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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Mar 10. 2024

겨울에 피는 꽃

기다림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봄기운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온다.

벌써 나무 가지에는 새싹을 피우려는 연둣빛 몽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봄의 꽃들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꽃들이 있을까?

장미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값비싸고 화려한 꽃다발이라 해도

봄의 개나리나 진달래, 목련이 피어난 풍경만큼의 감탄과 감동은 주지 못한다.


아마도 봄이기 때문일 것이다. 

꽃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긴 겨울이 자나 갔다는, 선뜻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봄이 와 주었다는 기쁨 때문이 아닐까?






봄꽃같이 일찍 피어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수많은 봄 꽃과 같은 아이들을 만났다.


12월생에 늘 어리고 어설퍼 보이던 아들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똑 부러지고 못하는 게 없는지...

저렇게 어린 나이에 한글책도 잘 읽고, 알파벳도 뚝딱! 10자리, 100자리 숫자도 척척, 호기심 대마왕이기까지...  


우유갑을 못 따서 짝꿍이 도와주었다는 웃픈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설마 내 아들이 그 주인공일 줄이야...  


가위질, 풀질조차 어설퍼서 늘 똑똑한 여자 짝꿍의 도움을 받고, 

한글도 서툴러 알림장에 그림을 그려오는 아들이었다.  


숫기도 없어서 친구도 널리 사귀지 못하고, 각종 대회니 임원 선거에도 관심이 없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욕심조차 없어 보이던 아들이 참 존재감 없어 보이기도 했다.


"떡잎부터 달라"

정말 그랬다. 화려한 봄꽃과 같이 어린 나이 때부터 반짝이며 두각을 나타내는 많은 친구들은 우리 아들과는 분명 다른 떡잎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것이 부러웠고, 내 아들도 지금 저렇게 빛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겨울에 피는 꽃


하지만 아이들이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아들과 친구들을 지켜보니 그 성장에는 반드시 "변화"가 있었다. 처음의 방향 그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변화일 수도,  나쁜 변화일 수도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잔소리는 봄꽃 같은 친구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내 불안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내 언어가 아들에게 주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아니라, 

내 불안과 두려움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않으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 

아들을 나의 정체성으로부터 떼어 놓고,  거리 두기를 하면서 바라보았다. 


거리 두기를 하니 비로소 아들이 보였다.

그의 생활리듬과 공부 스타일과 생각들이...


결국 아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정하고, 자기 방식대로 노력하고, 

원하는 결과를 스스로 얻어냈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에 힘겨울 법한 영재교 생활도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즐기며 살고 있다.  


아들은 화려한 봄꽃들 사이에게 존재감 없는 꽃이 아니라, 

겨울에 피는 꽃이었던 것이다.





타. 이. 밍.


모든 꽃들이 봄에만 피지는 않는다.

겨울에 피는 꽃도 있고, 

무화과처럼 다른 꽃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꽃피우는 존재도 있다. 


언젠가 글을 남겼던 것처럼

나의 단정 짓는 마음이 아들에게 독이 될 뻔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들은 잘하는 것도, 부족한 것도, 못하는 것들도 있다.  

아들의 어린 시절 화려했던 봄 꽃마냥 빛나던 친구들처럼

지금도 저러다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뛰어난 역량을 가진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철부지 엄마처럼

그들과 비교해서 아들의 부족한 점을 보지는 않는다.


아들은 언젠가 또 다른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것이고, 

자기 만의 때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울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선배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아이를 키우면서 끊임없이 듣게 되는 조언 중 하나가

"옆 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자"라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굳세게 먹어도 눈 감고, 귀 막고 살지 않는 이상

그런 친구들을 보게 될 것이고, 보게 되면 부모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그런 저와 계속해서 싸워야 했으니까요.


그럴 때 우리 아이만 찬찬히 바라봐 주세요.

우리 아이가 무엇을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내'보아 주세요.


네, '알아내어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보통 결과만 보고, 과정은 보지 못하니까요.


부모는 가장 가까이 있지만, 막상 자녀가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들이 테스트 성적이 나쁠 때면, 당연히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고,  

늦게까지 잠을 안 자면 당연히 게임이나 sns 하느라 그렇겠지라고 짐작했고,

밥을 안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은 간식이나 패스트푸드로 배 채우니 그런 거 아니냐고 나무랐으니까요.


최선을 다했지만, 방법을 몰랐을 수 있고,

실제로 과제가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잤을 수도 있고,

심리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느라 끼니를 제대로 못 먹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는 말.


저는 봄꽃 같은 친구들과 비교하며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이 말을 붙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제 아이를 보려고 노력했어요.

다정하고 대화가 쉬웠던 아들은 아닌지라,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했습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아들의 생각과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니

믿음도 생겼습니다.

부모가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믿어주니 아들의 마음에도 불안감이 줄어들고 스스로의 책임감이 생각기는 것을 저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겨울에 피는 꽃은 감동과 기쁨은 배가 됩니다. 


피어나지 않는 꽃은 없습니다.

타이밍이 다른 꽃들이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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