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의 나라, 그날이 오면

낡아빠진 손수레

by 소리


미국에서 오래 살아오신 고모가 오랜만에 한국에 나오셨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안내문을 보고 정말 놀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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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대학수능시험일이 있는 날입니다.

수험생들의 마지막 준비와 집중을 위해 각 가정에서는 층간소음해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세탁기, 청소기 등 소음이 큰 전자제품을 사용은 자제해 주시고, 늦은 밤 TV, 라이오 소음 등이 방해되지 않도록 주민분들의 협조를 당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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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애들 시험 본다고 세탁기도 맘대로 못 돌려?? 진짜로 그래??"


"그럼요~ 조심해야죠, 이 동네는 벌써 공기부터 달라져요~ㅋㅋㅋ"


너무나 당연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수능 전달과 당일은 숨 죽은 듯 동네가 조용히 수험생들과 그 긴장의 시간을 함께 한다.


집 바로 앞의 고등학교가 수능 시험을 보는 날이라, 매년 아침부터 시험이 끝나는 시간까지 교문 앞에서 두 손 모으고

서성이는 엄마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모습만 보아도 눈물에 시야가 흐려진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입시 관문을 안다.

대부분이라 함은 입시생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부모, 형제, 친척, 이웃, 선생님들까지 모두가 수험생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으로, 그 하루를 살아보았고, 앞으로 살게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파트 안내문은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오는 14일 하루 수험생들이 불편함 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전국이 잠시 멈춘다"는 정부의 공지에 시민들은 기꺼이 동참할 준비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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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 주변을 지나는 버스와 열차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행하며 버스, 택시 운행 중 경적을 울리지 않도록 했다"


"특히 영어 듣기 평가가 치러지는 오후 1시 5분부터 1시 40분까지 35분 동안은 더욱 철저히 소음 관리가 이뤄진다. 이 시간 전국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전면 통제"


"지하철 오전 집중 배차시간을 기존 오전 7~9시에서 오전 6~10시로 연장하고 지하철을 31회 추가 운행"


"일부 지역 택시업계는 수험생들을 무료 수송을 지원"


"공무원,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 조정"


"노동계로 수험생 지원에 동참, 수능을 고려해 구호나 함성을 뺀 침묵 집회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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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조차 이, 착륙까지 멈추고, 노동조합의 항거 또한 침묵으로 만드는 시험.


첨단과학의 눈부신 성과, AI 시대, 매일매일 천지가 놀랄만한 빛나는 발전을 거듭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대학입시는 어째서 아직도 그 옛날 힘겹게 끌고 다니던 낡아빠진 손수레 같은 느낌인 걸까???


70~80년대에도, 2024년 지금에도 여전히 마음에 돌덩이를 얹어놓고 마는가 말이다.


이름만 비 뀌었을 뿐, 여전히 대학입시는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 듯 절박한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변화된 세상에 변화된 교육의 가치는 없는가?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봐도, 대학입시는 인생의 큰 관문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입학하고 졸업한 대학 타이틀 덕분에 나는 실제보다 과도하게 평가받기도, 사회가 가지는 선입견 덕을 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영광에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10%? 20%?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은 내가 졸업한 대학, 적어도 그 대학의 "이름"과는 큰 상관이 없는 삶이었다.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과 인적네트워크, 생전 처음 꾸려나갔던 독립된 생활 등이 내게 남은 흔적일 뿐.


10대 아이들이 이런 인생의 빅 픽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대학입시가 전부인 양, 그래서 절망하고 포기하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는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이날의 시험이 목숨인 양 절박할 수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인생이 언제나 목표한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알 수 없는 게 인생길임을 아는 어른들은,


어째서 함께 목숨을 거는가?...


불안과 두려움일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내 아이가 겪게 될 이 사회에서의 실패와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좋은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우리 회사, 우리 조직에 유익이 없을 것이란 불안한 마음.


우리 사회가, 부모가 이런 막연한 두려움을, 편견과 선입견을 담대함으로 합리적인 판단으로 이기지 못하는 한,


우주선을 대중교통인 양 이용하는 시대가 될지라도 대학입시는 여전히 우리의 눈과 마음을 묶어두는 어둡고도 질긴 고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도, 그 자녀의 자녀도 대학입학 시험앞에서 자유로와질수 없다.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또 어떤 이름으로 바꾸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까?

어떤 문제 유형을 개발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이렇게 교육의 프레임 안에만 파묻혀서는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교육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회 문제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참고 기사 :수능의 나라, 그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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