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 Sep 25. 2024

미리 쓰는 유서

업데이트가 필요하니까,


독서모임(책사언니 함께성장연구소 : 네이버 카페 (naver.com)의 글벗님께서 미리 써본 유서에 대한 글을 올려 주신 덕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유서가 생각났다.

몰래 쓰고, 몰래 저장해 놓았던 내 유서를 또다시 몰래 열어 보았다.  

폴더명에 차마 '유서'라는 단어를 쓰기 못해 Last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더랬다. 


폴더 안에는 3개의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  처음 쓴 후 6개월 만에 다시 고쳐 쓰기를 했고,  그 후 5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두 번째 고쳐쓰기를 했다. 

마지막 수정 후 오늘까지 일 년이 조금 넘게 흘렀다.




어떤 이유든 죽음이라는 실체를 실제로 앞두고 있는 분들의 마음에야 비할 바가 없었지만, 처음 '유서를 써볼까?'라고 생각했을 땐 '죽음'이라는 사건을 제법 진지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처음 썼던 유서를 6개월 후에 다시 열었을 땐, 사랑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조금 더 표현했다.

5개월 후에는 '바람이 불 때면,  엄마가 곁에 있다고 생각해 주렴'이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완전히 잊혀지는 것에 대한 미련이 생겼던 걸까?


오늘 4번째 고쳐쓰기를 하게 되었다. 지난 일 년동안 꽤 많은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삭제한 내용도 있고, 추가한 내용도 생겼다.


죽음에 임박해 쓰는 유서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내 생에서 '미리 쓰는 유서'를 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대부분 내일은 당연히 오는 것이고, 따라서 '시간'은 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장담해 주었는가?  당신에게 내일이 꼭 있다고?

언제, 어떻게 죽음이 가까이 올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





유서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유서를 써 보면 알게 된다. 

물건을 정리하고, 방을 비우는 것처럼 내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살면서 남긴 무수히 많은 흔적들 가운데, 남길 것과 버릴 것, 당부할 것들의 옥석을 가리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가면서 내 삶의 기준과 가치관, 물질적, 정신적 환경들이 바뀌면서 정말 내 주변정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서는 '죽음'뿐만 아니라,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유서'란 잘 죽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잘 살게도' 해 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유서를 써 본 후, 나는 몇 주간을 유서의 내용 때문에 슬펐지만, 문득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그 슬픔을 내 힘으로 조금이라도 삭제해 보자,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유서와는 반대되는 행동, 생각을 하면서 나를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려고 노력하곤 했다.


유서를 쓰면서 실제 가장 후회스러웠던 것은,  사랑하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들에게는 '제발 열심히 공부해서 *** 대학에 입학해 주렴' 같은 말은 0.1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왔어.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웠어. 사랑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왔어' 

라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했던 기억, 고마왔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 그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그래서 유서를 쓰고 난 후 돌아온 일상은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유서의 내용을 진심으로 다 이루고 싶어서,  이룰 수 있는 시간,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어서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된다.  


'죽음'을 앞둔 시점이라 생각하니,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들에 대한 주변정리란 결국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의 주변정리는 '남기는 것'이었다.

무엇을 남기게 되겠는가?

원망과 분노일까? 미움과 질투일까?


내 인생에서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집중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유서는 그 길잡이가 되어준다.

지금, 현재의 삶이 너무 힘겹고 아픈 지인을 본다면, 유서를 한 번 써 보라 말해 줄것 같다.

사실은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동행이 가볍다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