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역할 말고
나는 자기 계발 도서를 읽지 않았다.
책과 서점, 도서관은 내 몸과 영혼의 쉼 터와도 같았지만,
유독 편식을 가진 분야가 자기 계발 코너의 책들이었다.
자기 계발이란 저자의 발전 스토리일 텐데, ‘나’는 ‘그(혹은 그녀)’와는 다르잖아? 비슷한 상황이라 해도 그 방식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잖아? 이런 류의 책들은 결국 다 뻔한 결론 아닌가?
열정을 가져라,
간절하면은 통한다,
목표를 명확히 해라,
시간은 돈이다...
혹은 할 4시간 일하고 월 천 버는 방법,
책으로 10억 벌기?
그들만의 특별한 리그인 듯 그저 평범한 전업주부가 되어 버린 내 일상에서는 더욱 관련 없이 보였다.
본격적인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그렇게 나이를 들어가자 이런 생각은 더 심해졌던 것 같다.
나와는 동떨어진, 한참 자기 계발이 필요한 젊은 나이의 친구들에게나 필요한 분야인 걸로.
그럼에도 서점마다 떠들썩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아예 외면하지는 못했다.
호기심에 도서관에서 대출을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도 했다. 어느 정도 공감은 되었지만, 그들처럼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은커녕 내 일상의 작은 변화도 없었다.
자기 계발서의 유용성
그러던 내가 자기 계발 도서를 읽게 된 계기는 무연히 독서 모임을 통한 습관 만들기에 관한 책을 통해서였다.
습관 만들기는 개인의 의지, 노력 등 마음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것은 내 편견이었고, 다른 여러 접근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자기 계발서가 내 일상을 건드리는 자극이 되었다.
아들을 보며 답답해하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노래 부르듯 매일, 몇 달을 부르짖었건만 전혀 습관화되지 않는 태도에 가슴이 답답하고
때로는 울분이 치밀기도 했었다.
왜 저렇게 의지가 부족할까?
하루에 몇 번씩, 몇 개월을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해 주는데, 이 쯤되면 자동으로 장착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냐? 당최 노력이라는 걸 해보기는 할까? 답답해하며 아이를 다그치던 모습들이 부끄러웠다.
자기 계발서의 내용을 내가 직접 실천해 보니 더욱 그러했다.
내 스스로 나쁜 습관을 고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 보는 과정에서 인간의 의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도 실감했다.
인간의 의지는 위대하긴 하지만, 무조건 하면 된다! 는 마음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순간적인 역량을 끌어올릴 힘은 있지만 계속해서 장기간에 뭔가를 만들기에는 생각보다 참 약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 아들도 마음의 각오를 하고 의지를 발휘해 보기도 했었겠구나. 노력도 해 보았겠구나.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습관화하기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었겠구나.
조금씩이지만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었을 텐데 그걸 보지 못하고 책망하기만 했구나.
다그치는 내 소리 때문에 힘들고, 혹시나 엄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할 수도 있었겠구나...
나는 또 한 발 늦게 아들의 마음을 바라본다...
잔소리보다 큰 실행력
‘자기 계발 책을 더 읽어 봐야겠다’. 그때부터 나는 꼬리잡기 독서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여러 분야의 자기 계발 도서를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분야에서의 내 편견이 깨어지고
주변 문제를 좀 더 객관적,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또 내 삶에 대한 목표와 태도를 다시 다잡는 과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책은 나무를 쪼개는 ‘도끼’와 같이 내 생각과 자의식에 균열을 내고 있다.
아, 이런 변화를 아이도 느낄 수가 있다면...
잔소리만 내뱉는 엄마가 아니라,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실천하고, 변화된 태도를 보여주는 엄마의 일상이 아들에게는 더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되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넌 꿈이 뭐니? 꿈을 정해야 노력하지,라고 말하지 말고 끌어당김의 법칙을, One thing을, 웰 씽킹, 몰입의 방법을 말해 주었다면,
좌절과 열등감을 부정적인 감정이니 무조건 극복하라고만 말하지 말고, 그것이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반전의 시각을 알게 해 주었다면,
꿈을 위해 노력하라 말만 하지 말고, 보물지도나 비전보드를 함께 만들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엄마의 역할이 아닌 나의 성장
이들에 대한 잔소리와 분노는 실은 나의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내면의 부정적 자아를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주말 오후 백화점 옥상 정원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와중 어떤 엄마의 큰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2살이나 되었는데, 똑바로 앉지도 못하면 어떡하니?”
돌아보니 정말로 젊은 어머님이 2살 남짓한 아이를 보며 잔뜩 심각한 표정을 하고 화를 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순간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 2살이나 되었는데라는 표현이 웃기기도 하고.. 그러나 2살 남짓 아이의 기죽은 모습을 보니 이내 안타까운 마음에 속이 쓰렸던 기억이 있다.
2살 아이가 똑바로 못 앉는 것이 결코 잘 못된 행동이 아니며 혼날 일도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똑바로 못 앉으면 어떡하나? 하는 엄마의 불안과 두려움이 분노로 표현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반드시 자기 계발서이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책 한 권을 내놓기 위해서 저자는 자신의 영혼과 모든 최선을 다 쏟아붓는 것을 생각할 때,
모든 책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은 있다.
문제는 책에 대한 실행력이다.
머릿속으로 책 내용을 평가하고 마음의 감동으로 간직만 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읽은 내용 중 딱 한 가지라도 나의 성장을 위해 실천해 보는 삶.
그 실천을 통해
'엄마의 역할'이 아닌 '나의 성장'을 경험하자
나는 아들을 내 소유권 안의 존재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엄마의 일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아이를 보는 엄마의 시각, 아이에게 하는 엄마의 말을 바꾸게 된다.
엄마의 말이 바뀌면 아이의 생각이, 태도가, 습관도 바뀌게 된다.
아들 J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생각한다.
내 태도의 변화가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력과 관계의 개선을 가져오기에 늦은 시기는 아니다. 아직도 아이는 어른의 인격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지 않는가?...
아직은 나의 존재가 아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들로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기쁘다.
<선배 엄마가 후배엄마에게>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커갈수록 '엄마의 자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참 많이 흔들립니다.
아이는 '알아서 할게'를 노래 부르듯 하며,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엄마인 나는 여전히 내 자식을 안전한 보호 구역 안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제 경우를 보면 이 시기엔 자녀들의 거리두기 욕구를 부모가 어느 정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엄마의 마음속에는 늘 자식이 있죠.
아무리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시간상으로 길게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언제나 자식은 가슴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 품의 자식만큼이나 품을 떠난 독립된 자식도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래서 우리는 아픈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자식과의 거리 두기를 합니다.
그 거리 두기를 좀 더 지혜롭게,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이 엄마의 역할이 아닌, '나로 살기'였습니다.
'나로 살기'란 이제부터 가족아 아닌 나만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 아나라,
나의 성장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내 습관을 바꾸고, 루틴을 세우고, 책을 통해 자의식과 세계관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나가다 보면,
살림이나 육아와는 다른,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 잊고 있었던 꿈, 간절히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겨납니다
내 소망과 자녀의 꿈을 함께 이루어 가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꿈과 과제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도 그렇게 노력하면서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자녀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고 그 과정을 서로가 응원하는 관계.
저의 경우 이를 위한 도구가 책이었듯이, '엄마이자 나'로 성정하기 위한 자신만의 도구를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