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 학원 Top반 vs 축구

신의 한 수는,

by 소리


예정했던 주제는 지난 주 발행한 글과 관련성이 높아 새로운 주제의 글로 대체해요. ^^






아들 J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때부터 아들과 친구들은 하교 후 바로 집으로 가는 법이 없었다.

영락없이 삼삼오오 모여 나름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기다리던 엄마들의 컴 백 외침을 듣고서야

한 명, 두 명 운동장에 던져둔 가방을 주섬주섬 어깨에 매고 걸어나온다.


당시 J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축구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장래 희망사항을 적어내는 과제에 J는 한참을 고민하며 적었다.


“축구 잘 하는 과학자”


또래 친구들에 비해 체구가 작았기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돋보이진 않았지만,

언제나 축구하는 친구들 무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J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좀처럼 공 찰 기회가 오지 않았음에도 잘 하는 친구들 주위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곤 했다.

학년이 올라가자 친구들은 학원스케쥴과 방과후 수업 등으로 바빠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축구를 하는 친구들도, 시간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J도 매일매일을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이면 1시간 넘기는 건 기본,

2시간, 3시간이고 컴 백을 외칠 때까지 운동장을 뛰었다.




축구는 나의 인생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교 시간을 기다리며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역시나 시간 개념없는 아들이다 싶었다.

중등 입학을 바로 코 앞에 두고도 공부와 과제를 챙기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2시간을 넘어가면 내 마음속에는 지진이 나면서 화산폭발 직전의 상태까지 갔다.

운동장 가까이 다가가 최대한 엄중한 목소리를 J를 부른다.

"이제 올라와, 집에 가야될 시간이야."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J는 운동장의 시계를 보며 축구로 인해 상기된 얼굴 위로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나온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의 눈이 긴장된 상태임을 보지만,

나는 냉정하게 무시하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적당히 놀 줄도 알아야지, 지금이 몇 시니?

저녁먹고 쉬고 나면 8시가 다 될 거야. 어제 과제는 언제 다 할래? 다다다다다”

J는 하교하는 차 안에서 묵묵히 말이 없다.


이 장면 앞에서 나는 J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들에게 어떤 길이었을까?

운동장에서 맘껏 뛰며 축구를 하던 1분전의 세상과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의 세상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엄마의 차와 집은 J에게 편안한 쉼의 공간이 아니라,

"의무의 공간"이 되고 있음을 나는 왜 또 짐작조차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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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로


그 날도 나는 운동장 밖 벤치에서 축구를 하는 무리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J는 어디쯤 있나...

아, 발견했다!!

'오~ 어느새 저렇게 달리기가 늘었지?'

J는 가장 선두 무리에서 공을 요리조리 굴리며 운동장을 질주하고 있었다.


J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영화 속 클로즈업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저렇게도 환하고 밝게 웃는 모습이라니.

에너지 가득찬 그의 얼굴과 온 몸이 세상 자유로운 생명체처럼 달린다.

아니 날아오를 듯 질주한다. J의 얼굴이 저토록 빛나는 걸 본 적이 언제였었나...


J가 발산하는 빛 덩어리가 나를 삼켜버릴 듯 했고 나는 울컥했다.


그날 저녁 나는 J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축구하는 거 많이 좋아? ** 학원 그만두고 하고 싶은 만큼 축구할래?”

J의 눈이 빠른 시간에 동그랗게 변했다.

잠시 굳었던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입꼬리가 올러가며 환하게 웃는다.


“그래도 되요?”

“안 될 건 없지... 너가 정말 좋으면... 탑 반에 들어가기 힘든데 그 기회가 아깝긴 하지”

“.....”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봐, 중학교가면 어짜피 공부하느라 다른 시간도 없을테니까...”

“네... 축구하고 싶어요.”


그랬다.

J는 환호성을 지르지도 않았고 폴짝거리며 뛸 듯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얼굴 가득히 그토록 밝은 미소를 지었을 뿐.


J는 그 날이후 정말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2시간 이상 축구를 했다.

어제 엄마의 컴 백 외침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학원 수업도 과제도 안중에 없었다.


J의 축구 실력 또한 일취월장 향상된건 물론이다.

늘 잘 하던 친구들 주변에서 공 찰 기회를 기다리기만 했던 입장에서

공과 팀을 리드하는 역할도 곧잘 할 정도가 되었다.


'아, 탑 반 친구들은 지금쯤 선행 전도를 다 뺐을 텐데...'

나는 그저 웃픈 심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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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


그런데, 이 것이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축구에서 얻은 체력으로 소위 ‘운동 좋아하는’ ‘운동 잘하는’ 이라는 J의 캐릭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일단 달리기는 기본으로 평균 이상이다.

마라톤, 등산 등 장거리 체력을 요하는 운동에서도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했다.

농구를 해도 민첩성이 발휘되었다.


중고등학교에서 방과후나 시험 후에 노는 남학생들 무리는 보통 두 서너 분류로 나누어 진다.

- 게임파, PC 방으로 이동

- 운동파,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이동

- 기타, 나홀로 집으로 혹은 대형 쇼핑몰, 놀이동산 등으로 이동이 그렇다.


J는 당연히 운동파로 게임이나 PC방은 J의 주 관심사에서 비껴간 효과도 있었다.

또한 영재교 입학 후에도 교우관계와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정말 큰 무기가 되었다.


영재교는 학생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시간표도 교실도 클럽이나 동아리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하루 종일을 똑같은 교실에서, 같은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공부하는 장소와 시간, 만나게 게 되는 친구들, 공강 시간 활용 등도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선택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대상이 확실한 것이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결국 이리 될 것을 넓은 운동장을 질주하던 J의 시간을 왜 그리도 초조하게 아까와했을까?

10분만 더, 10분만 더를 외치던 다급한 그 아이의 목소리를 왜 그리도 듣기 싫어 했을까?

축구를 하면서 그 아이의 마음속에 자신감과 긍정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음을 왜 몰랐을까?

탑 반이라는 명분에 갖혀 수학문제만 풀며 보낸 시간보다 그래서 더 가치있는 시간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영재교에서도 '탑 반이냐 축구냐' 라는 것과 비슷한 선택의 기로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선택과 자율의 폭이 크다해도 전공별 나름의 치열한 학업경쟁이 있고,

결국은 똑같이 입시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들과 내가 바라는 바가 다른 선택의 상황이 될 때면 나는,

빛나는 얼굴로 운동장을 질주하던 아들의 생명력 넘치던 웃음과 에너지를 떠올린다.


아들이 하려는 선택에 여전히 그러한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면, 기꺼이 나는 내 마음을 접는다.

엄마의 강요에 끌려나오다시피 운동장을 나서며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그런 마음을

지금의 아들이 가지게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나의 편협한 시각과 이기적인 욕심이 아들의 꿈틀거리는 꿈의 씨앗을 꺽어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자신이 한 선택을 위해서 아들이 스스로의 내적 힘을 힘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

이것이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선배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학원이나 사교육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아이의 부족한 부분들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주객을 확실히 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목표와 방법이 주인이고, 학원은 어디까지나 이것을 돕는 수단일 뿐이죠.


그런데 점차 과도하게 학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재교 입시를 위한 학원은 소위 레벨이라는 것을 나누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탑 반에 들어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목표 자체가 탑 반까지 올라가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쫓아가기에 급급한 공부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영재교 입시 공부는 생각의 씨름이 중요한 성격의 공부이기 때문에 벽돌을 쌓듯 탄탄하게 내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실제로 낮은 레벨반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이 있구요.


자녀 본인이 영재교 입학을 원하고 도전하게 되어

학원의 도움을 받는 경우라면,

학원 레벨에 의존하기 보다는

공부하는 내용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과 성찰을 시간에 더 가치를 두고 용기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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