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당신,
"지금 뭐 해?"
"책 읽고 있었는데?"
"뭐? 혼자 있는 그 귀한 시간에 책을 읽는다구? 너 참 재미없게 산다"
학창 시절부터 늘 거침없던 친구.
같은 반이 된 지 이틀 만에 내 자리로 와서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라며 나를 당황시켰던 그녀의 말투도 참 여전하다.
혼자 있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 뭐 그리 핀잔들을 일인가...
"너는 혼자 있으면 뭐 하는데?"
나는 진심 궁금했다.
"얼마나 황금 같은 시간이니? 애들도 없고, 남편도 없고~ 먹을 거 잔뜩 챙겨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배달 음식 양껏 시켜서 편하게 먹거나, 쇼핑을 하거나... 너무너무 많지~~"
"아하~ 나는 또 대단한 거 있는 줄 알았네?? ㅎㅎ"
책을 읽는 것이 넷플릭스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것보다 유익하고 좋은 것이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와 나라는 사람의 '다름'을 확인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고등학교 사회선생님이 하신 말씀 때문이다.
부장 선생님으로 언제나 바쁘셨던 사회 선생님은 종종 우리에게 자습을 시켜 놓고 교무실을 다녀오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해야 할 자습량을 강조하시며 마지막은 이런 말을 던지고 홀연히 나가시곤 했다.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아~~~ 무슨 말인지 알지?"
선생님이 안 보인다 해서 딴 짓거리 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씀이셨겠지만,
5분도 안 돼서 우리는 웅성웅성, 까르르~~ 투닥투닥 뭔가가 떨어지고 줍는 소리 등으로 교실은 소란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실은 나는 이 말이 조금은 두려웠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 것 같은, 그러나 실망하고 싶지 않은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이 말을 아예 마음속에 품고 살게 되었다.
누군가가 혼자 있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편함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더 컸다.
그래서 이른 새벽, 자동차 한 대도 다니지 않는 건널목이지만 초록색 신호등이 켜질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게 된다. 한 번은 너무 춥고 늦어서 재빨리 건너가 본 적도 있지만, 영 마음이 불편했다.
공원 한쪽 쓰레기 더미를 보면, 주머니 속에서 걸리적거리는 휴지조각들을 던져 놓고 싶지만,
(그 많은 쓰레기 더미 위해 내 휴지조각 몇 개 얹힌들...) 쓰레기 버리는 장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는가?
새삼 나를 좀 지켜보고 싶어졌다.
어떤 날은 낮잠을 자고 싶기도, 아무 생각 없이 sns에 빠져보고 싶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바람이 더 크니 그쪽으로 몸이 움직인다.
책을 읽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중간에 엄마, 아내를 부르는 외침도 없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들과 남편은 못 먹게 하면서 나만 먹는 간식을 꺼내 마음 놓고 먹는다.
혼자 몰래 먹는 것 마냥 세상 맛있다.
파이노를 친다.
사실 누가 들을까 창피해서 혼자 연습 중이다.
가족들이 들으면 괴로워할 것이 뻔하므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수이다.
나중에 갑자기 공개해서 "엄마가 피아노도 이렇게 칠 줄 일아?" 라며 놀라는 가족들을 볼 생각에 마음도 설렌다.
가족사진을 본다.
지금의 가족이 아니라, 아빠, 엄마, 동생, 할머니가 등장하는 가족 사진.
아빠와 엄마의 앳되고 젊은 청춘이 빛나는, 빛바랜 옛날 사진을.
나의 결혼식장, 그땐 미쳐 보지 못했던 아빠의 슬픈 얼굴.
혼자 있을 때 보아야 마음껏 울 수 있다.
때로는 기도를 한다.
가족들에게 조차도 기도하는 모습이 민망스럽기도 해서 마음속으로 재빨리 끝내고 마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나는 천천히 기도한다. 그냥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옆에 계신 듯 그렇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꾹꾹 참고 참았던 상처가 사실은 아프다고 울어 본다.
내 울음소리는 이렇게 생겼구나. 나는 내 울음이 참 슬프다고 생각한다. 그 소리가 나를 다시 위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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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이런 사람이구나... 새삼스레 나를 바라본다.
혼자 있을 때도 행복하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어떤 외부 변인도 없이 오롯이 나만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간에도 행복하다면,
그 행복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확실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행복 아이템을 좀 더 쟁여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