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아내의 실수
"오~~ 신박해, 신박해!!"
어떤 알고리즘인지 남편은 유튜브에서 배웠다며
'기름 없이 스테이크 굽기'를 해 보겠다 한다.
스테이크라 하면, "지글지글 버터 듬뿍 올려 뜨거운 펜에 태우듯 굽는다"가 정석 아닌가?
그런데 기름 한 방물 없이, 시즈닝도 전혀 없이 두꺼운 고기를 굽겠다니!
나는 신박하기는커녕, 비싼 고기 태워 먹을 일, 눌어붙은 프라이팬 닦아낼 일만 신경 쓰일 뿐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요리에 도전해 보려는 남편의 의욕을 차마 꺾을 수 없어 잠잠히 지켜보기로 했다.
의외로 요리 집게, 장갑, 타이머까지 갖춰놓는 치밀함.
우와...반전~!!
남편 말이 맞았다.
중불 상태에서 기름, 소금, 후추 같은 기본도 없이 고기만 덜렁 올려놓고 앞, 뒤 2분씩,
약불 상태에서 또 각각 2분씩,
마지막 강불로 올려 겉면만 살짝 태우듯 구우면 끝.
뭐야? 요리랄 것도 없는데?
그런데 미디엄레어 상태의 기가 막히게 잘 구워진 스테이크가 완성되었다.
버터에 시즈닝조차 없으니 좋은 고기의 육즙과 향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남편은 이를 계기로 아주 용기백배해서 이제 주 2-3일은 직접 요리를 해 보겠다고 의기양양하다.
"그럼 나는 좋지~~ 그럼 요리의 기본을 알려줄게"
나는 방긋 웃으며 진정한 요리에 대해 단단히 일러 주었다.
우선 마늘, 양파, 파가 거의 모든 요리의 기본이야.
마트에서 사 와서 모두 다듬어 놔야 해,
다듬는 건 그냥 칼로 썰어만 놓는 게 아니야.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깨끗이 씻고, 시든 부분들을 모두 정리한 후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야채통에 담아 놓는 거지.
나물도 좋아하잖아... 각종 나물 주르륵 놓인 밥상.
먹고싶은 각종 나물도 사 와. 나물들도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깨끗이 씻어야 해.
씻어도 흙이나 불순물이 나올 수 있으니까 여러 번.
그리고 소름물에 살짝 데쳐.
데친 다음 적당하게 물기를 짜 주는 것이 필요해. 꼭 적당히!
그리고 양념을 만들어.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고, 마지막에 깨소금 솔솔.
4-5가지 나물 반찬을 준비하려면, 이런 걸 4-5번 반복하기만 하면 돼.
찌개나 국이 없으면 밥을 잘 못 먹잖아... 그것도 만들어야겠지?
된장찌개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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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양양하던 남편은 점점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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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나면, 그릇들을 모두 싱크대로 가져와서
이제 설거지를 하면 돼.
식기 세척기에 넣을 때 무조건 넣으면 곤란해.
양념이나 기름기가 많은 건 먼저 닦아서 넣는 것이 좋아.
세척기에 넣으면 안 되는 그릇들은 따로 씻어야 되고.
끝이냐고?
무슨 소리??
이제 싱크대와 주방을 정리해야지.
음식 만들면서 지저분해진 주방 상판이랑 싱크대볼을 모두 깨끗하게 닦아놔야지.
음식물도 깨끗하게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주방 바닥까지 깨끗하게 닦아내기.
여기까지 하면, '기본적인' 한 끼의 요리가 끝나는 거야...
요리를 한다,함은 이런 걸 몽땅 포함하는 거라구.
그렇다.
요리란 꽤 긴 과정인 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보는 것처럼 용도에 딱 맞게 다 갖추어진 재료들을 가지고
불 앞에서 프라이팬을 돌리는 그 짧은 과정은 전체의 20-30%인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남편이 생각하는 요리는 이것이 전부인 것 같다.
이 화려해 보이는 요리 장면의 앞과 뒤에는 길고도 지루한 준비 과정이, 또 마무리 과정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남편이 요리를 해 주는 것보다 이런 과정을 알아주길 바랬다.
눈에 보이는 것이ㅈ화려할수록 그 뒤에는 길고도 긴, 힘겨운 과정이 있는 것이다.
요리에만 해당할까?
우리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결과와 보이지 않는 과정 간의 싸움.
화려한 결과만이 아니라, 길고도 지루한 과정을 각오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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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 주 2-3회 요리해 보겠다는 거지?"
말해 놓고 보니 내가 너무 진실을 알려줬나 후회도 든다.
너무 친절한 아내일 필요는 없었는데...
남편은 그냥 웃지요...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는 과연 '요리'를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