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가게

by 예솔

새로운 장소보다 익숙한 장소를 선호한다. 또 그런 것 치곤 오랜 단골집이 없다. 여기에도 나만의 이유가 있다.


자취하던 시절 자주 가던 반찬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의 김밥은 내가 먹어본 김밥 중 단연 1위였다. 며칠이든 몇 끼든 연속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가게는 우리 엄마뻘 정도 되어 보이는 사장님 부부가 운영했다. 그 중 여자 사장님은 스몰톡 고수였고, 갈 때마다 김밥을 싸주시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게 피곤해서 방문을 줄였다. 김밥이 생각날 땐 배달로만 주문했다. 그러다 폐업하셨는데 어디로 가셨을까….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아주머니 혼자 운영하시는 미용실이 있었다. 저렴하기도 하고 친절하셔서 매달 방문했다. 그 분 역시 스몰톡 달인이었다. 어느새 그 분의 이혼 및 재혼 스토리, 따님과 사위분의 직업과 사는 곳, 보유 부동산 등을 알게 되었다. 나도 질문에 하나 둘 대답하다 보니 많은 정보를 드린 것 같다. 점점 그 미용실에 가면 긴 대화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방문을 줄이게 됐다. 다른 상점에 가느라 그 미용실 앞을 지날 때도 마주칠까봐 가슴이 두근거려서 피하다가 결국 발길을 끊었다.


아무 부담 없이 자주 가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집 앞 카페. 늘 반갑게 맞아주시지만 인사와 주문 관련 대화 외엔 거의 말씀이 없으시다. 내가 먼저 스몰톡을 열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지만, 나의 어색함이 전해진 건지 길게 이어가진 않는다.


가장 오래된 단골집은 내가 다니는 정신과. 정말 오래 되었는데, 워낙 환자가 많은 병원이라 진료 차트를 읽지 않으시면 나에 대한 정보는 거의 기억을 못 하시는 듯하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땐 마치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름을 불러주신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관계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고대하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인사하는 다정함과 나의 영역을 지켜주는 배려가 있는 관계.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작은 눈인사만으로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간 기분. 그 관계들 덕분에 평화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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