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점수를 보는 시선

석차 아닌 통계

by 소리


가끔씩 아들이 받은 첫번째 지필평가?가 무엇이었더라? 라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내가 기억하려 한 지필평가란 '아주 작은 학습지 형태의 무엇'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보았던 쪽지시험, 단원평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등 제법 묵직한 시험지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조의 학습지는 수학교구 속에 들어있던 워크쉬트였던것 같다.

집에서 장난감처럼 놀며 할용하는 교구였지만, 효과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엄마 마음을 배려한 것이었는지 아주 얇은 학습지 형태의 워크쉬트가 있었다.


색연필을 들고 그림 그리듯, 책을 읽듯 하나하나 흥미롭게 해나가던 아들은 거의 마지막 문제를 하나 틀렸다.나는 나름 'X'가 아닌 '별'을 그려주었는데, 아들은 유치원도 가기 전 어린 나이였음에도 이상했던지 물었다.


"이게 뭐야?"


"별 이지"


"왜에???"


"이 문제는 J가 틀렸거든. 다시한번 해 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갑자기, 너무나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울먹거리는 중간 단계도 없이 그야말로 갑자기 터져나온 울음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켜보자니 마냥 귀엽기도 했던 것 같다.




시험점수는 '석차'라는 불행한 인식


나는 후회한다. 그냥 아쉬운 정도가 아닌 어떨 때는 미치도록 말이다.

그 순간으로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갈 수만 있다면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틀렸거든"이라는 말을 그리 쉽게 내밷지 말 것을...


아들의 터진 울음을 마냥 귀엽게 바라보았던 내 어리석음 또한 반성한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수없는 시험상황에 직면하고, 언제나 점수를 받는다.

그 점수는 대부분 자기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가 되고 '석차'가 된다.


석차: 교과 점수를 중심으로 한 학급 또는 학년 전체의 학업성취 순위(네이버 백과사전)


시험성적은 곧 나의 '순위'이기도 한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안하고 좌절하고 낙망에 빠진다.


좋은 성적과 석차를 받은 학생은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에 기쁨도 잠시, 더 긴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 좋지 못한 성적과 석차를 받은 학생은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순위인듯 위축되고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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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해법' 찾기


아들이 울음을 터트린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틀리면 어때서? 뭐가 문제였지?



'틀렸다'라는 말에는 '잘못했다'라는
질책의 감정이 담길 수 있다.



그래서 였을까?... 시험을 못 보면 나 또한 내가 잘못한 것만 같은 죄책감, 실망감,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등의 여러 감정이 뒤섞여 마음이 무거웠던 것 같다.


아들이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린 이유는 단순히 틀렸다라는 사실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질책을 받은 듯, '내가 뭔가를 잘못했구나'라는 끈금없는 불안감에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내가 만약 그 때, 틀렸다라고 말하는 대신

"다르게 생각해 볼까? 더 좋은 답이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까?" 라고 말해 주었다면.


틀렸다, 라는 사실이 내가 뭔가를 잘 못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세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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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성적은 통계


영재교는 단답형 시험문제가 없다.

모든 문제 유형이 서술식이고 논리와 공식, 자기 생각의 힘을 발휘해야만 하는 문제들이다.

10개 문제 내외를 3시간 넘게 쓰름하며 풀어낸다.

단순히 틀렸다, 맞았다의 개념 자체가 없다.

(물론 이러한 시험 문제 유형과는 별도로 최종적인 성적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받는 시험점수와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아들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시험 성적을 '통계'로 접근할 것 같다.



틀린 것을 그저 틀렸다라는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정보(데이터)'로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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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 유형을 틀렸는지, 왜 틀렸는지, 다른 접근을 왜 못했는지 등등

틀린 문제를 이러한 것들을 알려주는 정보(데이터)로 바라보면 시험 성적을 보는 부모와 학생의 시선도 바뀐다.


'아 내가 이런 점이 부족하구나. 내가 보완해야 할 점이 이 부분이구나'를 알 게 해 주는 귀한 데이터가 된다. 이 데이터들을 잘 정리하고 모아두면 통계가 될 수 있다.


통계를 보면 방향이 보인다.


시험 점수를 마음으로 바라보며, 아들과 내가 똑같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생각으로, '머리'로 접근했었다면 아들은 좀 더 성숙하게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바라보게 되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점수 따위에 연연해 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 오히려 시험 점수를 유용하게 활용하기 까지 하는 지혜로움을 갖추게 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선배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점수'라는 것이 참 문제입니다.^^


분명 객관적인 사실인데 우리는 이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저 또한 아직 입시 앞에서 학업을 진행중에 있는 아들을 둔 지라, 무엇이든 확신을 하는 것에는 늘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런데 이 점만큼은 꼭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험점수는 분명 '정보(데이터)'로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점수 속에 온갖 아이를 향한 책망과 낙담의 마음이 쏟아져 나옵니다.


시험점수를 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습니다.

내 잘못, 아이의 잘못, 실망, 원망, 좌절, 불신, 그리고 가장 나쁜 미래에 대한 불안.


"이 점수를 받아서 대학은 제대로 가겠니?"

"진짜 열심히 했으면 이런 점수가 나오겠니? 스카가서 잠만 자고 왔다갔다 해겠지"


이런 질책에 자극받아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던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와의 관계에도, 아이의 성취도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사실 본인이 가장 힘이 듭니다.


설사 실망하고 아픈 마음이 있다 할 지라도 아이의 점수는 '머리'로만 바라봐 주세요.


"이 문제는 네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려주는 결과니까 아주 중요한 "정보"야.
오늘 이 문제 덕분에 너한테 더 필요한 게 무엇이지 알게 되었으니까 너무 실망할 일도 아니야.
대신 정보는 잘 활용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또 같은 결과를 받게 될 테니까.
이걸 잘 정리해서 너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통계로 활용해 봐. 그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방향도 보일 것이고.
너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


아직 어린 자녀라면 엄마가 먼저 이런 시선을 가지도록 노력해 보시길 바래요.

엄마의 이런 마음과 함께 공부한 자녀들은 언젠가 스스로가 이런 마인드로 시험점수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험점수를 숨기거나 챙피해 하거나 자책과 연결시키지 않는 아이로 키워나가시길 바래요.


'점수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는 말이란, 이런 의미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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