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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좋은 아침입니다.
연남동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고 햇살은 곧 따가워지겠어요.
5월이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오늘은 그리운 마음에 예전 사진을 꺼내보았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오래 되었다는 건 기억이 쌓인다는 것. 그래서 좋아요. 어려운 날이나 고단한 날 혹은 그리운 날에 좋았던 날을 맘껏 꺼내볼 수 있으니까요. 연남동 250-5 시절 사진입니다. 봄이면 홍매화가 찬란하던 마당과 공기가 유난히 차분하던 작은 방에서 우리는 매일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맞아요. 차분했어요. 고요히 가라앉는 가운데 책을 읽고 있으면 글의 내용이 몸 안에 흐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요 근래에는 코로나 동안 뜸하였다가 다시 찾아온 분들이 많았던가봐요. 인사 건네며 "예전 자리로 갔다가 서점이 사라진 줄 알고 놀랐어요"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여전히 책을 건네며 여기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회의 시간에 말하더라고요. "친구가 회사 세우는 일을 도와주다보니 알겠더라고요. 긴 시선으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요. 협업하자는 사람, 투자하자는 사람도 많았는데 거절할 때는 옆에서 서점이 더 빨리 크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젠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야 늘 있습니다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고 좁고 길게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커지면 결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저희는 작게 존재하겠습니다만 그래도 방문한 분들에겐 특히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로 남고 싶어요.
며칠 전 리스본이 생각하는 멋진 언니 중 한 분인 초콜릿 기술자 카카오봄의 고영주 선생님이 오셔서 처음 일을 시작하던 무렵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비전이 보였어요. 저기 멀리 할머니가 되어서도 초콜릿을 만들고 있는 내가 보였어요."
디자이너 말에 대답했어요. "할머니 되어서도 하려고 시작한 일인 걸. 80대의 나에게 40대의 내가 주는 선물이 이 서점이야." 오래 가기 위해 시작한 일이니까요, 작아지거나 커지거나 옮겨가거나 할 수는 있어도 (아직 제 소유의 건물이 없어서 말입니다) 사라지지는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5월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스케쥴들을 다 소화하나요?"라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대한민국 방송작가는 지금 스케쥴의 2배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22년이나 지금보다 훨씬 바쁘게 살았는 걸요. 다행히 지금은 좋은 팀이 생겨 일을 나누고 있으니까요, 기쁘고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부담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원칙 아래요.
5월에도 함께 쓰는 외면 일기, 문장 수집 모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도 역시나 계속되는 중이고요. 주말에는 와인 독서실이 있었고 금요일에는 금요 독서실이 열립니다. 일요일에 모이는 브런치 독서실도 신설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세번째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열어보려 합니다. 6월에는 <우리 동네 맛집>을 주제로 열어보려고 해요. 브런치 독서실 열면서 깜짝 놀란 게 있어요. 혼자 살면서 요리를 해먹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보통의 건강한 음식들은 많은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으니까요, 언젠가 가볍고 건강하게 집에서 해먹는 법도 알려 드리고 싶어졌어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오늘의 내가 시간과 노력을 선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이러다 토탈 케어 서비스 서점이 되겠네요 :)
고영주 선생님의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북토크는 진한 핫초코 한 잔으로 시작했지요. 쇼콜라티에라는 말보다 초콜릿 기술자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고영주 선생님은 우리나라 1세대 초콜릿 전문가입니다. 현재는 카카오봄이라는 브랜드 대표이기도 하고요. 가끔 생각해요.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간 선배가 있다면 좋겠다. 그 분을 보고 배우고 싶다. 가끔은 상의도 하고 기댈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다보니 독립서점 부활 1세대가 되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중이니까요. 막막하던 날에 과학저술가 이지유 선생님 말씀에 마음을 바꿨어요.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현주씨는 개척자야." 개척자라는 말에 두근거려 어쩔 수 없구나 계속 걷자 했지요. 걷다가 좀 여유가 생기니 뒤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느낀 외로움을 그들은 조금 덜 느끼기를 바라여 '멋진 언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그저 앞서 가는 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을 혹은 여러 가지 일을, 어쨌든 일하며 20년씩 걸어온 언니들에게는 분명 들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같이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일이에요. 고영주님에게는 기술이 가진 힘에 대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하며 걸어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요. 지금 당장이 너무 바빠서 우리는 멀리를 볼 시간을 잃곤 하지만 멀리서 웃고 있는 내가 보여야 기쁘게 걸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요, 이따금 멀리 보라고 말하는 언니가 필요하기도 하지요. 고영주님은 포근하고도 당당한 언니였습니다.
<두 고양이> 북토크는 번역의 과정이라는 주제로 같이 했어요. 이재경 번역가님은 리스본 사람들 영어 실력에 놀라며 돌아가셨답니다. 책 이야기도 즐거웠고 이재경 선생님 살아온 이야기도 재미났어요. 30대가 끝날 무렵까지 리테일 마케터와 디렉터로 일하다가 번역가가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지요. 까르푸 등에서 일하셨다고 해요. 영어를 많이 써야 했고요. 우리는 본래 하던 일을 확장 심화하여 다음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일을 더 잘해내보겠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의 나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 될테니까요.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북토크도 있었어요. 아버지의 인생을 기록한 딸 이야기. 다정하고 유쾌했지요. 2층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머!"라며 놀랐지요. 만나고 보니 리스본에서 하는 행사에 종종 참여하던 분이었지 뭔가요. 글쓰기 모임을 통해 꾸준히 글쓰다가 스스로 책을 냈다고 해요. 흥미로운 독립출판물을 발견한 출판사에서 같이 책으로 묶어보자 손 내밀어 주었답니다. 택배 기사님을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 좋아서 누가 제목을 지어주었나 물었더니 글쓰기 멤버들이었다고 하네요. 꾸준히 한다, 같이 한다는 일이 갖는 의미를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햇빛 찬란한 가운데 마당이 붐비고 작은 옆골목 테이블에선 사람들이 책을 읽는, 5월은 꿈처럼 흘러갔습니다. 6월에도 정기적인 모임들이 열릴 거예요. 문장수집도 하고, 독서실도 하고, 걷고 쓰는 모임도 하고, 브런치 독서실도 열릴 겁니다. 식물 수업도 계획 중이고요, 확정된 북토크도 좀 있어요.
6월 3일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작가 신간 <감정 어휘> 북토크
6월 17일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이고은 심리학자 북토크
6월 24일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번역가 북토크
유선경님은 본래 북토크를 하지 않는 분인데 서점 리스본 사람들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며 연락 주셨어요. 심혜경님도 '서울에서는 리스본에서만 할래요'라며 연락 주셨고요. 이고은님과는 여러분이 겪고 있는 사랑의 어려움을 나누고 덜어봅시다. 날짜를 기억해두세요 :) 6월의 행사들은 미리 신청페이지를 열어둘 참입니다.
<리스본 해방클럽>에 대해 많은 분이 문의 주고 계세요. 5월에는 각자 해방일지를 적어서 올리고 모여서 하루 이야기하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6월에는 노트와 연필 등을 보내드리려고 해요. 곧 공지가 올라갈 겁니다. 오늘 오후엔 노트 사러 가려고요. 준비가 되면 신청 페이지를 열어둘게요.
오래 라디오 작가로 살면서 매일이 짝사랑하는 날들이라 생각했었어요. 보이지 않는 청취자를 상상하고 사랑하고 걱정하니까요. 뭘 좋아할까, 무슨 생각할까, 요즘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걷고 밥 먹고 생활했습니다. 이제는 눈 뜨는 순간부터 서점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오늘은 날이 맑으니 서점이 붐비겠구나, 봄이 오니 로맨스를 찾겠구나, 여름이니 소설을 보고 싶겠지.
매일 생각하고 걱정하고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건강하세요.
내일 아침엔 씨네필소울님의 <슬기로운 영화 생활>을 보내겠습니다.
5월 초에 받았는데 정신없이 살다보니 5월 말에 띄우게 되었네요.
여러분의 날들이 조금은 더 풍성하도록 부지런 떨어보겠습니다.
그러니, 건강합시다.
하늘이 맑아요. 점심은 상큼하고 몸에 좋은 걸로 챙겨드시고 내일 또 편지할게요.
번역기에 Have a good day를 넣었더니 포르투갈어로는
Que tenham um bom dia 라고 뜨네요.
Que tenham um bom 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