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다는 것

by 예솔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고 싶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려면 ‘나는 ~한 사람‘ 이라고 단언하거나 ’나는 절대, 무조건 ~하다‘ 라고 확언하는가를 보면 된다. 조금이라도 고민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단정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어, 나는 20대 초반 시절에 어떤 의도에서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이다를 마셨는데 콜라를 마셨다고 하는 거짓말조차 싫다’고. 그러나 과거를 되짚어 보면 때에 따라 솔직하게 무례한 언행이 더 싫었다. 게다가 상대에 따라 사실 여부가 궁금하지도 않은 경우도 있다. 결국 내 성향이나 기호는 상대, 상황, 컨디션, 경험 등에 따라 매번 다른 기준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을 물으면 초록색이라고 답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내 옷이나 물건 중에 유채색인 것의 대부분은 파란색 계열이었다. 초록색이 예쁘다고 생각해왔지만 선택은 늘 파란색으로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파란색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몰랐으니 무의식적인 선택이었나 보다.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친하지 않은 지인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 중에서도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 조금 덜 친한 친구 간의 차이가 있고, 호감이 있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 자주 만나지만 호감은 없는 사람 간의 차이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 대한 내 마음가짐과 상대의 성향에 맞춰 조금씩 태도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만이 나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모든 형태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어쩌면 나를 가장 모르거나 왜곡해서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추구미와 도달미가 다르듯이, 본인이 답변한 MBTI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듯이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는 다르다. (그 타인들도 각자 다른 모습으로 나를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며 추구미와 도달미의 간극을 줄여간다. 둘 중 어느 쪽에 더 치우칠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막연한 인생이라는 모험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나는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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