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운다는 생각의 오만함

마음 지킴

by 소리

전. 업. 주. 부.

싫었다. 이 말이.

아니, 이 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 새벽 기상을 하고, 책을 읽고,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기 위해 애쓰며 다녔지만 결국은

대부분의 시간은 주방에서 보내고 저녁이면 육체 노동의 피로함에 그냥 쓰러져서 잠들어 버리곤 했다.


낮잠을 자는 일, 텔레비전을 보는 일, 그냥 한번 백화점을 둘러보는 일, 목적이나 계획없이 여행을 떠나는 일조차... 그저 내 시간이 허망하게 '소비'되는 것 같아 싫었다. 소소한 배움을 이어갔지만 마음 속은 늘 초조했다.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성과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 행위를 인정해 줄 대상이 필요했던 걸까?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



슬픈 자기 부정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내 속에 있는 나는 늘 과거형이었던것 같다.

결혼 전까지의 나를 내 중심에 두고, 그 존재만을 인정하며 살았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 시절의 나는..'. 라고 시작되는 상념들이 늘 둥둥 떠다니는 듯 했다.

'이까짓 콩나물 무침 하나 만들지 못하는게 무슨 대수야? 나는 우리 팀의 에이스였는데... '

'내가 만든 자료는 곧 표준이 되었었잖아'

어설프게나마 열심히 나물 반찬을 무쳐 가족들에게 내놓는 나.

연구하고 고심한 내 기획안이 표준이 되어 인정받는 나.

이런 종류의 괴리감은 점점 커져서 나를 괴롭혔다.


각종 양념들을 동원해서 섞고, 무치는 일들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보상과 성과도 주어지지 않는 이 반복의 노동에 내 하루가 침몰되는 느낌뿐.


그러다 새벽녘에 잠을 깨면 괜시리 맑아지는 정신을 마주한다.

그럴때면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않다는 바램은 더욱 커졌지만 그 상태로 나는 또 아침 밥상을 준비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쓰잘데기 없이 맑은 정신같으니.




독배의 잔, 부끄럽고 죄스러운.


그래서 였을까?... 아이를 돌보며 키우는 일이 자연스럽게 내 삶의 성과로 생각된 것이...

콩나물처럼 소비되어 사라져버리지 않는, 누가봐도 성과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일.

'나는 교육 전문가야. 그것이 내 업이었고, 학교현장도 잘 알잖아'

그러니 열심히, 보통과 같지 않게 내 아이를 키우리라.


이런 다짐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의 각오처럼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듯 했다.

오만한 욕심과 독이될까 조금의 의심도 못한 채...


J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방의 벽면은 늘 새로운 그림 카드와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 연령에 인지해야할 개념들, 책과 노래, 그림 등 내가 만든 교육과정을 매일매일 운영하며 J에게 다가갔다. J는 영특했고 그 영특함에 나는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도 나름 유치원의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필요한 것들을 보충해 주며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살펴나갔다. 초등학교 때는 나름 거창한 로드맵도 세워보았다.


늘 반짝이던 아이였던 J는 초등 4학년 무렵 말이 없어지는가 싶더니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시기를 겪었다. 어디 재미있는 일 없나 찾는 낙으로 사는구나 싶던 아이였는데, 이 시기 만큼은 다른 아이가 된 듯 낯설기만 했다. 그의 입술은 종종 갈라지고 상처가 나 있곤 했다.

아... 뭔가 안 좋은 일이 J에게 일어나고 있구나.

불안, 우울, 무기력... 남의 이야기로만 듣던 이런 단어들이 내 속을 떠다녔다.


'나는 교육 전문가야.' 라던 생각이 도끼에 찍힌듯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내가 키우리라“ 이 생각은 나의 죄악이었다. 독배의 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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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야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4학년때 다니던 ** 수학학원 정말 싫었어.

수업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는데, 남아서 문제풀고, 선생님한테 검사받고 그러는 시간이 진짜 싫어서 집에 가고 싶더라구"


"엄마, 5학년 때부터 영어말고는 학원 다 끊고, 맨날 축구만 했잖아..

그 때가 진짜 진짜 좋았어. 제일 좋았던 때가 그 때야!! 그거 없었으면 정말 사는게 재미없었을 거 같아"


그래, 그 때를 분명히 기억한다.

유명한 대치동의 수학 학원에, 그것도 탑 반에 입학한 J가 나름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던 나는 수학학원을 끊고 운동장에서 매일 축구를 하며 뛰어노는 아들을 아픈 마음으로 바로보곤 했다.


생각해 보니 수학학원을 거부한 것은 J가 학습 관련 일에서 스스로 No라고 말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J의 불안 증세가 불안했던 나는 솔직히 어쩔 수 없는 아쉬운 마음으로 그 아이의 결정에 Yes로 응해주었지만, J는 지금껏 보았던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생기 가득한 얼굴로 운동장을 가르며 맘껏 뛰던 모습이 생생하다.

'저 얼굴이 진짜로 빛나는 얼굴이구나...'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가 자라는 것이었구나.


엄마곁에서 반짝이듯 보이던 그 작은 몸과 마음이 과연 행복했을까?

영어유치원은 정말 그에게 재미있는 공간이었을까?

사고력 수학 학원은 정말 가고 싶었을까?

응, 재미있어. 라는 대답에 왜 더 이상 대화를 멈추어 버렸을까?

그저 엄마가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 것으로 안심하고 지나쳤을 뿐, 혹시나 힘든 점은 없는지 혹시나 다른 걸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속마음 대화를 좀 더 나눠보려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의 시간들이 영상 보듯 흘러갔다.


돌이켜 보는 지금 그래도 아들이 영재교에 입학했으니 나는 가슴뿌듯한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진심을 다해 나는 부끄럽고 죄스럽다.


J가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내고 그것을 몸으로 드러내고 나서야 나는 나의 잘못을 보게 되었으니...

아이는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커가야 하는 존재임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 오만함이 부끄럽다. 어린 나이에 불안과 우울과, 무기력의 시기를 겪게 했던 엄마임이 죄스럽다.




마음 지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할 때는 다툼과 갈등의 순간만은 아니었다.

평온하고, 기쁘고, 즐거워 보이는 때에도 보이는 것이 전부인냥 넘어갈 것이 아니라, 진심 그러한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할 수 있다면 매 순간 아이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부모의, 엄마의 제일 과제이다.


내가 J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다면, 나는 그저 사랑만 하는 바보 엄마가 되고 싶다.

앞장서 진두지휘하는 똑똑한 엄마이고 싶지 않다.

'키운다' 생각지 않고 '마음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옆에서 동행하듯 살아갈 것 같다.


즐거운 마음이 있다면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슬픈 마음이 있다면 내어 놓고 슬퍼할 수 있게,

좌절하고 실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우울한 마음이 있다면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이겨내고 용기낼 수 있게,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평안을 회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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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된 J는 쉽게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100번을 물으면 한번 대답하는 것으로 그 마음을 짐작해야 하는 정도다.


어린 시절부터의 무의식-아마도 '어짜피 엄마는 나랑 상관없이 결론 냈겠지' 생각해 버리기 때문일까?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나의 생각으로 이미 결론을 내린채, 아이에게는 통보하는 엄마였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Yes라 응하는 아이의 대답이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불안한 마음일 수 있음을 보지 못했다.


사춘기인 J, 기숙학교 생활, 도통 알 수 없는 그의 복잡한 교과서와 연구 과제...

노트북과 탭, 핸드폰 속에 꼭꼭 숨겨져있는 아들의 생활과 생각들...

이것들은 한꺼번에 아우성친다.

너무 늦었으니 할 수 없다, 이제와서 J의 마음에 간섭한다 한들 무슨 변화가 있겠나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라도 아들의 마음을 지켜주는 엄마 역할에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내 품을 떠나기 전까지 하루가 남았어도, 나는 좋은 엄마이기를 노력해 보고 싶다.


작은 감정일지라도 존중해 주는 엄마로,

경쟁과 평가로 지칠 때에 쉼을 주는 엄마로,

홀로 가는 그 길이 고단할 때에 그래도 고개돌려 찾는 엄마로 말이다.






<선배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믿는다'라는 말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자식을 믿어야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고, 저도 아들 앞에서 자주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J가 알아서 잘 할 거라 믿어"


그런데 저는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척'해 왔던 것같습니다.

머리로 생각은 되는데, 마음으로 그렇게 되질 않았으니까요.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불안했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려 했고, 결과에 대해서 책망하곤 했습니다.


진심으로 믿어 주었다면, 분명 아들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을 것 입니다.

그랬다면 아이가 느끼는 불안이나 엄마에 대한 불신도 싹을 틔우지 못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믿어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아들', '내 자식'이라는 것에서 부터 오는 집착을 버리고,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독립된 '인격'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네, 쉽지 않은 일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 무렵까지 아예 이런 노력조차도 해 보지 못하고, 많은 결정과 책임을 엄마의 몫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누군가 아이를 믿기 위해서 오히려 거리두기를 하라고...

더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해 주었다면,

노력은 해 보았을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 노력의 과정에서

아이에게 어느정도의 제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엄마가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지, 믿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전적으로 성공하진 못한다 해도

진심으로 믿는 마음은 아이에게 분명 전달될 것이고,

그 노력의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신뢰가 쌓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신뢰가 아이에게 심리적인 평안함과 자신감을 주고,

그 힘으로 아이는 진정한 자기주도적인 학습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자기주도적인 힘이 영재교의 적응과 성장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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