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되면 교회데리고 갈거야
시간은 내야 하는 것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빠와 엄마가 주는 환경이 우주의 전부인것 것처럼
그 무렵의 부모 또한 비슷한 것 같다.
천사같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만약에 이런 일"이란 것이 실감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살아온 세월이 쌓인 어른이기에, 걱정은 한다.
지금은 이렇게 피부가 깨끗한데, 나중에 여드름 많이나서 애가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하지?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아토피나 피부트러블 생길 수도 있다는데...
방금전까지도 서럽게 울더니 벌써 까먹었나? 역시 쿨한 성격인가봐.
일요은 특히 바빴다.
일 주일 중 남편과 아이가 하루종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하루였기 때문에
그 날엔 반드시 '의미있는'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다양한 경험들이 중요해, 지금 아니면 시간도 없어'
그러면서도 아 오늘 주일인데 교회가야 하는데..
아들도 교회학교, 학생부에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일요일 늦잠자는 남편과 아이를 이른 아침부터 깨워 교회를 데리고
나가기가 나로서도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 의미있는 활동'과 '신앙' 사이에 적절한 타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되면 교회 데리고 나갈꺼야"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이런 타협은 거의 포기에 가깝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만 졸업하면 겨울방학땐 교회 데리고 나갈꺼야"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아들은 점점 사라지고,
또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서야 나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아, 엄마인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저 아이의 세계가 있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내면의 모습이 있구나.
특히 사춘기 초입부터 시작된 소통의 문제 앞에서 나는 가장 어쩔 수 없어 했다.
힘들고 어려우면 내 앞에서 울음보를 터트리던 방식이 아니라,
아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숨어버리는 듯 했다.
밤 10시 무렵 학원이 끝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집으로 향으는 길가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어깨를 들썩이며 걷는, 눈물을 훔치며 그 무리 속을 걸어가는 아이가
우리 아들일 줄이야.
미처 로그아웃하지 못하고 등교한 아이의 컴퓨터 화면에서
메세지를 보게 된 적이 있다.
'**야. 나는 너가 나를 그렇게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걸 보고 너무 놀랐어.
너가 여자친구가 생긴 후로 나랑 한 약속들을 잘 지키지 았아서...
... 나는 내가 가장 아끼던 친구를 잃게 된....
... 학교를 안 가고 싶은 날도....'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아들의 속마음이었고, 친구 관계에선 늘 순하고 밝아 보이던 아이였기에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내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걸까?
어렸을 때처럼 울음보를 터트리지도 못하고,
얼굴 표정, 몸짓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아들이 기숙학교를 가게 되면서 상황은 더 난처해졌다.
이렇게 일찍 내 품에서 떠나버릴 줄이야.
매일 얼굴이라도 보고 살았던 시간들은 이런 상황에 비하면 그래도 안심이 되는 거였구나.
얼굴 조차도 볼 수 없으니,
아들은 어떻게 자신의 힘든 내면을 다스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제서야 나는 더욱 후회를 한다.
내가 주었어야 하는건 주말에 "의미있는 활동"들 보다
"기도의 자리"로 가게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적어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부모가 도와주면 되니까.
어떻게든 입시 공부는 무사히 마쳐야 하고,
주말엔 이침부터 놓칠 수 없는 특강 시간들이 있으니까.
일단 대학 먼저 보내고,
대학가면 진짜 열심히 나가면 되니까.
이렇게 조금씩 타협하면 지냈던 시간들은,
아이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앙와 믿음"의 무기를 잃게 했다.
그랬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있다.
부모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그런 문제와 상황들은 눈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한다.
특히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에게 신앙은 내면을 단단히 하고,
중심을 붙잡아 줄 수 있는 강한 무기가 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상황들이 있겠지만,
성인같은 자기조절이 아직은 미흡한 아들이
하나님께 자신이 불안을 털어놓고, 기도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신앙과 믿음이 있었다면
흔들리는 마음, 불안한 마음 더 단단히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시간 되면"이 아니라 "시간 내서"가 맞았다.
시간을 내지 않으면 그럴 시간은 앞으로도 오지 않는 다는 것을.
그럴 시간 어디 있냐고 말하는 대신 그럴 시간 여기 있어. 라고 말했어야 하다는 것을.
지금 또 이렇게 돌어켜 보며 후회를 한다.
나는 이제 이 말 앞에 좀더 솔직해 지기로 했다.
'시간 날때 해야지'는 사실 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간 내서 해야지'라고 말해야 하겠다는 것이 된다.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일.
시간 될때 말고 지금 시간 내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