테니 코로나와 감기나 조심해요, 우리. 2021년 11월 7일. 마롱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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