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기대감은 늘 좋다.
설렘, 충만함, 팽팽한 긴장감, 벅찬 짜릿함이 타고 오르는 기분이란.
그때마다 동시에 솟구쳐 오르는 욕망은 "단숨에"이다.
당장 시작해서 큰 한걸음을 내딛고, 성큼성큼 걸어가 단숨에 그 목표에 닿고 싶은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단숨에 그곳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단숨에, 라는 것은 나를 속이는 나쁜 욕망이라는 것을.
그 느낌은 '과정'을 깡그리 생략해 버리는 방법으로 나를 속인다.
목표에 닿기 위한 숱한 시행착오와 실망감, 자괴감, 낙망과 책망 같은...
그 길에 놓여 있는 어려움에 대한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단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실패라 불렀던 코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을 다시 한번 일꺠워 준 책이 있다.
<A Single Shard>
우리나라에서는 <사금파리 한 조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 책이다.
한국계 미국인 린다 수 박(Linda Sue Park)이 쓴 소설인데, 뉴베리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책을 함성연구소 영어원서 읽기 모임(NTB)에서 함께 읽었다.
주인공 목이는 고아의 신분이지만, 고려 최고의 도자기 도공으로 알려진 민영감과의 만남을 계기로 도공으로서의 꿈을 키우는 소년이다.
민영감이 만든 상감청자를 송도에 있는 왕실 담당자에게 건네기 위해 목이는 혼자 몸으로 줄포라는 전라도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북쪽 송도까지의 먼 길을 가게 된다.
태어나 처음 그렇게 먼 길을 떠나는 목이에게 그를 돌보던 두루미 아저씨(Crane-man)는 말한다.
"송도는 멀지 않다. 목이야, 다음 옆 마을까지 거리일 뿐이야, 너의 걸음으로는 하루거리야"
"No, my friend, "
"It is only as far as the next village.
A day's walk, on your young legs."
줄포에서 송도까지 그 먼 길을 어째서 다음 마을까지 거리 밖에 안된다고 말한 걸까?
지름길이라도 있는 걸까?
"너의 마음은 송도까지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너의 몸에게는 그것을 말해선 안 돼.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에 하루.
이런 방법으로 한 번에 하나만을 생각하며 가야 돼.
그러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마음이 지치는 일은 없을 거야.
하루에 마을 하나씩.
이것이 송도까지 가는 방법이란다"
"Your mind knows that you are going to Songo.
But you must not tell your body.
It must think one hill, one valley, one day at a time.
In that way, your spirit will not grow weary
before you have even begun to way.
One hill, One village.
That is how you will go, my friend."
'지름길'이란 일상에서도 쉽게 만나는 얄팍한 유혹이다.
One hill, One village, one day at a time.
지름길도, 교통수단도, 다른 방법도 아니고 송도까지 가는 방법이란, 하루에 언덕 한 개, 고을 한 개씩을 꼬박꼬박 걸어 당도하는 것이다.
"단숨에"란 마음이 치솟을 때면, 몸은 덩달아 얼마나 들썩이며 요동치는가?
그때마다 두루미 아저씨가 건넨 지혜의 말을 기억한다.
"마음은 알고 있지만, 몸이 알게 해선 안 돼."
Your mind knows that you are going to Songo.
But you must not tell your body.
마음을 쫓아 단숨에 달렸다가 중간도 못 가서 지치고 포기해 버리는 몸을 기억한다.
새해가 주는 시작의 흥분에 힘입어 쉽사리 내달리지는 말 일이다.
대신 오늘 하루, 내일 하루, 그다음 날의 하루씩을 어김없이 잘 살아내는 것이다.
단숨에, 라는 욕망을 서늘하게 바라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