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의 타이밍
J는 외. 아들이다.
외아들 : 다른 자식이 없이 단 하나뿐인 아들(네이버 국어사전)
국어사전의 뜻풀이가 이렇게 가슴 짠한 단어가 또 있었던가...
지금도 이 글자 하나하나를 짚어내는 마음이 무거운데, 3대 독자 시아버님의 장손이 될 J를 낳은 후
나의 마음은 바위덩어리 안고 있는 듯 묵직하기만 했다.
J가 처음 눈을 뜬 순간은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 치는 순간이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모유와 이유식을 먹이며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면서 이 작은 생명체는 내 삶을 송두리째 지배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J와의 함께 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 시절 나는 누구를 사랑한 걸까?
J에게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부족한 모유를 고통스럽게 생산해 내며, 기어이 마음먹은 기한까지 모유를 먹였다. 더 이상 생산해 내지 못하는 내 몸이 원망스러웠지만, 대신 최고의 이유식을 제공하리라.
J에게 영어책을 잘 읽어주고 싶어 공부를 하면서 급기야 TESOL 자격증까지 땄다.
J의 성향에 적합한 최고의 유치원을 찾아다녔고, 6살 아기 J는 소위 입학테스트를 치르며 엄마가 고르고 고른 유치원에 무사히 입학했다.
유명 사립초등학교 추첨에서 똑! 떨어지던 날, 나는 나 자신을 원망했더랬다.
학부모 위원을 맡으며 학교에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실은 J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래서는 백조의 발과 같이 치열했던 내 노력 뒤에, J는 빠르고 영특하게 자랐다.
그 눈빛과 행동에 얼마나 기뻐하며 작은 뺨에 얼굴을 비비고 사랑을 표현했는지...
그러나 이 환하고 밝은 세상은 딱 초등학교 졸업까지.
"공부 잘하고 모범생한테는 사춘기도 안 와~"
어느 학부모의 말을 웃어넘기며 들었건만, 어느새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였는지, 자기애와 독립의 시기였는지
J는 더 이상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표현도 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달려가는 선행학원도 가지 않았고
각종 경시대회, 올림피아드 등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
지금껏 이 시기에 더욱 빛나 주길 기대하며 지금껏 내 모든 것을 던져 키웠건만 이건 아니지.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 불안감이 출렁대기 시작했다.
최선이라는 착각
J는 학원에서 해야 하는 과제 이 외로 자발적인 공부는 절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테스트 성적도 들쭉날쭉했다. 좋아하는 내용은 좋은 성적이었지만, 관심 없거나 어려워하는 내용에서는 걱정스러운 성적이었다.
영특한 아이가 왜 노력하지 않을까?
어렵고 부족한 부분을 알고 있는데, 왜 혼자서 고민하며 공부해 보지 않을까?
친구 **는 새벽까지 혼자서 문제집 다 풀고 매일 학원 자율학습까지 다 마치고 집에 온다는데, 학원 수업 마치고 딱 집에 오는 J.
J는 아직 어리니까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내가 공부 습관을 잡아줘야 해.
특히나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교 입학할 즈음의 시기,
나는 J보다 앞장서는 것이 당연한 듯 그를 이끌었던 것 같다.
중고등 치열했던 입시경쟁에서 누구라도 칭찬할 만한 성과를 거둔 나다.
그 시절의 아픔과 절망을 J가 겪지 않도록 미리 예방주사를 맞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은 J에 대한 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J가 상처받지 않도록, 성적 따위에 J가 휘둘리지 않도록.
나의 조급함이 잔소리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 단원은 직접 학원 교재와 문제집을 보면서 가르치고 확인했고, 테스트 결과를 기다렸다가 다그치기도 했고, 쉬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체 없이 공부시간을 상기시키고 책상 앞에 앉는 꼴을 보아야 했다.
나는 이런 나의 노력이 아이가 영재교를 입학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오히려 이 시절 아이를 가만히 지켜봐 주었더라면, 아들은 느리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움직였으리라 분명히 확신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그저 순수하기 때문에 여러 환경적인 제한이나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 없이 진심으로 끌림에 의해서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이 아이의 잠재력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 것.
영재학교에서 최고의 경쟁력은 바로 이것이었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없다면 영재학교는 아이에게도 최고의 교육환경이 되질 못한다.
모범생에게는 사춘기도 없어라는 말과는 달리 J는 그 시기 남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점점 말과 감정을 아끼는 아들로 자랐다.
또다시 그날로 되돌아 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나와 J를 지켜본다.
나의 책망도 잔소리에 큰 소리로 대들기까지 하며 문을 쾅 닫고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던 날.
'아이가 처음으로 방문을 잠근 날', 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과 배신감에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아들의 외침은 단 하나였다.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고”
나는 같은 말로 맞받아친다.
“뭘 알아서 하니? 지난번 테스트 성적이 알아서 한 결과니?”
“책상 앞에 2시간 앉아 있는다고 해서 2시간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야. 2시간 동안 실제로 네가 공부해 집중한 시간을 생각해 봐.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야.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건 도둑과 같은 마음이야.”
나는 이 장면 속 특히 나를 바라본다.
J를 사랑하므로 상처받지 않는 길로 가게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그러나 이제야 보이는 것은 꽁꽁 숨겨진 나의 ‘불안’과 ‘두려움’이었음을.
그렇다. J를 사랑한다 믿었던, 그래서 분노하고 책망하며 그를 붙잡으려 했던 나의 마음은
내 불안과 두려움이었지 J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속의 불안과 두려움이 J의 목줄이 되어 그를 내 마음대로 이끌고자 했을 뿐.
그 실상을 깨닫는 순간 나는 절망했다.
J의 목에 목줄을 걸고 있는 엄마.
나는 우아한 백조의 몸짓 아래 숨겨져 있던, 치열하게 열심이었던 두 발보다 더 진실에 가까왔던
내 진짜 모습을 보았다.
앞으로 두 편 정도의 글이 연결되어 이어질 예정입니다.
약속드린 일요일에 진심을 담아 발행하겠습니다.
<선배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영재교 친구들을 보니 대부분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고, 열심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입학 전 준비기간에도 이렇게 공부했을 것이고, 어쩌면 더 치열하게 열심히 노력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와 같은 스타일을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전형적인 열심 스타일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열심히"로 공부하는 친구들이죠.
영재교에서 공부한다 하여 각자의 학습스타일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성향이 쌓여 형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과오는 그런 점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남들 같은 "전형적인 열심"을 강요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버린 것이죠.
다행히 늦게 라도 깨달은 바가 있어 아들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존중하고 믿어주게 된 덕분에
내적인 힘의 중요성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영재성이나 열정, 몰입감은 외부의 강요나 훈련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자극은 줄 수 있겠지만, 결국은 아이 스스로가 내적인 성장을 이룰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시 초등학교, 중등 저학년의 시기로 돌아간다면,
저는 바보 엄마가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정보와 최선의 것들을 선별해서 아이에게 딱 맞게 제공하면서 진두지휘하는 엄마가 아니라,
그저 아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최선을 다해서 지켜보는 엄마로 말이죠.
아이의 학습 스타일을 믿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심으로 다해 응원해 주면서요.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로 인해 작은 가슴이 꿈틀대고, 그래서 그것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단, 외부의 강요나 인위적인 경계선이 없다면 말입니다.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학습 스타일, 태도 등을 아이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우리 아이는 어떤 스타일로 공부할 때, 열심을 발휘하는가를 잘 관찰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성향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아이는 불안해하지 않고 열정과 몰입의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런 열정과 몰입이 아이의 내부에 있는 영재성을 깨우게 됩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부모나 외부 누군가가 그들이 생각하는 최선, 최고의 것을 강요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를 찾지 못하고, 강요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면서 점점 빛을 잃어 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