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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l 19. 2024

"죽고 싶으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

안락사 캡슐


오늘 본 가장 무섭고도 외로운 문장.


"죽고 싶으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




영화나 소설 속 대사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살아있는 문장이다.


개인이 소위 "안락사 캡슐"에 들어가 자신의 죽음을 실행 시키기 직전, 마지막으로 나오는 "안내 음성"이라고 한다. 이 음성을 듣고 버튼을 누르면 캡슐 안에는 산소량이 급감하고, 질소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30초만에 죽음에 이르는 기계.  '사르코'라고 이름붙인 안락사 기계이다.

 



이 안락사 캡슐('사르코')을  발명한 필립 니슈케 박사는 "낮은 수준의 산소를 두 번 호흡하면 의식을 잃기 전 방향 감각을 잃고 조정력이 떨어지며 약간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며 "이후엔 의식이 없는 상태가 5분 정도 유지되다가 사망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출처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7/19/2024071900922.html)


이어 덧붙인 코멘트.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는 사람에 대해선 "일단 버튼을 누르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


가슴 서늘한 이 말을 우리는 '제품'에 대한 친절한 안내로 받아들여야 할까?







안락사 캡슐은 갑작스런 발명품은 아니다

몇 년전 처음 관련 뉴스를 들었을 때만 해도 괴짜 발명가의 아이디어 이거나, 주목이 필요한 신생 벤처기업의 발명품쯤으로 여겼던것 같다.   


안락사 캡슐은 2018년 네덜란스에서 열린 장례엑스포에서 정식으로 소개되었는데, 이 후 지금까지 세계적인 논쟁이 되어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우리 세대에 실제 사용가능한 것으로 등장하고야 말았다. 


관련 뉴스의 헤드라인을 보면,  개인에게 죽음의 권리를 부여하는 이 안락사 캡츌을 신상 제품이나 서비스로 소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버튼만 누르면 행복감 느끼다 사망…'안락사 캡슐’ 사용 임박  …조선일보
"버튼 누르면 돌이킬 수 없다"…수초내 사망 '안락사 캡슐' 곧 가동 …중앙일보
"사망에 이르고 싶다면 버튼 누르세요"…'안락사 캡슐' 사용 임박 …한국경제
“행복감 느끼다 순식간에 죽는다”…안락사 캡슐 서비스 임박 …매일경제
"버튼만 누르면 고통없이 사망" 안락사캡슐 사용 앞둔 '이 나라' 어디? …서울경제
찬반 논란 속 4년 사용 못했던 '안락사 캡슐'...이번달 첫 사용 예고 …JTBC
“행복감 느끼다 사망”…부부 ‘동반 안락사’ 돕는다는 기계 …서울신문
스위스 ‘안락사 캡슐’ 2만8천원…다시 불붙는 조력사망 논쟁 …한겨레


실제 기사 본문의 일부를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안락사 캡슐 ‘사르코’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의사 필립 니츄케 박사가 만든 것으로 질소 비용, 단 18스위스프랑(약 2만8천원)을 지불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기계다.
(중략)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안락사를 원하는 이용자는 정신 능력을 포함한 의학적·법적 요건에 따른 평가를 받은 뒤, 보라색 캡슐 사르코에 들어가 뚜껑을 닫는다. 기계에선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버튼을 누르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같은 질문이 흘러나온다.

대답을 마친 이용자에게 사르코는 “만약 당신이 죽기를 원한다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라고 안내한다. 이용자가 해당 버튼을 누르면 공기 중 산소의 양은 30초 만에 21%에서 0.05%로 떨어진다.

출처 : 한겨레 (https://www.msn.com/ko-kr/news/world/%EB%B2%84%ED%8A%BC-%ED%95%9C%EB%B2%88%EC%97%90-%EA%B3%B5%EA%B8%B0-%EC%A4%91-%EC%82%B0%EC%86%8C-21-005-%EB%A1%9C-%EC%95%88%EB%9D%BD%EC%82%AC-%EC%BA%A1%EC%8A%90-%EC%8A%A4%EC%9C%84%EC%8A%A4%EC%97%90%EC%84%9C-%EA%B3%A7-%EC%82%AC%EC%9A%A9/ar-BB1qfrWP?ocid=socialshare)



솔직히 나는 헤드라인까지만 보아도 두려움이 느껴진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지능이 높아진다해도  

生과 死 의 영역만큼은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아니, 에덴동산에 있던 선악과처럼 인간의 영역이 "아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이 창조한 모든 천지만물을 몽땅 가지라 주셨지만, 딱 한 가지, 에덴동산 가운데 있는 과실(선악과)만은 금하셨다.

그러나 막상 이를 위한 "접근 금지" 울타리도 두르지 않으셨고,  지키는 맹수 또한 세우지 않으셨다.  



왜일까?

선악과를 금하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 지극히 소중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지켜야할 마지막 것을 스스로 지키기 바랬기 때문에,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귀한 인간이 자신을 믿으며 살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뜻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그 한가지에 욕심내어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엄청난 고통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이 되고 말았다. 


                                                <Edam and Eve, 1526년, Lucas cranach>






나는 이 안락사 캡슐을 보면서 마치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보는 듯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힌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어떤 울타리도, 맹수도 두지 않으실 것이다.

에덴동산의 한 가운데, 가장 보이는 곳, 완전히 오픈된 공간에 금지한 선악과를 버젓이 두셨던 것처럼

인간이 끝내 만들어낸 이 '죽음의 캡슐'을 번개로 내리쳐 깨부수어 버리는 일 따위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고 죽는 인간의 목숨만은 너희의 영역이 아니니' 금지하는 그 뜻을 

인간이 지켜주길 간절히 바라고 계실 것이다.


이미 우리는 태어남의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유전자를 조작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그 신비스러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죽음의 문제에 더 과감하게 손을 뻗는다.

지금까지 불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입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의사의 조력 자살과는 또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안락사 캡슐"은 죽음이라는 상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이다.

기사의 내용처럼(아직도 믿어지지 않지만) 질소 비용 약 2만8천원으로 30초만에 죽음에 이를 수 있다니.

누구라도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죽음의 무게는 얼마나 가벼운 것이 될 것인가? 

.

.

.

.

.

제발,  멈추어 주기를.

또다시 선악과에 손을 대는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이 되지 않기를.

"태어남과 죽음" 이 외의 모든 영역을, 모든 천지만물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그 무한한 축복에

감사하며 만족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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