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착각
마음을 읽는다. 마음을 본다... 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들 J가 어렸을 땐 막상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애들은 원래 다 그런 거지',
'초등학생, 중학생 머릿속이야 눈에 다 보인다, 엄마 눈은 귀신이야'
내 나이쯤에 쌓인 경험에 비하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은 레고 1단계 블록처럼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J가 커가고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자, 레고 1 단계 같던 상황이 갑자기 10단계쯤으로 훅 레벨 업되더니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무슨 마음으로 저러는 거지?”
하지만 이런 질문은 진심으로 그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것보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대한 책망에 불과했다.
아들의 눈물, 보이지 않아 몰랐던.
J는 대부분의 경우 테스트 결과에 무덤덤했다.
잘했을 땐 그저 기분 좋은 표현 몇 마디, 못 했다 싶을 땐 묵묵부답.
그 후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덤덤하게 해 오던 대로 일상생활을 지속했다.
막상 본인은 그다지 속상해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았기에
곁에서 보는 엄마만 답답할 뿐이다.
밤 10시를 전후한 시간이면, 학원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로 양쪽 인도가 가득 찬다.
비슷비슷한 검은색, 회색 후드티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교재나 프린트를 들고 가는 학생의 무리가 떼를 이루어 밤거리를 가득 메운다.
나는 그날 마침 이 시간 즈음에 학원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온 학생들 틈에 끼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J도 집에 도착할 시간이라 마음이 급해졌고 걸음도 빨라졌다.
조금 앞서 걸어가는 남학생이 눈에 익어 보니 우리 아들이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려다 걸음을 늦추어 천천히 뒤를 따라 걸었다.
'등이 좀 굽었네? 가방이 너무 무거우니깐.... '
'생각보다 더 말라 보이는데? 고기를 더 먹여야겠다.'
아들의 뒷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아들의 앞에서, 옆에서 빨리빨리만 외쳤구나.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나는 얼른 되돌아 내 일상을 사느라 바빴구나.
그때 J의 어깨가 조금 움직인 듯했다.
'가방끈이 불편한가?'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작은 어깨 위의 움직임이 커지는가 싶더니 무거운 가방에도 그 움직임의 파장이 번진다.
'아닐 거야. J가 왜...'
아들은 한 손으로 한쪽 눈을 쓸어 넘긴다.
작고 무거운 어깨는 들썩이며 그것이 눈물을 닦는 행동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J는 꽤 오래도록 어깨를 들썩이고 눈물을 훔치며 걸었다.
때로는 고개를 돌려 곁눈질도 하며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걷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뒤에 더 바짝 붙어 걸었다.
행여나 다른 사람이 J의 눈물을 알아차리고 힐끗 거리 않도록.
아들의 눈물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는 것을 막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J는 내내 눈물을 훔치며 어두운 거리를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파트 벤치에 앉아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다.
아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엄마 얼굴을 보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날은 월간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J는 기대했던 결과를 받지 못했나 보다.
집으로 들어가 아들을 불러 보았다.
“J야, 엄마가 늦었네, 배고프지? 간식 먹자”
준비했던 간식을 먹는 J는 조금은 굳은 표정이었지만 평소 같았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이다.
“테스트 성적 나왔니?”
이번엔 아빠가 먼저 묻는다.
“네”
더 이상 말이 없다.
남편은 짐작했는지 “틀린 문제들 다시 잘 보고 알아두는 것이 더 중요한 거야”
늘 하던 똑같은 멘트를 날린다.
“네”
나는 그냥 입을 다문채 같이 간식을 먹었다.
평소 같으면 남편의 짧은 1부에 이어 나의 본격적인 2부가 시작되었을 것인데...
“시험이 어려웠니? 쉽다고 했었잖아. 결과 보니 아무렇지도 않니? 약한 부분이 뭔지 데이터가 딱 나오는데도 집중적으로 안 보니까 맨날 같은 부분을 놓치잖아... 오답노트도 정리 안 하고, 보충 공부도 할 생각 없으니, 다다다다다다~~~”
시험을 보는 날도, 보고 나서도 늘 무덤덤한 J를 보며 나는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곤 했다.
마음에 욕심도, 절박함도 없이 어떻게 대한민국 입시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조금만 노력하면 잘할 수 있는 아이인데 뭘 믿고 저렇게 게으를까...
이런 나의 2부는 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이 아니라, 그저 '내 불안'의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혼자 상상하며 불안의 마음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숨겨진 마음
아들의 무덤덤한 표정 뒤로 숨어버린 마음을 왜 나는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그 순간을 나는 또 후회하고 후회한다.
그 작은 마음도 아팠을 것이라고,
그 작은 머릿속도 복잡했을 것이라고 왜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까?
왜 그의 표정처럼 마음도 똑같이 무덤덤할 것이라 당연히 생각했을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막상 내 아들의 일 앞에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출 줄을 모르고 그대로 돌진했다.
작은 어깨라 해서 그 위에 얹힌 삶의 무게도 가벼울까?
아니,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들 또한 나름의 아픔과 좌절이 있었을 텐데, 100% 너의 잘못은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느끼고 있을 죄책감을 엄마인 내가 덜어 주었다면,
J는 자신을 좀 더 긍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성장을 했을 것이다.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잖아. 최선을 다했었어야지'라는 책망보다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거야, 그런데 이런 이런 상황도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 다음엔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 정도쯤의 위로라도, 조금은 용기의 말을 건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선배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아이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나이 또래는~~'이라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나이와는 상관없는 그 아이만의 마음 세계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가 아이가 잘못하거나 변명을 늘어놓는 듯한 말을 들을 때면,
'뻔하지 뭐'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입니다.
왜 그런 잘못을 헀을까?
왜 저런 변명을 할까?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마음의 원인을 알려고 하기 전에
내가 단정지은 결론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추궁하는 말들이 먼저 나왔던 것이죠.
지금도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보이는 무심하고 버릇없는 태도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저 모습 뒤에는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을까?
한 번쯤은 생각해 봅니다.
아이의 불안이, 상처 입은 자존감이, 어쩌면 부끄러움이 저렇게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아무리 어린 자식이라도 딱 봐서 알 수 있는 마음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말과 행동을 바로 고쳐주는 비법은 없다 할지라도,
최소한 "저 뒤에는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을까?"라는 생각만으로도
질주하던 화나 분노의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인간관계보다 쉽지 않은 것,
내 자식과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것이 어떤 선행보다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