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탓할까.
여행 장소를 검색하다 새삼 놀라웠던 건,
"동행"을 구하는 글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젊은 친구들인 듯했고, 성별 상관없이 또래 친구를 원했다.
전시회, 박물관, 힙한 카페 등등 같이 이동할 사람, 같이 여행 갈 사람...
뿐만 아니라, 맛집 찾아 같이 먹을 친구~~
나는 매우 놀라웠는데, 지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젊은이들에겐 꽤 자연스런? 문화라고...
의외로 딱 동행으로 건전하게 만나고, 목적 달성 후 헤어지고,
혹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돌아와 계속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고...
암튼 이렇게 재미있게 산다고 한다.
"참 쿨~하지!, 요즘 애들"
지인은 이 상황을 cool하게 정리했지만, 나는 참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화장실도 함께 가려했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좋긴 했지만 마음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고, 그닥 살갑지도 못한 나는 참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무작정 팔짱 끼고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친구를 뿌리치질 못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함께였다.
같은 반이었을 때는 물론이고, 반이 달라져 같은 물리적인 공간에 있지 않을 때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된 듯 느껴지던 친구.
당시 우리는 졸업 후 맞게 될 각자의 치열한 삶, 그런 삶에서 눈과 마음이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할 만큼 불안하고 설레었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다.
나에게 '동행'은 그렇게 진하고, 끈적끈적한 관계처럼 느껴진다.
'동행'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인물은 남편이다.
아빠나 엄마, 친동생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점이 새삼 놀랍다.
생각을 고쳐보려 다시 시도해 보아도 여전히 아빠, 엄마, 동생보다는 남편이 내 동행자에 더 가깝다. 그들을 사랑하지만, 언제나 곁에서 함께 하지는 못한다는 현실 때문일까?
동행은,
내 삶에서의 동행은, 이렇게도 진한 발자국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 "마음"까지 함께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때문이었을까?
오늘 하루의 일정, 혹은 짧은 여행을 위해 낯선 이들에게도 선뜻 "동행"을 구하는 MZ 세대의 문화가 낯설고 어색한 이유가.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동시에 호기심도 생긴다.
이렇게 가벼운 동행을 편하게 즐기는 그들의 문화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시대,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요인, 위험인물들에 대한 경계심이 없지는 않을 텐데, 과감하게도 이런 관계를 구하다니!
그렇다면야, 오히려 무겁지 않아 좋은 이런 가벼운 동행이 비슷비스한 일상에 생기 있는 포인트를 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낯선 것들이 주는 설렘이나 기대감처럼 말이다.
특정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저울질할 필요도 없고,
Give & Take 같은 마음의 빚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좋게 보니 좋은 점도 꽤 많다.
(비용 정산 또한 깔끔하기 그지없다. '더치페이'로 익숙한 말이지만 그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자연스럽게
'n빵'이라 부르며 전체 금액을 함께한 인원수로 나누어 똑같이 부담한다)
필요에 맞는 딱 그만큼의 용량만으로 서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동행.
아, 정말 쿨~한 관계이지 않는가?
MZ들의 여행문화를 '쿨~하다'했던 지인의 말이 정말 맞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나는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
물론 모든 사람들과 다 좋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지는 않지만, 그럴 필요도 없지만, 최소한이라도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진.중.했던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가벼운 관계, 가벼운 동행의 가치나 진정성을 의심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2030 세대의 '동행 구함' 문화는 이 또한 내 편견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들의 동행은 가볍지만 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또 미니멀리즘에 가깝다.
불필요한 사이드 감정은 덜어내고 딱 필요한 감정만을 챙겨 서로에게 직진하는 관계.
동행이 이토록 가볍다니! 탄식할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적극 동참할 용기는 없으나,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의 '관계 맺음의 문화'를 흥미진진하게 꽤 오랫동안 지켜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