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과학은 우리 아들이 최고지"

언제나 고래가 춤추는건 아니다

by 소리


진심어린 칭찬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최고이기를 바라는 내 이기심의 포장이었을까?


많은 과목 가운데서도 유독 수학, 과학쪽의 성취결과에 대해서는 언제나 넘치는 칭찬과 표현을 쏟아주었던것 같다.

가르기, 모으기 개념을 익히고 나름의 이상한 방식으로 덧셈, 뺄셈을 해 내는 아이,

뭘 알고나 말하나 싶은데도 '과학, 과학~~ 과학이 좋아'를 외치는 꼬맹이가 신통방통하면서도

혹시나 내 아들이 진짜 과학고를 가고 올림피아드 대회에도 나가고 막 그런 아이가 되려나?

하는 꿈같은 허상도 솔직히 했었던것 같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해 주라는 육아 전문가들, 책에서도 수없이 읽었던 수많은 올바른 칭찬법들이

내 아이앞에서 놓쳐버린 풍선처럼 멀리 날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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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라는 칭찬의 함정


아들의 꿈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 전 '꿈'이라는 질문을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던 유치원 시절까지 합친다면 10년동안 변하지 않았다.


"저는 과학자가 될 거예요"


축구가 너무 좋았던 초등학교때는 "축구 잘하는 과학자"

가장 친했던 친구의 꿈이 경찰이었을 때는 "무기를 연구하는 과학 경찰관"


나름 작은 머리와 가슴으로 과학자가 아닌 다른 꿈과의 적절한 타협점을 고민한 흔적들이

이런 표현들에서 보였다.

당시 나는 내 아들은 꿈이 '확실'한 아이, 그래서 목표나 진로가 분명한,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는 생각에

이것을 보다 칭찬하고 강화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것 같다.


그래서 다른 과목들보다 유독 수학, 과학 쪽에서 이룬 아이의 성취도에는 칭찬을 쏟아 부었던 반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적당한 칭찬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수학, 과학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와도 나는 당연한 것에 대한 교만한 칭찬을 헀다.

"수학은 J한테 전략과목이니까!"

"과학은 J이가 최고니까!!"


"와아~ 그렇게 열심히 하니깐 좋은 결과도 받고, 엄마도 너무 기쁘다"

"다 못할 것 같아서 힘들게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하고 나니까 정말 보람이 있구나!! 이번에 너가 노력하는 모습 보고 엄마도 많이 배운다"


설사 진심이 아이었다해도 이런 칭찬을 해 주었더라면,

아들은 자신이 잘 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완벽주의,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충만하게 그 과정을 즐기면서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후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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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라는 칭찬의 함정


그러던 어느날 아들은 중간고사 수학 과목에서 3개를 틀렸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신발도 벗지 않는채 서 있었다.


"왜 안 들어와"


"......"


"수학에서 3개나 틀렸어요"


"....."


"무슨 일이야???"


나는 얼른 들어오라는 말도 않은 채, 현관앞에 서 있는 아이를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교무실가서 확인해 보니까 OMR 카드에 색칠을 안 했어요"


"뭐? 아니,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이?? 말이 되니???"


"....."


나는 후회한다. 바로 이 순간을...

아이를 현관 문 앞에 세워두고 무슨 짓이냐 말이다.


이 순간 "그래, 그럴 수도 있는거야. 일단 들어와... 가방도 무겁겠다..."라며 말해 주지 못했을까?

그 무거웠던 책가방을 얼른 들어주지 못했을까?


시험날이면 보통 때보다 더 많은 책과 문제집을 가방 가득 넣어 가던 아들.

그 속에 그의 불안한 마음도 함께 꾸역꾸역 넣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면서...


한 눈에 보아도 돌덩이가 든 듯 무거운 책가방, 한 손에는 신발 주머니를 늘어뜨린채

구부정한 어깨를 더 움츠리며 서 있는 아들,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질듯한 흔들리던 눈빛도,

상기된 얼굴도 다 보였는데, 나는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는 엄마였나 말이다.


수학 점수를 알고, 집으로 걸어오는 아들의 마음이, 어깨나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 마음을 헤아릴 만큼 사려깊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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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실수해도...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작은 화실에 몇 안 되는 수강생 가운데, 나는 조금, 아주 조금

선생님의 스케치를 잘 '흉내내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우리 화실 선생님, "와아~~ 너무 잘 하셨는데요" 맨날 칭찬 일색이다.

그런 칭찬에 익숙해진 다른 수강생분들이 언젠가부터 나를 향해

"오늘 스케치하신 것 이번 주만 빌려 주실래요? 우리반에서 제일 잘 하시니까..."

"아, 이 분이 우리반 에이스예요, 최고 우등생"

"이 분 그림보고 따라하시면 되요"


서로 서로, 혹은 새로 등록하신 수강생 분께도 나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나는 처음에는 내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인정받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도 좋았지만,

점점 이 "최고"라는 표현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고 노력하는 과정에 집중하기 보다는

남들이 내 그림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그림 자체를 즐길 수가 없었다.


"최고"라는 칭찬은 이런 것이다.

내 스스로가 하는 "최고"가 아니라,

남들에게 자꾸만 들려오는 "최고"라는 칭찬은 또 하나의 강요에 가까왔다.


나는 이걸 느끼는 순간, 가장 먼저 아들이 생각났다.

고작 3개 문제를 틀리고도 현관 문 앞에서 차마 집 안으로 들어오질 못하던 내 아들이...

키우는 내내 "수학, 과학은 우리 아들이 최고지!"라며 쏟아부었던 칭찬이...


영재교에는 아들 학년에 그런 아이들만 자그마치 100명 넘게 모여있다.

그 곳에서도 아들은 여전히 "최고"일까?

아마도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일 년 동안 그런 칭찬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아이에게 자신에 대한 좌절과 실망의 독이 되지는 않았을까?

공부해 보니, 과학이 적성에 맞지 않은걸 알았지만,

그동안 들었던 무수한 칭찬과 기대가 그걸 포기할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다시 아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최고"라는 말을 무척이나 아끼고 아끼며 사용할 것 같다.


오히려 '최고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너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해' 라는 그런 메세지를 지속적으로 건네 주는 엄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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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아이가 잘 하는 것을 칭찬해 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금지와 훈육의 언어 만큼이나 칭찬의 언어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나는 최고,라는 자긍심을 갖고 자신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부모나 주변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 완벽주의로 변하여

아이의 내면에 긴장감과 불안을 키우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는 과정, 실수를 한 후에 극복해 가는 과정에 "돋보기를 대고 보듯"

더 세심하고, 집중적으로 보아 주세요.

집중적으로 보아야 칭찬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보지 않은 것,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짓으로라도 칭찬의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대부분 아이가 노력하는 과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온 결과만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저는 아들에 관해 돌이켜보는 기억 속에 이 시 구절을

참 많이 떠올립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아이의 마음에 자신감을 채워주지만,

무조건적인 "최고" 일색의 칭찬은 아이의 마음을 굳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노력하는 과정을 더 크게 보아 주시고, 칭찬해 주셔요.

부모의 그런 메세지가 아이에게 실패의 두려움을 이기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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